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 주상복합 ‘밴쿠버 하우스’ 바로 아래 방치
개발 지연 속 도심 흉물로 남아
밴쿠버 도심에서 가장 이색적이면서도 어색한 풍경 가운데 하나는 비치 애비뉴(Beach Ave.) 711번지에 자리한 폐주유소다. 이곳이 시민들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단순히 버려진 시설이어서가 아니다. 건물 하부가 깎여 나간 듯한 독특한 회전형 구조로 유명한 초고급 주상복합 ‘밴쿠버 하우스’ 바로 아래에 방치돼 있어 680만 달러짜리 펜트하우스를 비롯한 최고급 콘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랜빌 st. 브리지 옆에 웅장하게 서 있는 59층짜리 밴쿠버 하우스의 위용은 대단하다. 현재 이곳의 최상층 펜트하우스는 680만 달러에 매물로 나와 있으며, 심지어 입주민 전용 ‘개인 와인 창고’ 한 칸의 분양가만 28만 8천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이웃에는 녹슨 철망 펜스로 둘러싸인 옛 주유소가 아스팔트 틈새로 잡초를 무성하게 피워낸 채 방치되어 있다. 내부 부속이 모두 꺼내진 4대의 녹슨 기름 펌프는 과거 펄스크릭 일대가 공업 지대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씁쓸한 유물처럼 남아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왜 이 땅이 밴쿠버 하우스 개발 프로젝트에 포함되지 않았는지를 두고 온갖 추측과 소문이 무성했다. “고집 센 알박기 노인이 터무니없는 거액을 요구했다”는 소문부터, “시세 차익을 노린 해외 원정 투자자가 땅을 사들인 뒤 튕기고 있다”는 이론까지 다양했다.
비치가 711번지는 수십 년간 ‘블랙탑 택시’의 정비용 주유소로 쓰이던 곳이었다. 블랙탑의 모회사인 ‘비치 플레이스 벤처스’는 지난 2011년 이 부지를 650만 달러에 숫자로 된 법인 회사에 매각했고, 이 회사는 이후 ‘반티지 패시픽 디벨롭먼트’로 사명을 바꿨다. 등기부상 이 회사의 첫 번째 이사는 홍콩 센트럴의 오피스 빌딩에 주소를 둔 ‘척 번 감’이라는 인물이며, 또 다른 이사는 밴쿠버 하우 스트리트에서 로펌을 운영하는 여변호사 조안나 코스탄스키다. 코스탄스키 변호사는 해당 부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설령 안다 하더라도 언급할 권한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도시 계획가 로버트 렌거의 분석에 따르면, 밴쿠버 시청은 2010년 보고서 당시 개발사인 웨스트뱅크가 711 비치 부지까지 한데 묶어 전체 블록을 매입·개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웨스트뱅크가 최종 토지용도 변경안을 제출했을 때 711 비치 부지는 제외되어 있었다. 렌거는 “개발사 입장에서 그 주유소 부지가 전체 부 지 중 가장 평당 단가가 비싼 땅이었을 것”이라며 “굳이 그 땅을 사들이지 않고도 현재의 랜드마크 건물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당시 밴쿠버 시는 2014년 밴쿠버 하우스 부지 일부를 3,240만 달러에 개발사에 팔았는데, 렌거는 이것이 종 상향 이후 가치의 25%에 불과했다며 시의 토지 매각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홀로 남겨진 711 비치 부지의 미래다. 단독으로 무언가를 짓기엔 땅이 너무 협소해 개발 잠재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현실은 감정평가액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2018년 당시 890만 달러에 달했던 공시지가는 2026년 현재 350만 달러까지 폭락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러한 토지를 개발 주체에서 소외된 ‘고아 부지’라고 부른다.
게다가 과거 주유소로 쓰였던 탓에 심각한 토양 오염 가능성이 커, 개발을 시작하려면 막대한 토양 정화 비용을 먼저 감당해야 한다. 밴쿠버시는 “향후 제안되는 개발 유형과 정책에 따라 최고 6~8층 높이의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최종 형태와 높이는 주변 건물과의 조화, 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 등을 고려한 시의 심사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