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겐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이란 것이 그냥 힘 닿는데로 하면서 살면 좋은데 좀더 잘하고 싶은 나머지 누구보다라는 대상과 비교가생기게 되면서 욕심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기대하게 된다. 어느 부인이 자신은 너무 많이 노력하고 힘겨운 삶으로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허리가 휘어지고 지쳐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오다가 브레이크가 걸리는 날이 있었다.”나 지금 뭐하고 있지?, 내가 한일에 대해 나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알아주기나 할까?, 난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그만해 버릴까?, 그렇게 되면 나의 도움을 받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모든 일이 멈추고 마비가 되어 버리겠지.” 등 여러가지 의문이 자신에게 던져지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다는게 위의 의문과 갈등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렇지만 액면 그대로의 마음을 보일수는 없고, 확인차 질문을 던지든지,아니면 자신의 속마음을 보이기 민망해서 이런저런 투정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힘든 부분을 내놓으려고 한다. 이 부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삶이 답답하고 힘겹다고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다 언제쯤 나의 남편은 내가 힘겹게 일구어낸 나의 업적을 알아주고 고마워하며 칭찬해줄 것이며 나에게 잘못했다고 여기는 일을 미안하다고 할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다린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떡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격이었다.
이런 제스츄어를 본 상대방에게 비춰진 영상은 느낌이지만 정확한 진단일수도 있다. 실상,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기에 상대는 자신이 바라던 기대와는 아주 먼거리에 있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힘들면서 꼭 그 정도까지 해야만 해? 혹은 그렇게까지 힘들게 하는 일은 당신의 엄마자신을 위한 욕심때문이잖아.” 하는 대응이 나올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이정도까지 가면 벼랑끝에 서 있는 사람 밀어버리는 일이기에 그렇게는 접근하지는 못한다. 어정쩡한 분위기 속에서 이 부인의 갈등과 힘겹다고 스스로 느끼는 삶은 답답해져 가기만 하고 허허벌판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과 억울함이 함께 밀려온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나의 생각에 속고 있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생각의 놀음일 뿐인데 그 생각에다 행동까지 보태여 원하는 바를 성취시켜볼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런 현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며 그렇게 될 때 욕심으로 파생된 일을 “희생이다, 사랑이다”라고 착각할때가 있다.그러면서 내려진 처방은 누군가 알아주면 해결될 것 같다고 한다.몸이 어디가 아프면 그 당사자가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마음이 온전치 못하게 병이 난 것 역시 본인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병이 난 것일 뿐인데 원망할 상대부터 찾게 되고 그걸로 인하여 한가지 더 덧붙여서 의존의 병까지 합세를 하기 시작한다.
사랑 즉 진실은 힘들다고 할때까지 가지 않는다.
내가 한 일들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럴땐 멈춰서서 행여 집착으로 혹은 거래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사랑이라면 할수 있는 만큼 하고 그 결과에 만족할 줄 알며 어디쯤에서 멈추어야할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마디 말만 해주면 다 풀릴텐데 그 한마디를 못해주느냐”고 한다. 자신도 못하는 일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있다. 설령, 상대가 그렇게 해 주었다고해서 계속 위로와 만족이 될까? 그 아픈맘(서운함,원망,미움)이 나의 병이기에 그 병부터 고치지 않고서는 상대방의 한마디말에 계속해서 위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흔히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일구어냈고 힘든 사정들은 다른사람들을 위하여 한 일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과연 자신을 위한 일은 어디로 갔을까? 함께 사는 일, 헤어지는 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모든 일들, 이 모두는 나를 위한 일이 최우선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을뿐이며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기대와 설정의 틀에 맞추려고 했던 일이었다. 상대방이 나의 힘들고 지친 몸과 맘을 알아주고 달래주며 위로해주기를 바랐다면 그 상대 역시 그런 처지일 수도 있다. 관계안에서의 맘의 흐름은 둘 다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위로받고 싶은 그 맘을 알아주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더 힘들고 어려운 처지라는 그 이유는 잠시 뒤로 밀쳐둔 채 먼저 위로해주고 인정해주면 어떨까?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손해 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여유와 자유를 누리는 삶이 함께 할 것이다.
그러기에 주고서 되받으려 하지도 않으며 기대하지도 않게 된다. 예수께서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또 불교경전에서는 “머묾 없이 그 맘을 내어 놓아라”고도 했고 ,”무주상보시”라고도 했다 .기대하고 갈등하는 것은 분별에서 오는 병이다.이 분별에 묶여서 병을 앓고 있는 우리의 맘이란 것의 유일한 치유는 깨달음을 체험하는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남편의 직장일이 많아지면 늦어서 골프를 못 가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땐 힘겨워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골프를 못 가니 다른 운동으로는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없다고 여기기에 피곤하고 몸에 어디엔가 큰 병이 난 것 같은 이런저런 처지를 나열하면서 그 처지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나의 정직한 맘이라면,”또 시작이다,하루 골프 안 갔다고, 투정하고 있고 건강유지를 불안해하고 있네 “그 맘을 보고 인정이 되면 더 이상의 비판이 나올 사이도 없이 금방 지나가 버리게 된다. 분별의 설명과 비판이 덧붙혀지지가 않는다는 일이다. 분별은 붙잡는 일이고 그 생각으로 계속 머물러서 겨뤄 보겠다는 일일수도 있다.
또 정직한 맘이란 것은 그때의 그 마음이 그럴뿐이라는 것이며 머물지 않는다 .이걸 깨달음이라고도 하고 본성을 확인했다고도 말을 한다. 그렇게 될 때,상대에 대해 기대하거나, 기대가 이뤄지지 않을 때, 상대에 대해 비판과,평가 ,미움으로 날을 세우지 않게 되며, “그냥 저러고 있네” “그럴뿐이네” 하게 된다. 남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당신 오늘 일이 많아서 골프도 못 가고 많이 힘들겠어요, 직장일에 고생이 많네요.”
남편은 나의 그 말에 “아니 ,아니 ,괜찮아!” 곧 분위기가 바뀌어 버렸다.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다면, 먼저 인정해주고 위로해 주라 ! 이 일뿐이다 ! 서로 승리할 수 있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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