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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머니

2020-04-24 09:17:45

2020년 1월1일 새날이 밝았다. 새로운 소망과 희망을 안고 은혜가 넘치는 신년예배를 드리고 예배후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 본 교회에 지금까지 출석하고 있는 청지기 어머님두 분을 각각 집에 모셔드리며 신정 설날이라 옷도 곱게 입고 오셨기에 사진도 찍어드리고 안아드리며 차가 안 보일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면서 교회에서 처음 어머님들을 만났을 때를 회상해보았다.
일찍이 하늘나라에 가신 나의 어머님께서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 어느 여름 주일날 동네교회 앞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저를 보시고 어머님 교회친구분들에게 내 아들이라고 자랑을 하시고 나서 “영승아 이제 네가 너에 새 가정을 이루거든 너만이라도 교회생활을하거라.” 하셨든 그 말씀을 까맣게 잊고 살아오다가 캐나다에 와서 친척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일찍이 어머님께서 저에게 유언처럼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기도가 되어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님께서 저에게 종종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면 거울을 바라보며 어머님 흉내를 내어보기도 함니다. “영승아! 언제나 내가 네덕에 살아볼 날이 있으려나 모르것다.” 아아!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였나, 어느달 밝은 여름 초저녁 남해안 쪽 바닷물을 막아놓은 방파제를 따라서 쪽동네로 가는 넓은 뚝길가에서 철석거리는파도소리를 들으며 모깃불을 피워놓고 담소하시던 동네분들이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뚝길을 따라 걸어나오는 어머님을 보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면서부터 “아이고! 아짐씨 어째안 주무시고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하고 말씀들을 하시자 어머님께서 답하시기를 “두세상 살아볼려고 나왔지요” 하시며 일찍 잠들지 않고 밖에 나오니 또한 세상이 이렇게 있는 것을, 혼자말처럼 하시며 나를 내려다보시던 어머니를 철부지인 나는 잘난척하며“엄마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달 밝은 밤 말고 저 땅 아래는 지금 해가 떠있는 나라가 또 있다고 하데요” 하고 말하자 어머님께서는 “무슨 그런 세상이 다 있다냐?” 하시며 나에 재롱을 받아주시던 어머니께 “엄마! 나 크면 그런데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하니 아이고! 그럼 나는 죽어서 나가-볼꺼나!” 하고 말씀하시며 내손을 꼭 잡아주시던 그 어머님께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군대에 입대한 초년훈련병 시절에, 어머님은 한 많은 세상을 멀리하시고 훌쩍 떠나가신 우리 어머님!

“어머니! 저는 지금 어머님께서 그때 초여름 밤 밝은 달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던 저땅아래 있는 나라,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어머님을 생각하며, 어머님이 계신 서쪽바다가 보이는 산중턱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서 살아도 우리 어머님께서는 하나님 곁에서 “우리 아들 영승이 잘 보살펴 달라고 하시리라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이 믿고 있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우리 어머님께 나의 불효를 용서받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교회에 출석하시는 어머님들을 자동차로 모시기로 결심하고 15인승 미니버스를 준비하고 4급 면허증도 발급받아 교회 어머님들을 모셔온 세월이 어언 삼사십년이 되었습니다.”

청지기 어머님들

나의 어머님께서는 해남군 북평면 예수장로교 집안을 친정으로 두고, 유교를 숭상하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들어오셔서 매달 조상들의 제수 준비하시느라 4,5십리길 장터에까지발품으로 다니시며 평생을 보내셨다.
어머님께서는 60세가 다 되시어 서울로 옮겨 오셔서 교회에 나가시면서부터 마음의 여유를 보이셨다. 나의 큰 외삼촌께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가끔 집에 오시면 우리들에게야 고비, 조세비, 하시며 무엇인가를 들려주고 싶어하셨다.
외가사촌 큰 형님은 군목으로 월남참전하시면서 내게 영향을 많이 주셨지만 그 뜻을 모르는 내게 문학서적 읽기를 권했다. 나의 훈련병시절에는 부대안의 교회에 주일날 교목으로 오셔서 설교하시며 서로 위하고, 서로 사랑으로 위로하며 훈련 잘 받고 군대생활 잘하라고 축복기도를 해 주시고 가셨다.
그 후 나는 제대하고 세상살기에 바빠서 교회를 다니지않고 자내다가 캐나다에 와서야 친척되시는 가족들을 따라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이다. 그제야 어머님의 말씀과 외삼촌의기도와 군목 중령 배영철 외가집 형님의 기도가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하고, 많은시간을 기다려주시고 역사해 주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 어머님의 모습을 교회 어머님들에게서 발견하고 청지기 어머님들과 함께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고 있다

“교회 어머님들께서 먼 훗날 하늘나라에 가시거든 나의 어머님 성산배씨(배성심) 어머님을 뵙게 되시면 사초리 동쪽마을, 작은 동네 양철, 영승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들으실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서 제가 교회 어머니들과 이날까지 함께하였노라고 말씀해주시면 저의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서 청지기회라 이름을 짓고 시작할때는 약 25명 정도 되었는데 어머니들께서 한분한분 소천하시고 헤어지셔서 지금도 정정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자리를 지켜오시는 어머니들이 교회 앞자리에 앉아계시는것만 보아도 은혜롭고 특히 올해 97세가 되시는 이권사님과 91세가 되시는 진권사님을 뵙는 교인 모두는 옷깃을 여미게되고 각자의 믿음생활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