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평소 나를 아버지처럼 챙기는 아들 같은 사람이 찾아왔다. 나의 환갑잔치를 차려주었고 나의 노후를 걱정하는 친구의 아들이다. 그는 요즘 두어해 동안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지난 달 음식점에서 만나 식사를 했을 때도 자신의 답답한 일을 털어놓아 마음이 아팠었는데 그때, ‘말하고 싶으나 어디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 찾아오라’고 했었다. 아마 그 말을 기화로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가 어드바이스를 원하면 답을 하는데 한 가지 규칙이 있다. 젊어서 고민하다가 만든 규칙으로 늙은 지금까지 사용하는 방법이다. 나에게 묻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다만 물어온다면 답을 경우의 수로 분류해주는 방식이다. 선택까지 해주지 않는다. 잘 듣는 일은 답답해서 물어오는 사람에게 답보다 더 좋은 답변이다.
진심으로 나의 일처럼 생각해서 듣지만 거기 몰입하다보면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지지 못해 전체 상황을 알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일은 그 일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히는 일이기도 하고 흥분을 누구러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답답한 마음을 같이 나누고 싶은 사람을 찾아 누군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은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어머니가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보다 더 잘 알아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갑자기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 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역사와 기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친구 아들이 하소연하는 말은 반은 아는 일이었지만 몰랐던 일도 있었다. 그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른 일이 아니고 근본적인 일로 나로서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했다.
갑자기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릿속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이 적절할지 몰랐고 두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한 사람에게 말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라면 이렇게 할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는 내가 아니었고 나의 결정으로 내가 책임을 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느끼는 무력감을 내가 노인이라는 것에 대입하고 답을 말할 수 없고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젊어서는 답이 하나였던 일이 늙으니 여러 개의 답으로 늘었다. 젊을 때는 많으면 두 세 개 중에서 답을 선택하면 됐지만 지금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의 수까지 많이 떠오른다.
나는 바보가 된 것이다. 노인은 바보가 되는 것이 맞다 고 생각했다.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다. 그제야 나는 노인이 왜 바보가 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늙었으나 바보가 되기를 거부하는 노인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옳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항상 요구한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 노인을 보고 지혜보다는 아집을 보고 가급적 의견을 나누려하지 않는다. 내가 바보가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을 직감하는 나이가 노인이 아닐까 한다.
2026.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