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시사칼럼 8] ‘케데헌’과 한국문화 / 이원배](https://canadaexpress.com/news/wp-content/uploads/2025/10/b25.jpg)
이원배(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 회장/수필가)
요즘 ‘케데헌’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케데헌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줄임 말이다. 2025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인 케데헌은 캐나다의 한국인 이민자 1.5세대 출신인 매기 강이 감독했다. 줄거리는 K-pop 걸그룹 ‘헌트릭스’(멤버-루미, 미라, 조이)가 악마 사냥꾼으로 변신해 세계를 지키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판타지이다.
강 감독은 한국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신화와 현대 K-pop을 융합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한국 문화의 전통과 현대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글로벌 히트(넷플릭스 사상 최고 조회수 기록)를 이뤘다. 영화 속에는 주요 한국 문화 요소, 신화적 상상력, 그리고 현대 한국인의 일상적 생활을 함께 버무려 맛깔스럽게 보여주면서, 한국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를 살펴보면, 한국의 전통 문화요소는 저승사자, 도깨비, 무당, 그리고 갓을 쓴 까치 캐릭터(‘서씨’), 호랑이 캐릭터(‘더피’, 전통 민화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음), 부채춤과 같은 전통 무용, 종묘제례악 등 전통 예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일상적 생활문화요소는 K-POP 아이돌 문화, 즉 걸그룹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통해 K-POP 아이돌 그룹의 활동, 무대, 팬덤 문화(팬사인회 등), 치열한 경쟁 구도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는 너무 낯익고 흔한 광경이라 간과하기 쉬운 서울의 일상과 배경, 풍경과 장소, 즉 낙산공원 성곽길, 남산 서울타워, 북촌 한옥마을, 명동거리, 청담대교, 자양역(구 뚝섬유원지역) 등 실제 서울의 명소와 거리 풍경이 디테일하게 등장하여 익숙한 한국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밥, 컵라면, 새우깡, 떡볶이 등 한국의 일상적인 먹거리 문화가 노출되고, 식당에서 수저 아래에 냅킨을 놓고 식사하는 모습이나 대중목욕탕에서의 목욕장면 등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세밀한 생활 문화가 묘사되어 있다.
다문화사회인 캐나다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배우고 체험하면서 정체성과 자긍심의 확립을 도모하고 있다.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바야흐로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삼국 문화 중 한국문화가 대세를 이루는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캐나다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가게 될 차세대들은 어떠한가. 그들이 뿌리인 본관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심지어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같은 한국 고유의 이야기도 잘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차세대들에게 물어보면 한글학교 다닐 때 배우지 못했다고 하고, 부모세대들에게 물으면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잡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데,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국역사와 문화를 배울 시간도 없고, 필요도 없어서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부모세대들 또한 생업에 바빠 자녀들에 대한 정체성 교육을 할 수 없다.
여기서 느끼는 것은 조부모세대의 부족이다. 한국은 제사나 명절 때 항상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게 되면 자연스럽게 역사와 문화를 윗세대로부터 전수받는다. 필자가 어릴 때는 부모님들이 제사준비 하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삼신할미’, ‘도깨비방망이’, ‘혹부리영감’, ‘장화홍련전’ 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학교에 가면 국어시간에 고전소설을 배우고, 일상생활의 대화에서는 인용도 했다. 조부모 없는 단독세대가 많고, 기초 한국어 교육으로 끝인 캐나다 사회에서는 한국의 역사문화교육은 언감생심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시작한 것이 한인 역사문화 교육이다. 2년전 차세대 들과의 모임에서 그들이 제안한 ‘캐나다 한인 문화유산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세대들이 한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후세대나 타민족에게 전파할 수 있을 때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이 가능하다. 그래서 지난 8월 ‘제1회 캐나다 한인 역사문화 아카데미’ 강좌에 이어, 한국의 신화, 설화, 고전문학, 음악, 미술, 예절과 풍습 등 다양한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관련 분야를 강의해 줄 수 있는 분들의 동참을 또한 바라고 있다.
주변에서 말린다. 그걸 누가 들으러 오겠느냐고. 그러나 보라. 수많은 캐나다 이민자 후손 중에서 유독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고 아낀 한 사람, 메기 강 감독이 있어서 오늘날 ‘케데헌’은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 한 사람이라도 배출할 수 있다면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해변가로 밀려온 수많은 불가사리 중 한 마리를 바다로 돌려 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 한 마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어느 어부의 대답이 필자를 자극한다.
자꾸 우리 밖을 뛰쳐나오려는 양떼를 지키는 알프스 어느 산골마을의 ‘고독한 양치기’처럼, 자꾸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고 잊어버리려는 세대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을 시행하며 ‘고독한 한국문화 지킴이’가 되려 한다. 모두가 쓸데없는 일이고 시간낭비라고 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