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약함은 핑계
나에게 “ 이 나이에 이 처지에 내가 이런 일을 꼭 해야만 할까?”, “ 이 길 아니라도 나에겐 신앙도 있고 마음을 고쳐 먹으면 되고 기도 하면 괜찮을 거야”하는 것이 이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하고 싶은 게으름이었다 그리고 “약함”은 “난 잘 참아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야 난 착해 내가 널 위해 살아 주는 거야” 이것은 내가 약하기때문에 그걸 무기를 삼고 살았던 것이다 그것 또한 치료가 필요한 나의 병명이었다. 우리가 감기가 들면 이 감기가 왜 들었는지 연구하고 분석하고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쉰다,
그건 의사나 약사들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냥 약 먹고 주사맞고 나으면 그만인 것이다
마음의 감기
마음이 아픈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생각의 지배를 받고 산다 그 생각이 나를 기쁨으로 끌고 가기도 하고 슬픔으로 데려 가도록 선택은 우리가 허락 하기에 달려있다 그 이런 저런 물결이 생기듯이 떠오르는 생각도 마찬 가지다.
비판 없이 그냥 내 놓는 즉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럴 때 “난 아프다” 고 그때의 마음을 원망이든 욕을 하던 쏟아 내 놓을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치료가 되는 일이다. 막상 스스로 체험 해보지 않고서는 알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Good Place, Safe Place 가 필요했고많은 이들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 자기 자신의 묵은 삶을 내어놓고 직면 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일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나 하나만 잘 사는 길이 아니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관계회복이 되더라는 것이다 나의 삶은 편해 지기 위하여 많이 듣고 정보를 얻고 지식을 쌓아가면서 밖으로 찾아 다녔지만 그런건 잠시 눌러 놓은 상태이고 이론에 불과했다 감각적으로 한 순간 혹은 며칠은 펀안 했다 이젠 그 생각의 이론에서 행동해야 할 시간 앞에 우리 모두는 서 있음을 …..
누구 한사람도 예외 없이 덮어 두면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이 요동 치고 아우성 친다
“나 아프다” 고,,,,
이론과 관념과 체면 속에 내가 본래 갖고 있는 자유와 사랑을 가두어 두지 말자. 여기서 우리는어둡고 무겁고 두려운 삶을 끌어 안고 일어 나야 학는 이유를 찾는다면 태어나면서 부터 주어진 인생 이라는 숙제에 희망 이라는 답을 쓸건지 변명하고 원망 하고 포장기술만 넓혀 갈건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희망 이라는 이름은 어떤 누군가가의 삶에 주인공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희망을 저버리고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와서 모든 것을 쓸어 갔을때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바다에 다 수장 되었다 4살 5살 6살 7살 이렇게 어린 아이들만 살아남았다 국가도 손을 쓸수 없었던 시기에 바닷물이 다 빠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아이들이 팔뚝만한 바까오 나무를 심고 있었다. 3년후에 이글을 쓴 작가가 다시 그곳에 갔을때 또 그 나무를 심고 있는것을 보고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거기에 그 나무를 심는다고 이 나무가 자라곘니? 대답을 한다 7살 남짓한 그 어린 아이가,,,,
“맞아요. 또 다시 거대한 해일이 밀려온다면 내가 심는 이 바까오 나무가 그 거대한 해일을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자꾸 절망 하려는 내 마음을 붙들어 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근심 걱정이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 맘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바까오 나무를 심는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내가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일에 눌려서 투정하고 징징거리면서 성인 아이로 사는 걸림돌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그 아픔을 끌어 안고 일어서서 디딤돌의 역사를 엮어갈것인지, 지금이 마음의 바까오 나무를 심을 그 때 입니다 .
자신이 뭘 할 수있고 장점이 뭐가 있는지도 모른채 자신을 원망 하고 죄의식 속에 가두어 두고 미워하면서 두려움과 한편 먹고 환경을 탓 하면서 살아왔어도 괜찮습니다 나에게는 지금 생각하는 나보다 더 나은 나로 살아가는자세가 되어있는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 할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