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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힘 – 음유시인 이동원

2024-01-25 15:58:07

고1, 내 여고 시절에 처음 듣던 그의 노래, “이별노래”로 시작으로 해서, 가수 이동원의 음악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내 차 앞자리 카스테레오 안에. 지치지도 않고 항상 똑같이. 주변에서는 15살 아이가 그런 노래를 왜 듣는지 이해를 못 했다. 나 또한 왜 그렇게 끌리는지 사실 몰랐다.

우리 학교 앞에는 DJ가 있는 꽤 큰 분식점 ‘우리집’이 있었다. 대학생 DJ 오빠가 학생들이 즉석떡볶이를 시켜 먹으면서 신청한 노래들을 틀어 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전에 하셨던 조그만 분식집이 장사가 꽤 잘 되자, 더 큰 건물로 이사해 DJ 부스까지 만들어서 우리 여학생들에게는 단연 인기 최고의 분식점 여사장님이 되셨다. 조그마했던 분식점 때부터 단골손님이었던 나와 나의 일당들은, 거의 매일 방과 후,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학교에 출석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분식점, ‘우리집’에 도장을 찍었다. 학기초엔 친구들에게 내가 “오늘 우리집에 갈래?” 하면, 친구들은 우리 집에 가자는 건지, 분식점에 가자는 건지 혼동했지만 곧 그렇게 우리 일당의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들의 우리 집이 되었다.

물론 나의 신청 곡은 필수였다. 이동원의 “이별노래”. 어느 순간부터 우리 일당들이 우리집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이동원의 이별노래가 흘러나왔다. 나의 일당들은 나를 향해 환호를 외쳤다. 우리 DJ 오빠가 나를 보면 자동으로 내 노래를 선곡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는데, 어느 날 갑자기 DJ 부스에 불이 꺼지고, 더이상 DJ 오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보지 못하고 가서 서운하다고 했다고, 우리집 여사장님이 그 DJ오빠의 말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이 사건의 주범은 우리 학교 이사장님이셨다. DJ 오빠가 여학생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우리집 여사장님을 협박반, 설득반으로 그의 주장을 관철 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가수 이동원과의 만남은 오십이 넘은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어디든 운전하고 갈 때면 내 길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추억을 생각나게 하고, 전에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던 가사들이 지금은 가슴뼈에 묻히기도 한다. 때론 슬픈 나를 위로해 주며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기도 한다.

음유시인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난 2021년 11월 14일은 참으로 슬픈 날이었다. 고국에서 언니가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연락해 주면서 “너 때문에 줄기차게 이동원의 노래를 들었었는데”.라고 한다 ‘정말 고마웠다’고 그에게 인사도 전하지 못했는데, 나는 고국에 있는 언니에게 장례식장에 한번 가 봐달라고 요청해본다. 그가 나를 위로해 준 것처럼, 떠나는 그의 날들이 외롭지 않도록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슬픈 나의 마음을 유튜브 그의 노래 사이트에 댓글로 조문을 올리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에 위안 받고 힘을 얻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알았을까. 떠나는 그가 알고 있었기를 바란다.

노래는 듣는 우리에게 큰 힘을 준다.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고, 위로해 주며 우리의 인생길을 동행해 준다. 그러면서도 정작,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인생을 얘기한 적도 없지만 따스하게 우릴 감싼다. 그건 힘이다. 묵묵히 동행하는 철학자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의 인생 한 부분을 동행했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의 힘에 대해 그에게 얘기해 주며, 그를 위로해 주고 그의 인생의 동행자가 되어 주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번 미사리 조정 경기장 근처 카페에서 그를 보았다. 바에 앉아 한잔하는 그 옆에 내가 앉아 있었다. 그때 내가 그의 음악의 팬이라고 말해줄 것을… 후회해 본다.

그래서 예술가는 외로운 건가 보다. 짝사랑처럼. 대답 없는 허공에 자신을 바치는. 대답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며 동행하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래본다. 몇 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부산에서 거제로 가는 해저터널 앞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데, 무명 가수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 나는 이동원의 “장미 그리고 바람”을 신청해 본다. 나는 그의 노래들이 내가 숨을 쉬는 그 마지막 길까지 나를 동행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나는 15세의 나에게, 평생의 나의 동반자가 되어준 이동원의 노래들을 선곡해준 나에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고마웠다고… 선곡 실력 아주 좋았다고.

● 2023년 (사)한국문협 밴쿠버문학 신춘문예 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