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긴 시간 안부조차 제대로 묻지 못한 채 각자의 섬에서 살아왔다. 일상의 권태와 관계의 소원함이 마음을 짓누르던 차에 결정한 여행이었기에, 나는 설렘과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동시에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체가 지면을 박차고 구름 위로 솟구치는 순간, 거대한 도시는 종이처럼 접히며 발 아래로 사라졌다. 고층 빌딩과 도로는 미세한 실핏줄처럼 흩어졌고, 사람들의 분주한 삶은 먼지보다도 옅어졌다. 창밖은 생경할 정도로 투명하고 아득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서 있던 바닥을 잃어버린 기분에 사로잡혔다. 구름 위로 쏟아지는 빛은 웅장했지만, 그 눈부신 풍경 어디에도 내가 딛고 설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높이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졌지만 내가 의지할 바닥은 점점 더 희미해졌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실은 공기였다는 듯, 무엇을 그리 붙들고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고 믿었던 순간, 기체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예고 없는 난기류였다. 기체는 뒤틀리는 비명을 질렀고, 선반 위에서는 둔탁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옆자리 승객은 공포에 질린 채 앞좌석 등받이에 몸을 바짝 붙였다. 공기는 한순간 방향을 잃었고, 거대한 쇳덩이는 허공에서 맥없이 휘청거렸다. 창밖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뿌연 구름의 늪이었다.
머릿속엔 ‘추락’이라는 단어가 파편처럼 번뜩였다. 조금 전까지 탐닉하던 고상한 관념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던 욕구와 사소한 자존심, 세상을 내려보던 오만한 시선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남은 것은 의자 손잡이를 움켜쥔 손가락의 뻣뻣한 통증뿐이었다. 벨트가 몸을 단단히 조여왔다. 묵직한 압박감만이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탯줄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던 태아처럼, 나는 좁은 좌석 안에 몸을 웅크린 채 작은 끈 하나에 온 생을 맡기고 있었다. 예정된 약속도, 부풀었던 자아도 공포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오직 살아 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차가운 기내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다행히도 어둠의 터널은 길지 않았다. 요동치던 기체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자 나는 온몸의 힘을 풀고 등받이에 깊이 몸을 기대었다. 다시 햇살이 쏟아지고 지평선이 모습을 드러났을 때,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돌아갈 곳이 보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이토록 쉽게 안도할 수 있었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았다. 그 충격은 마치 관념의 세계에서 깨어나라는 장엄한 타종 소리 같았다. 몸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허공을 떠돌던 나를 땅이 단단히 붙잡았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과 자동차 경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조금 전의 적막한 공포와는 전혀 다른, 생명력 넘치는 익숙한 소음들이자 살아있는 생의 아우성이었다.
나는 소음들 사이에서 나를 기다리던 K를 발견했다. 반갑게 맞잡은 친구의 손에서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온기가 전해졌다. 그것은 허공을 헤매다 돌아온 나를 지상에 붙들어 매는, 따뜻하고도 묵직한 감각이었다. 지상에서의 삶은 여전히 시끄럽고 복잡하다. 하지만 땅은 그 모든 소란과 고통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위를 걸으며, 땅이 내어주는 무게를 온몸으로 느낀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단단한 저항은 내가 이 세계에 닿아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리라.
삶은 언제든 예고 없는 난기류를 만나 휘청이겠지만, 허공에서 바라본 세상은 한없이 가벼웠으나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도망칠 수 없는 이 무게였다.
나는 지금, 그 단단한 바닥 위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