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일 WednesdayContact Us

흙탕물 너머 / 허정희

2026-09-02 14:43:21

아들이 살고 있는 오타와 강가, 잔잔하던 물결 위로 느닷없이 거센 물살이 일었다. 커다란 물고기들이 몸을 부딪치며 흙탕물을 일으키자, 강은 한순간에 요동쳤다. 나는 격랑 속에서 숨 가쁘게 흔들리는 생의 단면을 마주했다. 물에서 일어난 흔들림에 마음을 붙잡힌 채, 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멈춰 서 있었다. 자연은 가끔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을 다시 불러낸다. 흙탕물을 헤치며 꿈틀거리던 물고기의 몸짓이 오랜 시간 묻어둔 나를 끌어올렸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 썼던 날들, 지키고자 버텼던 기억들이 진흙처럼 떠올랐다. 물살은 잊힌 기억의 바닥을 휘저으며 그리움과 후회를 감아올렸다. 오래전 아이가 집을 떠나던 날의 뒷모습이 흐릿한 강물 위에서 일렁였다.
나처럼 무언가에 이끌려 멈춰 선 사람들이 하나둘 강가에 모여들었다. 말없이 같은 물살을 응시하던 그들 속에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연대감을 느꼈다. 그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안에 뭐가 있나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캣피시… 메기예요.”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는 그의 어눌한 말투와 모호한 확신은 마치 내 마음속 흙탕물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설명하지 못한 감정, 말 대신 참아야 했던 시간이 흙탕물처럼 마음에 번져갔다.
그날 이후, 강가에서 꿈틀거리던 메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캣피시’는 정말로 메기였다. 처음에는 익숙한 음식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날 본 메기는 몸집이 크고 야생 그대로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진흙 속을 유영하며 자신을 숨기던 생명체. 말없이 버티고 견디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나는 늘 정확한 말과 명확한 표현에 의지해 살아왔다. 하지만 말없이 전해지는 마음이 더 깊을 수 있다는 걸, 빛조차 닿지 않는 물에서도 생명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메기는 스스로 흙탕물을 일으켜 자신을 감춘다. 얕은 강가에서 요동치던 몸짓이 어느새 잔잔한 수면 아래로 가라앉더니, 강 건너로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맑고 투명한 것만이 반드시 정직한 것은 아닐 수 있다. 탁하고 흐린 물에도 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기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흙탕물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강바닥 깊은 곳에 가라앉은 것들을 거침없이 들춰내어 직면하게 만드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혼란 속에서도 삶을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이리라. 때로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생명을 밀어내고, 상처 입은 생명을 먹이로 삼기도 한다. 인간의 눈에는 잔혹해 보일지 몰라도, 그 또한 생존의 방식이다. 나는 메기를 보며 삶이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한지를 새삼 느꼈다. 선한 의도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침묵이 오해로 돌아오던 날들. 복잡한 흐름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오타와에 사는 아들 집에 머무르고 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한 아이가 다시 나를 부른 건, 몸이 아파서였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아들의 곁을 지킨 지도 벌써 3주가 흘렀다. 밤마다 통증을 살피고, 얼음찜질과 약을 챙기는 걱정스러운 시간 속에서, 나는 어느새 다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모성이 되살아나 멈출 줄을 몰랐다. 하지만 사랑에도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느 아침, 청소 용역 직원이 집 안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나는 방전된 노트북을 충전하려 콘센트를 찾았다. 그 순간 아들의 표정에 스친 짜증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지금 연결하면 청소에 방해돼요.” 짧은 말에 담긴 거리감이 낯설고도 날카로웠다. 밤새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아이의 얼굴이 겹쳤다. 혹시 내가 준 사랑이 아들에게는 부담이었을까. 더 이상 나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내 안에 여전히 아이로 남아 있던 그는 이제 제 영역을 완벽히 구축한 어른이었고, 나의 과한 애정은 그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흙탕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강가에서 보았던 메기가 다시 떠올랐다. 진흙을 일으키며 사라지던 생명의 몸짓처럼, 내 안의 감정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진흙처럼 얽히며 떠올랐다. 서운함과 연민, 이해와 상처가 뒤섞여 흙탕물처럼 흐려졌다. 감추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감정은 거대한 메기 한 마리가 되어 내 안을 휘저었다.
시간이 지나자, 흙탕물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격렬하던 물살이 잦아들고 강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탁함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던 진심이 남아 있었다. 삶은 맑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가 보다. 때로는 흐림 속에서야 진실한 마음이 떠오른다. 어쩌면 흐림이 지나간 후에야 삶의 본모습이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흙탕물 너머, 고요가 스며든다. 격렬히 요동치던 강물은 감추려 했던 내 마음을 더 또렷하게 비춰주었다. 밀어냈던 마음의 껍질들 위로 고요가 내려앉자, 나는 물 아래 가라앉은 진심을 바라볼 수 있었다. 탁함이 걷히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 격랑은 나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흐림 속에서 나의 진심은 더 선명해졌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였고,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었다.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내려앉은 고요. 이제 더는 ‘엄마’의 무게에만 갇혀 살지 않아도 좋으리라. 강 너머로, 나의 삶도 메기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