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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역사 일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2021-05-13 12:20:47

매리 폴락의 부친은 1950년에 발생한 한국 전쟁 참전 캐나다 용사다. 그의 딸 매리 폴락은 부친의 아직도 풀리지 않는 한국 전쟁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려주었다. 매리 폴락과 그의 부친 어네스트 피터 잉크만. 사진=밴쿠버썬

매리 폴락의 부친은 1950년에 발생한 한국 전쟁 참전 캐나다 용사다. 그의 딸 매리 폴락은 부친의 아직도 풀리지 않는 한국 전쟁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녀의 부친 이름은 어네스트 피터 잉크만이다. 잉크만의 친구들은 그를 항상 피트라고 불렀다. 잉크만은 1929년 아가시즈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21세였을 당시에 한국 전쟁이 발발됐다. 잉크만과 그의 전우들은 중공군에 맞서 밤낮으로 쫓고 쫓기는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불길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한국 전쟁 참전 캐나다 용사 

어네스트 피터 잉크의 회고 

잉크만과 그의 전우들이 북한 땅에서 이 같은 악전고투를 하고 있을 당시의 어느 날 밤, 미군의 실수로 캐나다군 진지에 폭탄이 떨어졌다. 잉크만은 순간 자신의 전우들이 공중으로 치솟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는 한 전우를 끌어안아 진지 뒤쪽으로 옮기고 현장에서 재빨리 빠져나왔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혼란에 빠진 잉크만은 그 날의 사건 발생을 놓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전우들이 실종됐다는 소식 뿐 이었다. 잉크만은 당시 사건이 혹시 미군이 무엇인가를 은폐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2007년도까지 미군은 당시 관련 사건으로 사망한 팻 틸만의 사망 원인을 사실대로 발표하지 않았었다. 현재 치매를 앓고 있는 잉크만은 1996년 아내가 사망하고 나면서부터 한국 전쟁에서의 일들을 계속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고 그의 딸 폴락은 전했다. 폴락은 부친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관계로 한국 전쟁 관련 이야기들이 때로는 혼선을 빚기도 하지만, 미국의 실수로 전우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지난 25년간 부친의 말이 늘 한 결 같았다고 했다.  

잉크만은 한국전이 종료되자, 전쟁 후 트라우마 스트레스를 안고 캐나다로 귀국했으며, 온타리오주 한 정신병동에서 당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바 있다. 1950년대 당시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의학적인 치료는 전기충격요법이나 전두엽 절제 수술 등이 이행됐다. 잉크만은 당시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한 뒤, 고향 아가시즈로 돌아왔으며, 이 후 화이트락에 사는 소아마비 환자인 매리온 이라는 한 여성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이들은 2년 뒤에 결혼했으며, 매리온은 폴락을 출산했다. 매리온은 BC주에서는 최초의 소아마비 여성의 첫 자연 분만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곧 이어 매리온은 폴락의 남동생 칼 을 출산했다. 잉크만은 전쟁 후 고향에 돌아온 후에 리멤버런스 데이 기념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딸의 권유로 5년 전부터 리멤버런스 데이와 한국 전쟁 기념일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폴락은 평생 부친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미군에 의한 캐나다군 진영 폭격 사건과 관련해서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미스터리를 찾기 원하고 있다. 그녀는 부친 잉크만의 생전에 이 일이 풀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