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확량은 수개월 전 모두 소진
올해 사과는 앞으로 2주가량 지나야 본격 출하
BC주의 대표적인 농산물인 사과가 정작 현지 식료품점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캐나다산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BC산 사과 공급 자체가 크게 줄어든 데다 올해 수확물도 아직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식료품점 과일 코너에서 캐나다산 사과를 찾다 보면 워싱턴주산 사과가 진열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사과 생산지로 유명한 BC에서 현지산 사과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시기적인 문제가 있다. BC주의 올해 사과 수확은 이제 막 시작된 단계다. 지난해 수확한 사과는 수개월 전에 모두 판매됐고, 올해 수확한 사과가 식료품점 진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는 앞으로 2주가량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BC 사과산업 자체가 지난 20년 동안 계속 축소돼 왔다는 점이다.
워싱턴주의 대규모 생산에 밀린 데다, BC주에서 생산된 사과를 포장·유통해 오던 협동조합이 사라졌고, 수년간 이어진 폭염과 한파, 산불, 가뭄 등 극심한 기상 악재까지 겹쳤다. 일부 농가에서는 아예 사과나무를 뽑아내고 다른 작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캐나다-미국 무역 갈등으로 캐나다산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현지 농산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농가들은 구매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공급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1976년부터 켈로나 인근에서 농사를 지어온 샘 디마리아는 현재 오카나간 지역의 연간 사과 생산량이 약 250만 상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년 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든 규모다. 반면 워싱턴주는 연간 약 1억7,000만 상자를 생산한다.
디마리아는 “워싱턴주는 생산 규모가 크고 우리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사과 가격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소매업체들도 국경을 넘어 들여올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워싱턴산 사과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대형 유통업체 로블로(Loblaw)도 BC주 매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연중 공급받는 사과 가운데 약 60%가 BC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는 현지 공급량이 부족할 때 수입한다.
또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코스믹 크리스프(Cosmic Crisp), 엔비(Envy), 재즈(Jazz) 등의 품종은 BC 공급업체로부터는 아예 공급받을 수 없다고 로블로 측은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은 농가들이 사과 재배를 포기하고 체리나 와인용 포도 등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오카나간 지역의 스위트 체리 재배 면적은 2011년부터 2021년 사이 약 두 배로 증가했다.
디마리아는 “돈은 돈이 되는 곳으로 흘러간다”고 말했다.
BC주에 남아 있는 사과 농가들도 생존을 위해 더 큰 규모의 농장이 필요해지고 있다.
BC 과일재배농가협회(B.C. Fruit Growers’ Association)의 딥 브라(Deep Brar) 회장은 현재 사과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최소 20헥타르 정도의 농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헥타르 정도의 농지를 가진 농가는 농사 외에 별도의 직업을 가져야 생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또 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2024년 7월, 수확철을 불과 몇 주 앞두고 BC 트리 프루츠 협동조합(B.C. Tree Fruits Cooperative)이 결국 문을 닫았다.
88년 역사의 이 협동조합은 오카나간 지역 농가 가운데 약 절반이 생산한 과일을 포장하고 저장·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브라는 “협동조합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며 “농부들은 협동조합이 과일을 받아 품질을 분류하고 판매 가능한 물량을 출하한 뒤 11월에 대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사라진 이후 농가들은 과일을 반드시 받아줄 의무가 없는 10여 곳의 민간 포장업체와 거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브라는 “예전만큼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통 과정에서도 불편이 커졌다. 농부이기도 한 브라가 로블로에 사과를 판매할 경우 가까운 매장으로 직접 배송할 수 없다. 사과를 먼저 로블로의 리치먼드 물류센터로 보내야 하며, 그중 일부는 다시 BC주 내륙지역으로 되돌아온다.
회사 측은 재고 관리와 품질 관리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브라는 이를 이해하면서도 “위기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로블로에 따르면 기존 협동조합의 주요 시설은 오랜 공급업체인 알고마 오차드(Algoma Orchards)가 인수했으며, 올해 이 업체로부터 BC산 사과를 공급받고 있다.
브라는 산불로 인해 서머랜드에서 12일간 대피하는 등 최근 6년 동안 각종 악재를 잇달아 겪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시작으로 기록적인 폭염, 서리 피해,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에 이어 최근에는 가뭄과 산불 연기까지 농가를 괴롭히고 있다.
그는 “매장에서는 우리 사과를 파운드당 4.99달러에 판매하는데, 나는 30센트를 받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한다면 약 2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BC 농가들이 워싱턴주 농가와 가격 경쟁을 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토지 가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BC주의 농지는 워싱턴주보다 몇 배나 비싸기 때문이다.
현지산 사과를 구입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두 농부가 공통적으로 권한 방법은 간단하다. 사과에 붙어 있는 원산지 스티커를 확인하는 것이다.
모든 사과에는 워싱턴주산인지 BC산인지 원산지를 표시한 라벨이 붙어 있다. 브랜드 로고가 거의 똑같아 보이는 경우에도 스티커를 확인하면 원산지를 구분할 수 있다.
브라는 일부 매장에서 워싱턴주산 사과가 현지산인 것처럼 진열된 사례를 직접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매장에서 “이 사과는 워싱턴주산이다. 스티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직원에게 지적한 적도 있다며, 소비자들이 이런 사례를 발견하면 매장 농산물 담당자에게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디마리아는 현지산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이 단순히 사과 한 봉지를 구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발 지역 농산물을 사달라”며 “이 나라가 얼마나 자립할 수 있느냐에 국가의 존립 자체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의 농장은 산불 연기와 물 사용 제한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올해 수확 전망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농부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항상 내년이라는 기회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