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 한 음에 담긴 44년” 밴쿠버 울린 석낙성(Nancy Suk)의 헌정 무대

2026-04-09 11:57:33

관객 숨죽인 채 집중…음악으로 이어진 삶과 공동체

바이올리니스트 석낙성(Nancy Suk) ‘Mozart & Beethoven Violin Sonata Night’ 공연이 4월 4일 오후 7시 밴쿠버 유니테리언스(Vancouver Unitarians)에서 열렸다.
잔잔한 조명이 내려앉은 공연장. 첫 음이 울려 퍼지자 객석은 이내 숨을 죽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석낙성(Nancy Suk)의 활 끝에서 시작된 선율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공간을 채워나갔다.
밴쿠버에서 40여 년간 음악과 함께해 온 그녀의 삶을 기리는 이번 리사이틀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한 예술가의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무대 위에는 낸시 석과 함께 피아니스트 사라 박, 플루티스트 실비아 박이 무대에 올라 섬세하면서도 밀도 높은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모차르트의 밝고 경쾌한 선율이 흐를 때는 객석 곳곳에서 미소가 번졌고,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의 강렬한 전개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빠른 패시지와 격정적인 표현이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에 고정됐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박수는 점점 더 길어졌고, 공연장은 따뜻한 공감으로 채워졌다.
특히 이번 무대는 석낙성(Nancy Suk)의 음악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간이었다. 7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살아온 그녀의 여정이 한 음, 한 음에 스며 있었다. 낸시 석은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서울 필하모닉 등에서 활동한 뒤 캐나다로 이주해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국제적인 무대를 경험했다. 남편인 지휘자 석필원(Peter Suk)과 함께 1982년 필그림 오케스트라(Pilgrim Chorus and Orchestr)를 창단해 지금까지 90회 이상의 공연을 이어오며 지역 사회에 클래식 음악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해왔다.
공연 중간,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공감의 흐름이 형성됐다. 음악을 매개로 쌓아온 인연들, 제자, 동료, 가족, 그리고 오랜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관객석에 앉은 한 참석자는 “연주를 듣는 내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듣는 느낌이었다”며 “특히 마지막 곡에서는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은 화려함보다는 깊이로, 기교보다는 진심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무대 위 연주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이날 공연이 남긴 여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44년. 긴 시간 동안 이어온 음악의 길은 이날 밤, 밴쿠버 한 공연장에서 다시 한번 따뜻하게 울려 퍼졌다.
이번 공연은 한인신협과 최치과, 필그림 오케스트라가 후원했다.

이지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