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6일 수요일Contact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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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글쓴이 | 정목일   덕유산에서 두 해 겨울을 보낸 적이 있었다. 덕유산의 눈은 한 번 내리기만 하면, 숲처럼 내렸다. 산봉우리와 산봉우리가 어깨를 짜고 길게 뻗은 산맥 위에 호호탕탕히 쏟아졌다. 원시림처럼 무성히 내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손을 모우고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항거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독야청청 하는 나무가 있을 리 없었다. 산들도 고즈넉이 눈을 감았다. 함박눈은 실로 무서운 정복자였다. 산이고 들이고 마을이고 순식간에, 모든...

설맞이

수없던 분열의 시간이 웅크리고 있는 업보가 되어 투박하게 껍질을 덮고 살아온 날을 드러내는데 푸른 바람 사이로 다가오던 햇살도 발자국을 길게 끌며 걷던 골목길 외등도 들끓던 심장을 가라 앉히고 둥글게 나이테가 되어 내려 앉았다 모처럼 식탁에 마주한 아이의 얼굴 보면서 새 날을...

누가 시(詩) 한편도 외어 읊지 못하는 것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저 유리창 밖 가로등/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사라진다 해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 전문) 화장실 대형 거울 앞에서 나는 내 사랑하는...

삼겹살과 양뱃살

지난해 한국에 처음으로 다녀온 딸에게 한국에 가서 음식으로 느낀 점이 뭐냐고 하니까 치즈를 정말 많이 먹는다는 거였다. 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왜 그곳에까지 치즈를 넣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음식도 많았다고 한다. 피자에도 치즈 듬뿍 얻어서 쭉쭉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고 치즈까스는 물론이고 치즈스파게티 , 치즈등갈비,  고구마치즈돈까스,  치즈떡볶이, 치즈닭갈비,  치즈불고기,  치즈볶음밥 등 그 종류가 끝이 없더란다. 치즈가 안 들어간 음식을...

세계 너머를 상상하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눈부신 설원이 강렬한 이미지로 마음에 남은 영화도 있고, 겨울의 추위를 배경 삼아 펼쳐지는 사랑이 더 애절해서 잊을 수 없는 영화도 있다. 모두 겨울의 하얀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져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슬며시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따듯한 추억이 되어 추위를 녹이고 지나간 날의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는 다른 영화를 제치고 겨울이면 가장 먼저 이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바로...

인연의 여운 그리고 향기

첫 번째 에피소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돈 버는 일?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가색의 마음을…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속의 이 글귀가 마흔이 넘은 지금, 공감이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 한 해에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