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6일 WednesdayContact Us

“자전거로 그린 밴쿠버 지도”…6,500km를 달린 한 예술가의 기록

2026-08-26 09:56:22

자전거 출근길을 매번 다르게 바꾸며 스트라바(Strava) 지도에 밴쿠버의 거리를 하나씩 채워 나간 알린 프렌치 씨. 그는 자전거로 도시 곳곳을 누비면서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밴쿠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3년에 걸쳐 밴쿠버 모든 도로 누벼

페달을 밟을 때마다 지도 위에 채워진 도시의 또 다른 얼굴

 

아티스트 알린 프렌치가 자전거 핸들을 잡고 밴쿠버의 모든 도로를 누비는 데 걸린 시간은 3년, 달린 거리는 무려 6,500km​에 달한다.

목표는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아직 달리지 않은 길을 하나씩 찾아 자전거로 직접 지나가며 지도 위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 하지만 그가 기존 도로를 하나씩 목록에서 지워가는 동안에도 밴쿠버 곳곳에서는 건설이 이어졌고, 새로운 도로가 생겨났다. ‘도시의 모든 길을 달린다’는 목표에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년간 이어진 6,500km의 여정은 단순한 자전거 기록을 넘어섰다. 자동차로 스쳐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골목과 동네, 도시의 경계와 변화가 두 바퀴 위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프렌치가 주행 기록을 위해 사용한 GPS 앱 ‘스트라바’ 화면 속 알록달록한 선들은 3년에 걸친 도전 과정에서 점차 빽빽 해졌다. 다운타운 중심부는 마치 번진 붉은 물감처럼 물들었고, 선들은 다리를 건너 주택가 골목골목을 섬세한 혈관처럼 메워 나갔다.

가문의 역사적 가엘어·노르만어 표기법을 따라 성의 알파벳 소문자 두 개를 그대로 사용하는 그는 본투비 탐험가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밴쿠버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 동안, 나이트 st.의 굉음을 내며 달리는 트럭들,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이스트 12번가의 아슬아슬한 자전거 도로, 그리고 수시로 막혀 회차 해야 했던 ‘막다른 골목’이라는 장애물을 모두 견뎌냈다.

그는 밴쿠버의 모든 자전거 도로를 밟으며 수많은 타이어와 부러진 핸들바를 교체했고 시트까지 도난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치며 변모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밴쿠버를 완주한 그는 이제 버나비와 뉴웨스트민스터를 거쳐 리치먼드, 노스·웨스트 밴쿠버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22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레지던시 체류 당시에는 도시 중심부 대부분을 완주했고, 뉴욕 맨해튼 작업을 시작한 데 이어 올여름에는 BC주 스튜어트 전역을 자전거로 메웠다. 그는 “평생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 지도를 자전거로 메워 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프렌치에게 이번 자전거 길 탐방 프로젝트 역시 ‘도로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시작됐다. 출퇴근길을 스트라바 앱으로 기록하다 화면에 그려지는 선의 패턴에 매료된 것이 계기였다.

타투이스트이자 시각 예술가인 그는 “어릴 적부터 지도에 미쳐 있었다”고 말했다. 출퇴근 경로를 계속 바꾸며 지도의 빈칸을 길 하나씩 채워 나갔다. 자전거로 지도를 메워가는 과정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도로 위에서는 길가의 미세한 풍경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앱 화면을 통해서는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뷰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밴쿠버의 도로 중 상당수는 단조롭고 지루하다”면서도 “하지만 어떤 길들은 평범한 일상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화려한 정원, 똑같은 가로수가 가지런히 심어진 대로, 심지어 돼지를 산책시키는 사람까지 목격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자전거를 타면 나 자신과 주변 환경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다. 모든 시각, 청각, 냄새를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어 주변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핵심이다. 2000년대 퀵서비스 라이더로 일했던 경험은 도로 위 안전을 지키는 밑거름이 됐다. 헬멧 착용은 필수이며 교차로에서는 세 번씩 확인을 거친다.

전략적인 접근도 잊지 않는다. 그는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에 주로 조성되어 있음에도 안전을 위해 지정 자전거 전용 도로를 선호한다. 그 중에서도 옛 철길을 개조해 폭넓은 보행·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든 9km 길이의 ‘아뷰터스 그린웨이’를 가장 빼어난 코스로 꼽는다.

그가 더욱 신중해진 계기는 2020년 나나이모 스트리트에서 신호위반 차량에 받히는 큰 사고를 당한 이후다. 척추뼈 두 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그는 파손된 자전거와 회복 과정을 예술 작품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단순히 길을 찾는 용도가 아닌,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도구로 활용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