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인연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귀하게 얻은 우리들의 자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무모 할 만큼 자녀에게 집착하는 우리 모두에게 쉽게 잊혀지고 있는 대상이 부부이다. 20여년 전, 서로의 믿음과 사랑으로 시작한 가정이라는 이름에는 남편과 아내가 있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들은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가 있다.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어머니는 자녀의 교육과 살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은 예전과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부부가 함께 경제 활동을 하는 가정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교육은 어미의 몫이라고 여기는 시선 또한 현실이다.
어쩜, 이런 분위기가 어머님들의 주도적인 자녀 교육에 한 몫을 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녀의 학습과 진로가 중요시되는 무게는 부부의 평범함 속에 행복한 소통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나는 참 슬프다.
가정 안에서의 민감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나의 경험이 바탕 된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히며 오늘의 생각을 펼쳐보려 한다.
우리 부부는 가정에 아이들을 들일 때, 부모님과의 대화 시간을 먼저 가져 본다. 한 두시간의 상담 시간을 갖다 보면, 가정의 분위기와 자녀의 성향, 부모님의 가치관 등을 알 수 있기에 첫 만남은 우리에게는 꽤 중요한 절차이다.
유난히, 부부의 관계가 좋아 보이는 가정들의 공통점은, 아이는 밝고 안정된 심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어머니께서 모든 교육을 주관하거나 아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어 있는 모습, 또는 일상 생활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이 작은 가정의 자녀는 어느 시점이 되면 문제를 동반하게 된다..
첫 밴쿠버 생활을 시작할 때, 우리 아이들의 입으로 자주 들려오던 이야기들 중 “우리 엄마아빠는 안 그러시는데…”였다.
아이 아빠에게 높임말을 사용하고, 아빠는 나를 살갑게 부르며 사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의 모습은 9년이 된 지금 큰 아이들에게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갖게 한 영향을 주게 된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 아닌 아이들의 표현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만남을 가진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통신으로만 주고받았던 내 느낌과는 달리,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비중이 작았다. 대부분의 일은 어머니에게 결정권이 있었고, 아버지는 따라 가는 모습……, 얼핏 보기에는 참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점은 부부의 생각이 일치하여 만들어지는 결정들이 아닌 것이었다.
어머니의 영향력 있는 경제권과 사회적 지위는 이렇게 아버지를 작게 만들었고, 디저트를 먹는 자리에서도 아이가 먼저가 되는 순서는 나의 관점에서는 그저 아쉬움이었다 전화상이나 문자를 주고받는 상황이 일반적인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항상 아버지가 존중받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실제 만남을 가졌을 떄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며 적잖은 실망이 되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실제로 이런 모습을 보였던 가정 중에는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 것도 이 일을 하며 겪게 된 내 경험이다.
나는 요즈음 미래의 세상이 두렵다. 자녀들에게 가정의 위치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그저 물질적인 풍부함과 도덕, 양심 등의 윤리적인 부분이 살아져 가는 이 세상이 걱정이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조기 유학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연결된 나의 일이 준 경험이니 내 자녀와 가정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부부가 결혼할 당시, 서약의 내용 중에는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할 것을 맹세한다’ 라고 약속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부부들이 “예”라고 대답했지만, 우리 부부들은 어는 덧 자녀의 성공 된 인생에 의미를 가장 많이 두고, 풍요로운 물질을 벗 삼는 인생이 되어가고 있다.
소중함을 분별할 수 있는 생각들의 차이, 경제 활동과 바쁜 일상 속에서 어른들은 맹목적인 자녀 바리보기와 또래 문화와 참여가 일상인 우리 아이들,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가며 우리 어른들과 아이들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힘겨움을 어머니는 가르쳐야 하며 어머니의 사랑과 배려를 아버지는 자주 들려주어 내 자녀에게 부모는 당연하게 모든 것을 주고 희생하는 존재가 아닌,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 많은 가정들과의 만남 중 부부가 존중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자랐던 자녀는 생각은 바랐고, 정서는 예뻤다. 그러하기에 사춘기 시절 미성숙함으로 놓치게 되었던 시간에도 불구하고 멈췄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겉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결속력이 부족한 가정의 모습은 자녀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사람의 소중함 보다는 물질의 소중함을 더 귀히 여기는 모습으로 커 가고 있다. 아이를 보살피는 우리들이 아무리 바꾸려 노력하여도 삶의 가치관이 다른 우리와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녀가 가장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내 남편을 또는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안쓰럽게 여겨야 할 것 같다. 부부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보이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은 어떤 자녀도 어긋난 길을 가지 않게 만든다. 이렇게 건강한 부부의 관계는 행복지수 99.9%의 아이를 있게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한국 사람으로 살아온 우리 기성세대들이 조금은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자녀들 앞에서 서로를 안아 주기도 하고, 입 맞춤으로 아이들 입에서 “이유~”라는 소리가 나오더라도 한 번씩 보여 주기를 권고 해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이 건강한 자녀 만들기는 이것이 정답인 것 같기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여 본다.
남편에게 쓰는 편지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나고, 자식의 힘듦 앞에서 눈가의 모습이 내려가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참으로 가엽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시절 기백이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남의 아이들 돌보며 웃어야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많은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삶이 못난 아내가 벌여 놓은 고통인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목소리 높여 사내임을 주장하지 않고 나의 삶을 존중해 주는 마음에 많이도 감사하고요.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세월을 뒤로 하고, 자식을 위해 한 배에 오른 그 용기는 아마도 훗날…당신은 훌륭한 우리 가정의 지킴이로 아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아비의 모습일 겁니다.
며칠 전, 아들의 입에서 들려 준, “엄마~, 난 성격과 외모는 엄마를 닮은 듯 하지만 나의 생각은 아버지를 닮았어요. ‘세상을 대하는 처세를 아버지께서 보여주셔서 그것을 배우고 행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당신의 아들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그래도…잘 살아온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나 부모를 그리워하고 귀하게 여겼던 당신의 모습 또한 존경합니다. 내 아비를 잃고 보니 1-2년이 지나도 부모 생각에 눈물짓는 당신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보듬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의 아들과 함께 생활화는 자녀들에게 전달되어 적어도 이 아이들은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되기를 응원하여 보아요~. 그것이 사이 좋은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여 주세요.
-당신의 명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