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가족은 상호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도 일방적인 짝사랑만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홈스테이를 하는 삼촌, 숙모가 조카의 부모가 되며 있었던 이야기와 감정을 늘어 놓으려 한다.
최근 들어, 어른이 되어버린 아들과 조카에게 느끼는 소외감은 나만의 감정만은 아닌 듯싶다. 아이들과 같은 피를 가진 남편의 외로움은 더 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다.
삼촌과 조카로 출발한 관계가 아빠와 딸이 되었던 2013년 그 날은, 그리 어렵지 않게 시작 되었다. 캐나다의 생활을 좋아했고 이런저런 이유에서 딸이 된 조카 아이는 나와 남편의 책임하에 길러지는 관계가 된 것이다. 사실, 사람을 잘 성장시켜야 하는 책임이기에 겁이 날 만도 했던 시작이었지만, AB형의 강단 있는 행동 방향은 뻔한 선택은 하지 않음을 또 보이게 되었고, 결정이 이렇다보니 조카 아이는 졸지에 엄마 아빠가 둘이나 되는 무거움으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9년이 된 지금 지나 온 시간을 되돌아 보면 웃는 일도 많았지만, 울었던 일도 많았던 것 같다. 한국의 가정에서는 귀여움을 독차지 할 막내딸인 조카 아이는 이 곳에서 큰 누나가 되어 버리는 원치 않았을 신분 상승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도 친정 집 에서는 장녀지만…시댁에서는 막내 며느리가 된다. 윗 사람을 잘 따라간다면…막내가 편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위치가 바뀌어버린 아이는 친할아버지의 교육을 그대로 답습하는 내 남편의 장녀가 되었으니…
머리 빗는 것, 걸음 걸이, 말 하는 폼새 등…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아흔 아홉 가지 이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이런 세월을 9년을 겪어서인지 교육 잘 받은 숙녀가 되어가는 모습에 흐뭇할 때도 여러 번이다.
사실, 함께 살면서 늘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삼촌과 숙모의 처신이 같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은 누가 알려 준 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고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인지 나는 서운함을 주면 곤란한 일들이 벌어짐을 알기에 늘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삼촌이 야단 치는 건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는 것이다. 그럼, 숙모는 어떠할까? 대부분 사람들에게 듣을 수 있는 말은 숙모는 조카에게 훈계 등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에 공감을 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숙모와 조카일때는 좋은 말과 행동으로 가끔 용돈도 주고 선물도 하는 착한 어른일수 밖에 없었지만 키우는 건 다른 일이었기에 항상 천사가 되는 건 정말 어려웠다. 거기에 다른 또래 아이들이 잘 하는 모습이 자꾸 느껴질때면, 섭섭함과 원망이 두 배, 세 배가 되어버리니 나도 사람인지라 못난 감정을 보이는 일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들의 세월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만큼을 달려왔고, 편한 만큼 서먹한 건 아이가 많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 한 명만을 키웠다면 마음도 하나만 주면 되고 입히고 먹이며 가르치는 것도 한 번만 하면 되는터라 쉬웠을텐데… 내 아들에게 나누어야 할 관심에도 마음이 쓰이는 나였고, 조카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일수도 숙모일수도 없는 어정쩡함에 불편했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시간들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시부모님께 ‘잘했다 수고했다’라는 말한마디면 족하다 생각하며 내 아들이 할 것을 똑같이 나누어 키울 것을 결심했던 처음이었다. 예를들면, 이런 것 들이다. 골프 레슨을 받는 것도 치아 교정이나 피부 치료 받는 것 등등을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가끔씩 던지는 ‘착하다, 선하다’ 라는 말들이 부끄러워 지는 건 내 진심이다. 나는 지금, 보여지는 시선이 부담되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백하려 한다.
시키지 않았지만, 함께 지내며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조카 아이에게 그 동안 내가 했던 좋은 일들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은 것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런 것인지 몰랐다. 아마도 딸 같은 살가움을 바란적도 매번이고, 아들에게 좋은 친 누나가 되어 주기를 바란 것도 항상 이었나보다.
작년 여름, 조카 아이의 부모님이 방문하는 그 날부터 나를 엄마가 아닌, 숙모라고 부르는 사소함에 섭섭해졌고 가끔씩 집 안일도 도와주던 손길이 없어지며 내가 버려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알게 된 감정들이다. 만약에 내가 낳은 아이였다면…어떤 섭섭함도 안쓰러움이나 이해로 마음이 움직였을 것 이기 때문이다.
내 남편이 속상해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남편과 조카의 관계는 진짜 핏줄이니 아빠 대접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며칠 전 9년을 함께 살아 온 우리 집 이쁜이가 이모부의 휴대전화 액정 필름을 갈아 주는 일이 있었다. 유리로 된 필름 가장자리가 조금씩 깨어져 손에 작은 상처를 나게 했던 일을 기억했는지…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에 남편은 뿌듯하면서도 내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던 일…’우리 00가 조카가 아니라 딸이었으면 내 휴대전화 보며 지나치진 않았겠지….?) 이 말을 들으며 딸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살피는 식견이 다 자라지 않아서일거라 위로하며 지나친 일도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부부의 잘못인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성향과 행동이 제 각각임을 입으로 늘 말하면서도 그것이 내 일이 될 때는 우리 편한쪽으로 판단하며 아프다고 이야기 하곤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외국에서 지냈으니, 이 곳에서 만나는 친부모와의 시간들이 많이 달콤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우리 가정의 큰 누나가 아닌 애교쟁이 막내 딸이 되는게 당연한것이다. 어른의 마음까지 살피는 아량이 부족한 것도 막내로서의 보통의 성향인 것을 무엇이든 잘 하길 바라는 우리 두 부부의 욕심이었던 것임을 깨닫기까진 참으로 오래 걸리었다.
부모가 되기에 이렇게 하자 투성이인 우리 마음을 두고 반성할 기회도 어쩜 아이들을 통하여 얻은 값진 기회인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때인 것 같다.
얼마 전, 조카 아이에게 선언을 하였다.
숙모여서 조심했었던 마음도 사실 많았지만, 숙모나 가족을 떠나 내가 어른이기에 매 순간 솔직할 것이라고….
그 순간부터는 아닌 것은 ‘아닌 것 같아’ 섭섭한 일은 ‘조금 섭섭하네’ 등으로 표현하고 반대로 잘 하고 기쁜 일엔 크게 ‘잘 했어’ 라고 말 하는 엄마숙모가 될 것이라는 선언.
그 이유는 하늘나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지켜 봐 주실 것이고, 엄마 아빠도 딸에게 좋은 길로 인도하고 솔직한 부모의 역할을 바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마음의 보상을 바라는 부모가 아닌, 주는 것으로 기쁨을 얻는 조력자인 숙모와 삼촌,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을 약속하겠다.
축복 받으며 2월에 태어난 너의 생일을 축하하며 행복한 사람이 되길 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