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배(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 회장)
12월 7일 한인 연합 송년회를 마지막으로 밴쿠버 교민사회의 공식적인 공개 송년회는 끝이 난 듯하다. 직능별 직장별 동호회별 동창회별 송년회는 아직 남아 있지만 모든 교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실업인 협회, 늘푸른 장년회, 그리고 한인 연합 송년회가 손꼽아진다.
필자는 그동안 한인사회 공개 송년회에는 잘 나가지 않았다. 나이 드니 300여명 이상 모이는 성대함보다 오붓하고 조촐한 ‘우리들의 송년회’에 더 정이 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실업인 협회와 한인회 등과의 친목관계가 돈독 해져 서로 참여하고 후원하는 사이로 발전했기 때문에 부득이 큰 송년회에 일부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실업인 협회 송년회는 워낙 오래 지속되었고, 푸짐한 경품권 추첨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항상 참가자가 많다. 이제는 교민들이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나누거나 일년 내 섭섭했던 감정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풀 수 있는 자리로 굳어지고 있다.
한인 연합 송년회 또한 뜻이 있었다. 밴쿠버 이민사 70여년동안 여러 단체가 합동송년회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한인회장을 비롯 참여 단체의 연령대가 젊어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한인사회가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외면했던 것을 생각하면 연합송년회의 탄생에 격세지감이 아니 들 수 없다. 세월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이 실감난다. 어느 덧 분쟁의 세대는 가고 화합의 세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은가.
한인회를 비롯, 민주평통, 무역인협회(OKTA), 국제한인여성네트워크(KOWIN), 한인장학재단, 그리고 청년단체인 C3까지 함께한 이번 송년회의 준비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인회가 그동안 외면당했던 이유는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운영의 부재 때문이었는데, 여섯 단체의 연합송년회 준비위원들은 젊은 세대 답게 대면은 물론 카카오톡, 또는 화상회의를 통해 수십차례 회의를 가졌다. 늘푸른 장년회도 함께 하려 했지만 시간과 장소, 분위기 등이 연장자들에게는 잘 맞지 않은 듯하여 부득이 합류하지 못했다.
해서 따로 장년회 명의 한 테이블을 마련하여 간부회원 10명이 참여하여 사상 초유의 합동 송년회를 함께 즐겼다. 20여년간 다양한 한인단체에서 봉사한 전문봉사꾼(?)의 눈으로 볼 때 첫 연합송년회임에도 불구하고 잘 치렀다고 생각된다. 물론 초창기에 필자가 제안한 편리한 장소(한인들의 접근성이 수월한), 입에 맞는 음식(한식 위주), 시간대 조정(점심 식사 중심)은 순전히 연장자들의 사정을 감안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낮에는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청·장년임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자. 어찌되었던 잔치는 무사히, 그리고 훌륭하게 끝났다. 이번 한인연합회 송년회를 통해 화합과 단결의 교민사회를 보았다.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던 한인사회는 옛날 이야기다. 교민들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적극 참여해 주셔도 좋을 듯하다. 연합 송년회를 주도한 젊은 한인회장의 지도력을 보았고, 이에 호응한 교민들의 단결력도 보았다. 새해에는 이들이 좀 더 생산적이고 실질적인 사업을 통해 한인사회를 빛내었으면 한다.
우선 흉가처럼 방치된 한인회관 개보수를 위해 교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젊은 층에게만 맡겨서도 안되고 노년층이 주도하면 더더욱 힘들다. 다 같이 함께 십시일반 손을 보태어 회관부터 살려야 한다. 경제대국 10권 이내의 한국, 그 위상에 걸맞게 빠른 시일내에 회관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버나비나 코퀴틀람 등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한인문화회관을 건립하는 일이다. 연아마틴 상원의원의 노력에 의해 연방정부가 10월을 ‘한인문화의 날’로 지정하였고, 폴 최도 BC 주정부 의원이 되면서 한인문화회관 건립추진을 약속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관 건립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적어도 일본 니케이센터에 버금가는 문화회관을 건립하자. 우리가 연합 송년회 결성으로 보여준 단합과 저력이면 단시일내에 건립이 가능하다.
인생 두 번 살지 않는다. 기회가 올 때 타인을 위해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삶은 고귀하고 보람차다. 특히 미래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젊은 한인사회 지도자들도 늙는다. 그들 뒤로 청소년 세대들이 따라오고 있다. 그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예전처럼 허무와, 실망과, 분열과, 분쟁의 길로 인도하지 말자. 세월이 흘러 미래세대들이 한인사회를 이끌어 갈 때 앞선 세대들이 피땀 흘려 만든 한인문화회관에서 우리 고유의 얼과 예절을 배우고, 역사와 문화를 전수받으며 서로 다민족들과 나눌 때 한국인으로 서의 정체성은 굳건히 확립되고, 교민들은 진정한 선진시민으로 거듭나 한국과 캐나다사회를 연결해 주는 자랑스러운 일등시민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잔치가 끝난 뒤. 우리는 이러한 목적을 화두로 삼아 매진해야 할 것이다. 교민사회 남녀노소 다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