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미 발급한 시민권 증서 무더기 효력 정지
이주 준비자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
연방정부가 이른바 ‘잃어버린 캐나다인(Lost Canadians)’ 구제 법안에 따라 시민권을 취득한 일부 신청자들의 시민권 증서 효력을 돌연 정지시키면서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말 시민권법 개정으로 자격을 인정받아 시민권 증서를 발급받았던 수많은 신청자들이 최근 캐나다 이민난민시민부(IRCC)로부터 증서를 반납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일부는 이미 캐나다로 이주했거나 이주를 준비 중인 상태여서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연방정부는 발급 과정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당사자들은 정부가 시민권을 부여한 뒤 다시 자격을 정지시키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기 선 캐나다 시민권 등록관의 서명이 담긴 이 통지서에는 “귀하가 캐나다 시민권 증서를 보유할 자격이 없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정보를 보유하고 있기에 이를 알린다”고 적혀 있다.
수많은 수신자가 온라인상에 이 서한을 공유하며 공분을 터뜨리고 있다. 서한에는 구체적인 정지 사유 대신, 제출된 증빙 서류가 원본 발급 기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원본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 및 이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담겼다.
일괄 발송된 양식으로 보이는 이 서한에서 선 등록관은 “해당 증빙 서류가 시민권 증명 신청 시 제출되지 않았으므로, 시민권 증서의 반납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다만 통지서를 받은 이들에게 추가 증거를 제출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재심사 결과 자격이 확인되면 증서는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이번 조치를 ‘집단 자격 정지’ 사태로 보고 있으나, 정확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향을 받았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미국 메인주 벅스포트에 거주하는 발레리 캠벨처럼 이 편지를 받은 많은 이들은 현재 공황 상태에 빠졌다.
캠벨과 그녀의 아들 모건은 퀘벡과 온타리오에 있는 가족의 뿌리를 근거로 시민권 증서를 발급받았다. 지난 3월 증서를 받은 후, 캠벨은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고 짐을 싸며 뉴브런즈윅이나 노바스코샤로의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캠벨은 이번 정지 통보가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랑스럽게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둔 캐나다 시민권 증서를 배경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충격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서류에 무슨 문제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토로했다.
면허를 소지한 심리상담사인 캠벨은 오래전부터 캐나다 이주를 원해왔지만, 최근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녀는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여성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 유색인종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어 “C-3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았을 때,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 친화적이고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녀는 집 매각을 보류하고 캐나다 정부가 요구하는 기록을 제공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샅샅이 뒤질 계획이다. 캠벨은 지난해 11월 의회에서 의결된 ‘법안 C-3’ 채택 이후 직계 존속을 통한 시민권 증서를 발급받은 전 세계 약 4,075명 중 한 명이다. 이들 중 절반은 미국 출생자다.
이 법 개정으로 해외에 거주하더라도 캐나다인 조상의 혈통을 증명할 수 있다면, 설령 그 조상이 여러 세대 전에 캐나다를 떠났더라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다.
기존 법안 체제에서는 캐나다 시민권자의 자녀 중 해외에서 태어나거나 입양된 ‘첫 세대(1세대)’까지만 직계 시민권 취득이 제한됐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제한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연방정부는 이른바 ‘잃어버린 캐나다인’으로 불리던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번 법 개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민권 자격을 얻게 될지에 대한 추산은 엇갈린다. 의회예산처(PBO)는 약 11만 5,000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레나 메틀레지 디아브 이민부 장관은 하원 이민위원회에서 신청자가 급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법 개정이 발효된 이후, 이민부(IRCC)의 시민권 증서 신청 처리 대기 시간은 지난 2025년 5월 기준 5개월에서 현재 15개월로 대폭 늘어났다.
적체된 신청 건수는 지난 4월 5만 6,000건, 5월 7만 400건이었으나, 현재 이민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무려 8만 2,000명이 시민권 증서 발급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몬트리올 이민 전문 변호사인 리사 미들미스는 이민부가 일단 발급된 시민권 증서를 취소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데, 이처럼 대규모로 동시에 자격을 정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들미스 변호사는 “매우 불행하고 우려스러운 사태”라며 “만약 이민부가 제출된 증빙 서류에 의구심이 있었다면, 승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철저히 조사했어야지 이미 종결된 서류를 다시 들추어내 신청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무엇이 이번 무더기 자격 정지 사태를 촉발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치 정부가 특정 시점의 일부 파일에서 행정적 오류를 발견하고는, 이미 발급된 증서 전체의 신뢰성에 불안감을 느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인다.” 미들미스 변호사는 이번 집단 자격 정지 통보가 결국 법정 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밴쿠버의 이민 전문 변호사인 아만디프 하이어는 과거 사기 혐의가 의심될 때 영주권 신청이 무더기로 정지되는 경우는 본 적이 있지만, 이미 발급된 시민권 증서가 집단 정지된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이어 변호사는 통지서를 받은 이들의 반응은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그들이 아직 미국에 있다면 분노와 좌절감을 크게 느낄 것”이라며 “하지만 이미 캐나다 국내로 들어와 있는 이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이 증서를 바탕으로 합법적 신분을 얻어 일을 시작하거나, 학교에 등록하고, 정부 서비스를 받으려 했던 이들의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