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빈 시인은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의 장점은, 호흡이 길지 않아도 된다는 점인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주에 침술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들렸다가 시집 한 권을 받아 들었다. 유 빈 시인이 쓴 마흔,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시집이었다. 고요아침이라는 출판사의 책이었다. 나도 시집을 출판한 경험이 있고 이민자 작가로 겪는 동병상련 같은 것이 있어서 집에 돌아 와서 시집을 차근 차근 읽어 나갔다.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의 5월의 문예상과 한국예술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저자의 약력을 보고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의 지인인 시인에게 톡으로 유 빈시인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 보니 잘모르겠다고했다. 그래서 저자에게 멜을 보내어 기사취재를 부탁했다. 그리고 답장과 함께 통화로 취재를 하고 추가자료를 간략하게 보내주실 것을 부탁했다.
유 빈은 필명으로 장성녀가 본명이며 영어 명은 Sonya 캐나다 밴쿠버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는 독자들은 밴쿠버 중앙일보를 통해 가끔씩 그녀의 글을 접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유 빈 시인은 어려서부터 책읽기 좋아하고 독후감과 일기를 꾸준히 쓴 성실한 문학소녀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문학평론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 잡지의 고정 필진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전업 작가가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취업을 학과와 관련된 곳으로 했으면 했고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출판사에서 출판과 편집 관련 일을 하다가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게 된다. 영어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시집을 많이 읽게 되고 한국어 어휘력과 문장 표현력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된다. 번역이 주는 언어의 이질감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를 쓰게 된 이유?
그러다가 30대 중반쯤, TO BE TOLD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출간)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실제로 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상처들, 내가 한 결정들에 대한 후회, 그리고 삶에 대한 질문들이 노출되고 치유되면서 처음으로 시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쓴 시들 중에 몇 작품을 한 언론사 5월의 문예 행사에 출품하고 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다른 문인들도 만나고, 시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를 쓰면서 삶의 성찰과 치유로써의 시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의 장점은, 호흡이 길지 않아도 된다는 점인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실 이부분은 시가 짧은 문장안에 많은 내용을 내포하는 작업이라 짧다고 모두 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작가들이 어려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가 삶의 여러 정황 속에서 퍼뜩 들어오는 시상이나 생각 하나에 집중해서 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면 강점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본업을 가지고도 시를 꾸준히 쓸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엄마로, 아내로, 직업인으로 이미 시간적으로 꽉찬 삶을 사는 시인에게는 딱 어울리는 장르였던 거같다.
그렇게 30대 후반부터 40대에 쓴 시들을 모아 이번에 한 권의 시집을 엮게 되었다. 시인은 이제 50 중반을 넘어섰으니 이 시들에게는 너무 늦게 제 집을 찾아준 셈이죠라고 말한다. 시집 서문에서 밝혔듯이, 유 빈시인은 언젠가부터 사십 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 본 40대가 되면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내 길을 가고 있을 자신에 대한 기대, 그리고 자녀 양육과 직업에 매여 펼치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새롭게 펼쳐보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시인은 전한다. 시짐은 구성은? 이 시집의 1부는 가족에 대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3,40대의 제 삶에 가장 중요한 숙제였던 자녀 양육에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시기였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가족은 제 삶에 가장 근본이자 궁극의 관계이기도 하니까.
2부는 꿈과 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느낀 생각들, 그리고 3부는 세상사와 사람을 바라보면서 느낀 다양한 생각들에 관한 이야기다.
시를 쓰는 이유?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시 쓰는 밤’이라는 시에 잘 나와 있다과 말한다.
호호 불어 맑게 닦은 유리창처럼
시를 쓰면 내 마음이 화창해진다
숨어 있던 나를 찾아 사뭇 반갑고
아직도 거둬야 할 내가 있기에
남은 목숨 고스란히 소중해진다
세상사로 피곤하고 지친 날에도, 잠시 짬 나는 시간에 시를 쓰고 다듬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행복감이 몰려온다고 치유로서의 시를 시인은 말한다.
시집을 내면서 바라는 바는, ‘작가의 말’에서 이미 썼다시피, 내 생각과 감정이 누군가와 공유되는 것이다. 누구나 삶에서 겪는 희노애락을 공감하면서 마음에 울림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물론 계속 시를 쓰고 시집을 출간하고 싶다. 그리고 좀더 바란다면 밴쿠버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더불어 시쓰기’ 운동을 해나가고 싶다라고 당찬 계획을 밝혔다. 시쓰기라는 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좀더 알리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누구든 한글을 깨친 사람은 다 시를 쓸 수 있다. 한 문장 만으로도 얼마든지 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시쓰기의 기본입니다. 일기를 쓰듯이, 일종의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시쓰기를 지향하고 싶다. 삶을 바라보되, 살짝 시인의 감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을 한다면, 같은 생을 살아도 훨씬 보람과 의미가 있는 풍요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시인은 성장통으로써의 시, 나이테처럼 삶의 순간 순간을 그려 나가는 시를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사실 시집의 제목만 보고 난 그녀가 40일거라고 추측했었다. 그 생각을 따라 앞으로도 재미나게 시를 쓰며 살고자 한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유 빈 시인의 육아일기라는 시에
— 중략 —
엄짐발가락 끝 힘까지 끌어 올리며
뽀얀 젖물 꿀떡꿀떡 삼켜 넘길 때
꽃 이파리 같은 네 이마 위엔
송글송글 수고의 이슬이 맺혔지
앞으로 네가 살아갈 동안
얼마나 많은 날들을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야 할까
어머니는 미리 헤아려 보며
내 이마 위의 땀방울을 쓸어 주었다.
라는 시에서 강한 모성애를 통해 자녀의 미래와 미래세대를 바라보고 있다.
마흔,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시에서
–중략–
다시는 쳐다보지 않으리라 맹세한
푸른 하늘을 등 뒤로 따돌린 채
스무 평 채 안 되는 또 하나의 전쟁터로
허물어지는 마음을 단단히 장전하고 들어섰다
세상이 부러워하도록 청청할 줄 알았던
삼십대는 그렇게
그뭄달처럼 기울어가고
라고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은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 다 다르다.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지고 순수함은 떨어 질수 있다.
그뭄달처럼 기울어버린 삼십 대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읽히는 아니 우리들의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 시집에는 경기대 교수인 이지엽시인의 이 시집에 대한 평도 아주 자세하게 곁들여져 있다. 현재 ‘오늘의 책’서점에서 판매중 이다.
글 전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