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넘어 해 뜨는 겨울”
전문가들, 어린이 수면·교통안전·건강에 부정적 영향 경고
BC주가 연 2회 시계를 조정하는 관행을 폐지하고 영구 일광절약시간제(DST)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늦은 일출이 주민들의 건강과 일상생활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린이 수면 연구자인 벤디 홀 교수는 영구 서머타임 도입이 어두운 아침에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홀 교수는 인간의 생체리듬이 시계상의 시간보다 태양의 실제 위치와 자연광에 맞춰 조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아침 햇빛은 수면과 각성 주기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출이 늦어질수록 어린이와 청소년의 수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구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밴쿠버에서는 올해 12월 27일 일출 시간이 오전 9시 7분으로 예상된다. 이날은 휴일이어서 학생들의 등교 부담은 없지만, 겨울철 평일에는 해가 뜨기 전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단순히 아침이 어두워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수면 부족과 피로,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며, 어두운 출근·등교 시간대에는 보행자와 운전자의 교통안전 문제도 우려된다.
밴쿠버 주민들은 이번주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리지 않았다. 주 정부가 영구 서머타임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시계는 일년 내내 고정된다. 과학자들과 수면 전문의들은 이번 조치가 인간의 생체 주기(서카디안 리듬)에 영향을 미쳐 우리 몸을 자연의 흐름과 동떨어진 상태로 살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최근 캐나다 의학협회 저널에 발표된 분석에 따르면, 1년에 두 번씩 시계를 돌리던 것을 멈추면 일시적인 해악은 줄어들지만 만성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이자 UBC 정신의학과 교수인 레이먼드 람 박사는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잘라 말했다. 람 교수는 우리의 생체 시계를 자연의 태양 시각과 가장 잘 맞춰주는 태평양 표준시가 훨씬 건강한 선택이었을 것이라 강력히 믿고 있다. 그는 정책 입안자들이 보건상의 결과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영구 서머타임을 결정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영구 서머타임 체제에서는 겨울철 아침이 1시간 더 어두워지는 대신 저녁에 자연광을 1시간 더 얻게 된다. 결국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깨어나 등굣길에 나서야 한다. 출근길 운전자와 건설 현장 근로자, 환경미화원, 교대 근무자 등은 어둠과 피로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번 일요일에 시계를 돌리지 않는 곳은 BC주만이 아니다. 알버타, 매니토바, 노스웨스트 준주 등도 시계 변경을 중단하지만 각기 다른 시차를 적용함에 따라 지역 간 시차 계산도 더욱 복잡해 졌다. 반면 온타리오는 연 2회 시계 변경을 계속 유지하므로 여름철에는 BC주보다 3시간 앞서게 된다.
전국의 기업과 고용주들은 소프트웨어를 재설정하고 회의 시간을 조정해 대응할 수 있지만, 인간의 몸은 그렇게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생산성 손실과 의료비 증가, 결근을 유발하여 선진국마다 매년 국내총생산의 약 2%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만든다.
영구 서머타임 전환은 과거 여러 나라에서 시도된 바 있다. 1974년 미국 정부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2년 기한의 영구 서머타임을 시범 도입했으나, 플로리다에서 어린이 8명이 어두운 아침에 등교하다 교통사고로 숨지는 비극이 발생하자 실패로 끝나며 전격 철회됐다. 러시아, 중국, 칠레 역시 영구 서머타임을 시도했다가 보건 및 안전 우려, 교육 현장의 문제, 대중의 불만 등으로 결정을 뒤엎었다.
이번 영구 서머타임 도입은 올해 3월 데이비드 이비 전 주 수상이 공식 발표했다. 당시 주 정부는 2019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영구 서머타임을 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 조사의 설계 방식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조사 문항에 ‘영구 표준시’라는 선택지는 아예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법무장관에게 보고된 비밀 문건에도 영구 태평양 표준시 채택 개념은 설문을 통해 조사되지 않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밴쿠버 이사회 등 경제계도 인접 미국 주들 과의 공조 없는 독자 추진에 대해 투자 유치와 기업 유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인접 주와의 공조 없는 독자 추진
수면 전문가들은 생체 주기와 사회적 일정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사회적 시차 적응 장애’가 수면과 기분 장애, 학업 및 작업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에서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계속 분비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람 박사는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아침 일찍 야외로 나가거나 광선 치료 라벨을 사용해 내장 시계를 조절할 것을 권한다. 홀 박사는 아이들이 아침이나 밤의 밝기와 상관없이 일정한 생활 루틴을 지키도록 하고, 수면 전 기기 사용을 줄이는 등 수면 위생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당부했다.
도로안전 기관과 보건 당국은 어두워진 겨울 아침 출근길에 맞춰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고, 반사 장비나 플래시 등을 활용해 보행자나 현장 작업자, 쓰레기 수거원 등의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강조했다. 영구 서머타임 도입이 가져올 연쇄적인 파장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주민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겨울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