2차 세계대전 당시 동남아시아 적진에서 비밀 임무 수행한 중국계 캐나다인 병사들
수십 년간 묻혔던 이야기, 후손들의 증언과 함께 우표로 되살아나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을 위해 동남아시아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했던 중국계 캐나다인 병사들이 있었다. 위험천만한 작전을 위해 비밀리에 훈련 받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군 복무 기록은 공식적으로 남지 않았다. 오랜 세월 역사 속에서 잊혔던 이들의 이야기가 마침내 Remembrance Day를 기념하는 우표로 되살아났다.
지역사 연구가 캐서린 클레먼트가 이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조명하는 전시회를 기획했을 당시, 개막 행사에는 생존 참전용사 9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당시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계 캐나다인 비밀부대의 일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생존자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마지막 참전용사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7일, 밴쿠버 차이나타운에 자리한 중국계 캐나다인 박물관에서는 이들의 후손 수백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캐나다 전역은 물론 미국에서도 가족들이 찾아와 특별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은 참전용사들이었지만, 그들의 후손들이 아버지와 삼촌, 조부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의 헌신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을 함께했다.
캐나다포스트가 새롭게 공개한 추모의 날 기념우표에는 1945년 촬영된 흑백사진이 담겼다. 전쟁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중국계 캐나다인 병사 10명의 모습이다. 이들은 귀국 당시 자신들이 전쟁 중 수행했던 군사 임무를 증명할 공식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인도에서 비밀부대 훈련을 받고 이후 버마(현. 미얀마) 파견을 앞두고 있었던 찰리 호이의 아들 브렌트 호이는 이번 우표 발행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우표는 이 병사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시아계 캐나다인 10명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뒤에 숨겨진 역사를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왜 이 사진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우표 발행을 위해 1년 넘게 캐나다포스트와 협력해 온 클레먼트는 중국계 캐나다인의 역사적 권리와 사회 참여를 둘러싼 기록을 발굴해 온 인물이다. 특히 ‘페이퍼 트레일’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계 캐나다인들이 캐나다 사회에 온전히 참여하는 데 제약을 받았던 역사를 보여주는 수천 건의 문서와 관련 자료를 찾아냈다.
그가 2016년 기획한 전시회는 ‘포스 136(Force 136)’의 존재와 활동을 세상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전까지는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 작전을 수행했음에도 부대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군사 기록조차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계 캐나다인들이 정당한 시민권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1947년, 중국인 배척법이 폐지된 뒤 에야 이들은 투표할 권리를 얻었다.
H.Y. 루이 컴퍼니 CEO이자 런던 드럭스 회장인 브랜트 루이도 가족 중 세 명이 포스 136에 소속됐던 사실을 전했다. 이들은 훈련을 받은 뒤 인도에 배치됐고, 이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루이는 당시 중국계 캐나다인들이 참전을 선택한 배경에는 조국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조상들, 아버지와 삼촌들은 그때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전시조치법과 징병법을 보면 아시아계 주민들은 모두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참전해 나라를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치라고 요구하면, 그 대가로 시민권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계 주민들은 군 복무 자체가 금지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원했습니다. 의무적으로 참전할 필요가 없었지만, 자신들도 기꺼이 조국을 위해 싸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클레먼트는 이번 우표가 단순히 사진 속 10명만을 기리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당시 아시아 점령지에서 연합군의 비밀 작전에 참여했던 중국계 캐나다인 병사 두 집단의 공로를 함께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한 집단은 영국군 지휘 아래 활동한 포스 136 소속 병사들이었고, 다른 집단은 호주군의 정찰정보부대인 서비스 정찰부서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한 중국계 캐나다인들 이었다.
이보다 앞서 ‘오블리비언 작전’이라는 이름의 초기 비밀작전에 선발된 중국계 캐나다인 13명도 있었다. 클레먼트에 따르면 이들은 영국군의 훈련을 받은 시험적 작전 팀이었다. 실제로 이들에게 임무를 맡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규모 인원을 먼저 선발해 가능성을 시험했던 것이다.
훈련은 혹독했다. 병사들은 정글 생존법부터 트럭과 항공기에서 뛰어내리는 법까지 익혀야 했다. 50파운드의 무게를 짊어진 채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헤엄치는 훈련도 받았다. 당시 중국계 캐나다인 상당수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공공 수영장 이용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시설조차 차별로 인해 이용할 수 없었던 이들이 적진 침투를 위한 고난도의 수영 훈련까지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 비밀부대 구상의 출발점에는 밴쿠버 태생의 엔지니어 마이크 켄들이 있었다. 홍콩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그는 1941년 크리스마스에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자 간신히 탈출했다. 이후 일본군 점령하에 놓인 아시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는 비밀부대를 구상했다. 광둥어를 구사하는 중국계 캐나다인들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는 첩보원과 민간인, 중국군 고위 장교들로 구성된 인맥을 통해 계획을 구체화했다.
영국 특수작전집행부는 이미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 비밀요원들을 활용해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었다. 이를 동남아시아에도 적용해 현지 저항세력을 훈련하고 협력자를 확보하는 한편, 선박과 철도, 통신시설 등을 폭파하는 파괴공작을 벌이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려면 적진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다. 영어는 물론 광둥어를 비롯한 현지 언어에도 능통한 병사들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오블리비언 작전에 참여했던 행크 웡의 아들 릭 웡은 아버지의 참전 과정에도 당시의 인종차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온주 런던에서 태어나 성장한 행크 웡은 처음에는 중국계라는 이유로 영국 해군 입대를 거부당했다. 이후 육군에 입대했고, 오블리비언 작전 참여자로 발탁되면서 특수작전 훈련을 받았다. 훈련 내용은 신속한 현장 투입, 낙하산 강하, 폭발물 사용, 모스부호 습득 등 전문적인 임무 수행에 필요한 기술들이었다.
그는 호주에 머물며 작전 투입을 기다렸지만, 보르네오에 파견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났다. 결국 이들 부대원은 캐나다로 돌아가기 위해 화물선에서 일해야 했다. 릭 웡은 2016년 클레먼트의 전시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접한 당시 국방장관의 반응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구 반대편에 특수 작전팀을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클레먼트는 포스 136에서 복무했던 마지막 중국계 캐나다인 참전용사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이름은 고든 콴 이었다.
찰리 호이의 아들 브렌트는 아버지가 자신이 받은 훈장과 군복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전쟁 당시의 경험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사진 속 병사 10명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
27일 열린 우표 공개 행사에서 브렌트는 기념우표에 실린 사진 속 병사 10명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다. 사진 속 인물들을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닌,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로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진에 담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군복 어깨에는 떠오르는 불사조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해방과 재탄생을 상징하는 연합군의 표식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인종이라는 공통된 배경과 캐나다 군복을 통해 서로 구별되는 동시에, 굳건한 연대감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수 십 년 동안 공식 기록에서도, 대중의 기억에서도 사라져 있었던 중국계 캐나다인 참전용사들. 이들은 자신들이 시민으로 인정받기도 전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차별 속에서도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기를 선택했다.
이번 기념우표는 단순히 과거의 사진 한 장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와 희생을 캐나다 역사의 한 부분으로 공식적으로 새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제 생존 참전용사는 아무도 없지만,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후손들의 기억과 역사적 기록, 그리고 우표 속 사진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해지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