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틱턴 주민·기업, 생필품·숙식 지원 손길 연이어
월트 닉어슨 씨는 10일 저녁, 자신이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삶을 산 지 사흘째 되던 날 슈퍼스토어 매장에서 생필품과 식료품이 담긴 쇼핑 카트를 밀며 나왔다. 그는 8일(토) 새벽 1시 30분, 대피하라는 긴급 전화를 받고 서머랜드의 집을 떠났다.
단 2시간 반 밖에 자지 못한 채 새벽 3시 펜틱턴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일하는 카지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옆에 의자를 놓은 뒤 커피를 홀짝이며 오전 10시 문이 열리기 만을 기다렸다. 카지노 문이 열리자 직원들은 주차장에 모여 있던 대피민들에게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전부 무료로 제공하며 매장을 전면 개방했다. 닉어슨 씨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도움을 주었다”며 “정말 감동적인 광경이었다”고 회상했다.
구호 지원은 각기 다른 대기 줄을 거쳐 하나씩 차례로 제공되었다. 112달러 상당의 식수 쿠폰, 150달러의 의류 지급권, 50달러의 위생용품비, 그리고 모텔 2박 숙박권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그는 식수 쿠폰에 대해서는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결코 충분한 금액은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카트에 담긴 식료품 덕분에 일주일 이상은 버틸 수 있게 되었고 어차피 먹어야 할 음식이었기에 “마치 공돈을 얻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온정의 손길에 가슴 뭉클
닉어슨 씨는 7일(금) 오후 5시 직후 서머랜드 서쪽 약 15km 지점에서 ‘볼드 레인지’ 산불이 발생한 뒤 대피령을 받은 1만 2,000여 명의 주민 중 한 명이다. 이는 올해 BC주에서 발생한 산불 대피령 중 가장 큰 규모다. 불길은 불과 수 시간 만에 오카나간 호수 방향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고, 그날 밤 산불 영향권은 약 50㎢에 달했다. 11일 피해 면적은 150㎢ 이상으로 확대되었으며 여전히 통제 불능 상태로 타오르고 있다. 당국은 당분간 더위와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진화 작업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7일, 서머랜드 북서쪽 메도우 밸리 지역을 탈출하려던 80세 여성이 사망했다. 데이비드 이비 주총리는 8일 주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주택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정확히 몇 가구가 소실되었는지는 아직 당국이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주 전역에서 약 2만 2,000명의 주민에게 강제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다.
서머랜드에서 쫓겨난 주민들에게 지난 며칠은 긴 대기 줄과 ‘잠은 어디서 자야 하는지’, ‘집이 아직 무사한지’와 같은 답 없는 질문들의 연속이자 힘겨운 투쟁이었다. 그 와중에 이웃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손길이었다. 공식적인 구호 시스템이 과부하를 겪는 동안 낯선 이웃과 자원봉사자, 지역 기업들이 앞장서서 식사와 잠자리, 생필품을 나누었다.
비상지원서비스(ESS) 자원봉사자인 다이앤 벨 씨는 산불이 났을 당시 펜틱턴이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어 초기에는 피난민들을 수용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피난민들은 봉사자들이 더 나은 숙소로 안내하기 전까지 며칠 동안 차 안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펜틱턴 트레이드 앤 컨벤션 센터는 보이지 않는 구호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피난민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의료진, 가입자와 상담하는 손해 보험사 직원들, 서류 작성을 돕는 구호 인력, 그리고 등록과 식사, 답변을 기다리는 끝없는 줄이 이어졌다. 장소 곳곳에는 신선한 생수병이 비치되어 있다.
이곳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별도의 쉼터가 24시간 문을 열었다. 페이스북 및 ‘JCI 펜틱턴’ 청년회의소 봉사자인 마리오 마하노 씨는현장에 상주하며 다른 곳에 체크인하지 못했거나 잠을 이루지 못해 밤늦게 커피나 간식을 찾는 이들을 위해 24시간 순번제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피난민들이 음식, 칫솔, 샴푸부터 그저 앉아서 쉴 공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찾으러 온다고 전했다. 개와 고양이를 동반한 피난민이 많아지자 펫스마트와 지역 애완동물 리조트도 구호물품 지원에 나섰다.
마하노 씨는 가장 힘든 부분은 불안감과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의 집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는 불과 28일 전에 산 집이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피난민과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여전히 야외에 머무는 이들도 있다. 바닥에 에어 매트리스가 깔린 트레일러 근처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캠핑 의자를 동그랗게 모아놓고 며칠째 야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신원이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자신들이 이번 산불을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핸드폰을 스크롤하여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8일 오후 4시 45분 폴더 인근에서 촬영된 첫 번째 사진에는 마치 대형 캠프파이어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한 줄기의 높은 연기 기둥만 보였다. 그러나 사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 연기 기둥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몬스터처럼 돌변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