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이원배

2026-01-22 11:17:52

‘붉은 악마’ 응원단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서포터 그룹이다. 1995년에 친목 모임으로 시작되었으며, 1997년 코리아컵에서 처음으로 조직적인 응원을 선보였다. 같은 해 브라질전에서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며 ‘붉은 악마’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공식 출범식은 1997년 8월 10일에 열렸고, 첫 원정 응원은 1997년 9월 28일에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100여 명 규모로 출발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회원 수가 6만 7천 명까지 급증하며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의 비용으로 한국팀이 출전하는 대내외 축구전에 참여하여, 선수들의 긍지를 살려주고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요즘은 현지 교민들이 합세하여 한국인의 단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내가 20여년전 밴쿠버로 이주했을 때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한국인은 새로 온 이민자에게 사기를 잘 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손해를 본 것은 대부분 타민족으로 부터 였다. . 오히려 외롭고 힘들고 절망할 때 위로해 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이들은 같은 동포였다. 심지어 주변 외국이민자들은 한국인의 단결력을 부러워했다. ‘붉은 악마’ 응원단의 활약이야 TV를 보면서 알았겠 지만, 2010년 동계올림픽때 김연아 선수 응원단을 보고 더 그랬다. 한국인의 함성이 무서웠다는 다소 과장 섞인 칭찬도 들었다.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나쁜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좋은 사람들도 많다. 한국인은 만나면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래알 같은 민족’이라고 자기비하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시대나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이다. 일제의 앞잡이인 밀정들이 독립 운동하는 사람을 고발하거나, 순진한 얼굴을 한 이웃이 빨치산으로 변하여 양민을 학살하는 현장을 목격한 세대들은 동족을 믿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인 것 같다.
그러나 전후세대들은 좀 다르다. 그들은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소위 독재자라고 하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피폐해진 조국을 살리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터전위에 한강의 기적을 실현한 세대이다. 부존자원이 별로 없는 한국은 수출입국으로 우뚝 섰는데 자랑스럽게도 우리 세대, 즉 7080세대가 그 대열에 함께 했다. 열사의 사막에서, 낯선 오지에서, 차별 받는 선진국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일했기에 오늘날의 경제대국을 만든 것이다. 그때 느낀 것은 함께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일산 신도시 개발 때 나는 동남은행 원당지점장으로 부임했는데, 당시 8,500억원에 달하는 토지배상금을 유치하기 위해 15명의 직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배상금 유치 전략을 짜고, 정보가 있으면 나누고, 함께 도왔다. 하위부터 상위직급까지, 누구 하나 일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직원이 없었다. 그래서 원당지점은 전국 그룹 최우수 실적 점포로 선정되었다. 그 일사불란한 단결력은 지금 생각해 봐도 기적처럼 느껴진다. 요즘 그렇게 일을 시켰다가는 직원들이 노동조합에 고발하여 지점장이 징계를 받을 것이다.
최근 버나비 시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모 한국인 젊은이가 교민사회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시의원은 신민주당(BC NDP)과 버나비 시민협회(BCA) 소속 당원들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후보자끼리 정책대결을 벌이는 경선과정을 거친다. 이 광경을 10여년 전에 지켜 보았다. 경력과 학력도 화려하고 미모도 출중한 백인 여성후보가 유창한 시정발전을 위한 정책도 훌륭하게 발표했다.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반면 아시아계 남성 후보는 영어도 어눌하고, 정책내용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핵심을 파악할 수 없었다. 참석자들의 반응도 별로 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선결과는 아시아계 남성 후보자의 승리로 돌아갔다. 아시아계 후원자들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정견발표에 호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핏줄로 엮인 민족의 저력을 누가 당하랴.
자. 지금으로 돌아가자. 자랑스러운 우리의 시의원 후보는 우선 300여명 이상의 당원 추대를 받아야 경선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 30대부터 50대사이의 교민층이 앞다투어 한인 시의원을 만들기 위해 ‘붉은 악마’처럼 당원가입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나이 든 교민층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첫째는 가입시 납부하는 당비 $20이 아깝고, 둘째는 ‘생기는 것 없는 일’에 투자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그냥 관심 밖이다. 그저 한국 정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과거 신 재경 BC 주의원은 지금 각종 한인 군 출신 단체가 잘 사용하는 버나비의 ‘호국회관’을 마련해 주었다. 연아 마틴 상원의원은 연방차원에서, 폴 최 BC 주의원은 주정부 차원에서 ‘한인문화의 날’을 제정했다.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민족이 특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필리핀 연방정부가 메트로 밴쿠버 지역에 필리핀 문화센터(Filipino Community and Cultural Centre)건립을 10년간 총 510억 캐나다 달러 규모의 새로운 인프라 펀드(Build Communities Strong Fund)를 통해 지원한다고 한다. 100만명의 필리핀계도 무시할 수 없지만 10여명 이상의 연방, 주, 시 정부 정치인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이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이 있다. 한인사회도 유능한 젊은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하여 필요한 사항을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캐나다에 살아가는 동안 현지 정치에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자세로 임하면 정부도 한인사회에 대해서는 ‘내 알 바 아니다.’로 일관할 것이다. 지금 한인사회의 숙원사업인 문화센터 건립이나 늘푸른 장년회가 주관하는 ‘캐나다 한인 문화유산 박물관’ 건립은 가만히 앉아서 될 일이 아니다. 교민 성금?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세월에? 그러니 정부지원이 요구된다. 필리핀계뿐 아니라 많은 타민족 커뮤니티에서 앞다투어 동족 정치인을 양성하려는 소이이다.
밴쿠버 한인 사회. 그 어느때보다도 ‘붉은 악마’의 정열적이고 조직적인 정치인 후보자에 대한 응원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짜자작 짝 짝’하며 다 함께 힘을 모야 젊은 정치인후보들을 응원하면 우리의 꿈과 소망은 이루어 진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부끄럼 없는 선대가 되어야 한다. 누가 알겠는가? 시련과 실패를 극복하며 우리 세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듯이, 지금의 노력이 장차 시장, 주정부 수상, 연방정부 수상을 만들어 낼 지.

글쓴이 | 이원배
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 회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