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의 기억 / 예종희

2026-04-09 08:33:19

2월 1일 새벽.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2시경. “아이고 이 불쌍한 것아…. ” 거실에서 올라오는 울음소리. 얕게 잠이 들었나 보다. 두 아이도 거실로 모이고 그 마지막 장면을 본 아내의 말을 들었다. 작년부터인가 피검사 후 신장과 간 수치가 안 좋아 그동안 먹는 것에 많이 신경이 쓰였다. 간간이 발작이 있긴 했지만 작은 근육 경련 후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곤 해서 그때도 가만히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서 다가가 심장을 짚어보니 맥이 뛰지를 않더라고. 이것이 전해 들은 메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11살을 2달 정도 앞두고 메리는 서둘러 구름을 탔다.

이민 초기에는 장사하느라 바쁘고 렌트로 집을 여러 번 이사 다니느라 반려견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2015년 집을 장만하고서 제일 처음 한·일이 반려견 입양이었다. 2달 된 강아지를 농장에서 처음 보고 아내의 간택을 받아 함께 집에 온 여름날이 생각난다. 돌아오는 길의 설렘과 흥분. 꼬지지한 아이를 목욕시켰더니 오랫동안 잠을 잤다. 주변 상황이 바뀌어서 받은 스트레스를 잠으로 푼 것이라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기의 자는 모습은 순수 그 자체이다. 메리의 엄마는 시추이고 아빠는 제페니스친이다. 얼굴은 짧은 주둥이에 털은 비교적 북슬북슬하고 꼬리는 긴 털에 화려했다. 주둥이가 짧아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조금만 숨차면 캑캑거리며 힘들어했다. 폐가 약했던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때는 털갈이가 엄청났다. 잠깐 가게에서 돌아와 소파에 누워 쉬던 어느 여름날 털로 만든 작은 공들이 거실에서 바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약한 결벽증이 있는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성능이 좋은 것으로 여러 번 바꿨다.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아내는 반려견이 처음이다. 메리가 떠난 후 나에게 고백했다. “그때는 정말 갈등했었어. 내가 저 아이를 정말 키울 수 있을까? ” 그러나 여우가 어린 왕자와 친구가 되어가듯 시간이 지나며 둘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이렇게 사랑은 불편과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견디게 하는 신비한 약인 것이다.

1년 동안 갑자기 몸무게가 많이 빠지긴 했지만 지난 여름에는 나와 산책하러 다닐 정도로 활기가 있었다. 돌아서 생각해 보니 지난가을부터는 약을 달고 살았다. 그날 낮에는 거실을 걷다가 처음으로 주저앉는 메리를 봤다. 다가가 안아주며 머리를 잡고 서로 빤히 눈을 마주쳤다. 그때가 마지막으로 깊게 바라본 추억이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능력에 맞지 않는 장사에 허덕이느라 항상 시간에 쫓겨 한창 자랄 때 시간을 나누지 못한 미안함. 아기 때 처음 입양해 가끔 책 볼 때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자던 묵직한 따스함. 밤에 가계를 정리하고 터덜터덜 어두운 집안의 계단을 올라올 때 들리던 작은 헬리콥터 소리. 불을 켜보니 발을 구르며 꼬리로 나를 격하게 반겨주던 그 재회의 기쁨. 이 기억들이 지금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그 까만 물기 있는 눈에 다 들어있었다. 지난겨울 안에서 뜻하지 않게 병시중했던 아내는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고생시키지 않으려 서두른 거야. 착한놈…. ” 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원래 착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때 메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그날이 자신의 마지막날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렇게 메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 착한 아이였다.

이렇게 해서 2월 한 달은 애도의 달이 되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곳곳에 메리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다른 산책하는 개들을 공원에서 한참 바라보고 서 있게 된다. 메리가 자주 웅크리고 자던 텅빈 회색 방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집에 들어와 계단을 올라오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에 숨을 크게 들이켜게 된다. 식탁에서 먹을 때 자꾸 의자 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가끔 들리던 멍멍 소리가 없는 것이 어색하다. 집이 적막이다.

이별이 주는 상실감 때문에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남의 끝인 헤어짐을 이미 맛보았기에 새로운 만남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서 조금씩 주고 조금만 받는다. 익숙하고 무난함에 만족하고 예측할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확실하게 선을 긋고 못 넘어오게 하며 자신도 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만의 경계에 스스로 감금된 자신을 발견한다. 항상 웃음 띤 얼굴로 외롭고 불안한 우리의 모습이다. 익숙함을 떠나 새로움을 만드는 힘. 일상의 껄끄러움을 견디고 불안한 미래를 엮어가는 힘. 관계의 찝찝한 불편을 유머와 사랑으로 채워가는 기술. 친밀감을 연습하는 기회가 점점 귀해지고 있다. 기회가 적어지면서 반복을 안 하고 혼자가 익숙하다. 친밀감의 근육은 점점 빠져서 이제는 사소한 충격에도 크게 다친다. 존재의 골밀도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통제되지 못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약물로 위로받고 잠재된 불안함은 흉기로 무장한다. 외로움과 불안이 만연하고 약물중독과 끊임없는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평소 잠재된 풍경과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을 온몸으로 한 번에 받지 않고 조금씩 잘라 나눈다. 그 고통의 정체가 흐릿해도 조금씩 닦으며 언어로 선명하게 조탁해 나간다. 불안하고 흐릿한 느낌이라도 가까운 주변과 느낌을 나누고 수다 떨며 함께 울고 웃는다. 사람 안에서 치유받고 사람 안에서 단련된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필요로 하고 모여 허구의 언어를 발전시킨 원인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함께하며 인류는 단련되고 다음만남을 시도할 용기를 얻는다.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의미를 만들고 희망하며 다가올 시간을 기다린다.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단련된 힘은 고통을 벗어나게 해준다. 2차대전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프랑클은 인간이 의미를 찾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의미를 찾으면 살아남고 의미를 잃으면 생명도 잃는 경험을 온몸으로 경험한 생존자이다.  

메리가 떠난 후 내가 느끼는 상실감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찾다가 메리가 떠난 상실감이 우리 가족에게 각인된 공통의 기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1년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그 시간은 우리 가족의 기억을 횡단한다. 그 공통의 기억들이 우리의 감정을 하나로 모으게 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비로소 소통할 수 있게 한다. 공통된 기억이 없는 민족과 공동체와 가족과 대화는 바람에 날아다니며 방황하다 빵빵한 풍선처럼 터지곤 한다. 그렇게 메리는 우리 가족에게 공통의 기억이 되었다. 애도 기간인 지금은 서로 조심스럽고 말을 나누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힘든 과거에 메리가 우리와 함께했었다는 것. 자주는 아니라도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는 것. 우리가 힘들 때 곁에서 영문도 모르고 그 무게를 함께 나눠졌다는 것. 좀 더 건강할 때 아름다운 시간을 많이 주고받지 못한 미안함과 조금 더 오래 살게 해주지 못한 아쉬움. 이런 기억과 감정들을 남기고 간 그 존재. 메리도 우리의 가족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안녕 메리.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이제 고통이 없는 곳에서 편안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머물기를. 가끔은 기억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달려 나오기를 기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