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봄이 시작 되었다. 도로마다 분홍 빛 벚꽃이 꽃을 펴기 시작하였고, 아이들 입에서는 “벚꽃 구경가자”라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걸 보면 겨울은 지나가는 듯 하다. 대학생 언니들은 겨울 동안 입었던 옷을 캐리어에 정리하고 봄 옷과 여름 옷으로 옷장을 채우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 옛날 어리고 순진했던 내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 미소가 나오는 날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새 학년이 시작 되는 시기이지만, 이 곳의 아이들은 학년의 마무리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있으니 마음가짐의 여유는 조금은 다른 듯 하다. 부모님이 함께 머물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은 매번 고민에 휩싸인다.
대학생의 경우에는, 매 학기마다 신청해야 하는 과목 선택부터 중간마다 해야 하는 일과 봉사 활동의 선택까지도 함께 고민을 해야 하는 계단 오르기를 반복하고, 세컨더리 아이들은 대학 입시를 위한 이런저런 준비와 과정을 잘 진행해야 하기에 의견의 도움은 항상 필요하다.
얼마 전, 세컨더리 졸업을 앞 둔 우리 집 남자아이는 2년 정도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번 6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유학 오는 처음부터 목표는 1년 단축 조기 졸업이었고, 한국 대학교의 입학이었기에 2년 생활을 정말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한 2년 정도의 캐나다 유학 경험으로 스피킹과 리스닝의 자유함은 고등학교 1학년, 늦은 유학임에도 아카데믹 부분과 활동들만을 채워가면 되었기에 시간을 버는 이득이 있었고, 그 동안의 성취 결과는 놀라울 만큼 잘 만들어져 왔다. 이렇듯, 외부 사람들이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학생이었지만…실생활은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있거나 여유가 생기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심리적 불안감은 함께 왔으니 안타까운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이 아이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초등학교 2,3학년의 자유로웠던 캐나다 학교 생활, 그 후 한국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밤낮으로 바쁘고 경쟁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다 보니 ‘휴식’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 않은 게 아이가 설명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였다. 아이의 심리가 이번 이야기의 소재거리가 되는 이유는 매번 반복 되지만 해결 되지 않는 심리 상태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귀 동냥의 오지랖으로 해결 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2016년 4월은 아이를 처음 만나게 된 해였다. 덩치가 운동 선수만큼 좋고 우직했던 아이는 마치 ‘나 화가나요. 건들지 마세요’ 라고 얼굴에 써 놓은 듯 말수도 없고 행동에는 의욕이 전혀 없던 모습이었다. 이 때만해도 긍정적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기에 이 인연의 세월이 어찌 흐를 지 난감하기만 하였던 것 같다. 이 곳의 생활이 시작되는 첫 주부터 사교육의 플랜을 잔뜩 늘어 놓고 시간에 맞춰 움직였으니 참으로 바쁜 시간들이었다. 4월에 와서 학교를 가지 못 한 시기였기에, 오전부터 저녁까지 해야 하는 스케줄은 아이도 소화하기 힘들었겠지만, 곁에서 라이드와 과목별로 잘 익히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나는 더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누나가 이 곳에서 유학 후, 연세대학교를 입학하는 쾌거를 얻었다는 후문은, 자존심이 강한 나에게는 더 뛰어 넘고 싶은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요 녀석이 버릇처럼 말하는 누나보다 잘 하고 싶다는 것은 어느 새 나의 목표가 되기도 한 것이다. 그 때는 이런 마음이 의욕 있어 보여 좋았고 기특하기까지 하였다. 그 때는 말 이다.
이렇게 하나씩 성취해 가려는 의욕은 짧은 시간 동안 좋은 성적과 졸업을 해야 하는 아이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 되었기에, 나 또한, 불평 없이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하는 건 다 들어 주었고, 예민한 성격을 보호 하기 위해 늘 그의 편이 되어 주었던 내 훈육 방법이 지금은 고개 숙여 지는 부끄러움으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며 정답 또한 없는 보살핌의 모습인 것이다.
현재, 만 2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아이는 모든 과목을 다 이수하여 평균이 96-97점대로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한국의 고등학교를 입학하지 못한 시절을 기억한다면, 참 잘 해낸 성과이다. 물론, 한국 대학을 가기 위해 몇 가지 시험들을 위한 준비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문제는 이 부분이다. 눈 앞에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이 영역에선 평온해 지는 건 참으로 어려운 듯 보인다. 일 주일에 몇 번씩 반복되는 예민함과 초조함, 징징거림은 ‘좋은 엄마가 되어 주어야지, 좋은 교육자나 멘토가 되어 주어야지’가 소망인 나의 의지를 가끔은 포기하고 싶은 자극으로 돌아오는 걸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6일, 매일 학원 운전 시간만 2시간 40분을 달리는 곤함과 밤 11시가 넘어야 귀가를 시키게되니…야간 운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력도 힘든 마음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대가없이 그저 감사해 하는 마음을 느끼고 투정 부리지 않는 일상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그 마음을 느끼지 못 하기에 속이 상한 것이다.
지난 주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 오던 나에게 주신 마음은 아이와 평온의 대화를 해 보라는 것이었기에 분주하게 과일을 깎고, 차를 내려 대화를 청한 하루가 있었다. “많이 힘들지”로 시작 된 대화는 “이모가 너를 위해 항상 기도 한다” 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에게 기도 하거나 하는 그런 건 저에게 필요 없어요. 다만, 저는 제가 노력한 부분에 대한 숫자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 할래요.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이 다가와도 공부해야 하니 저리 가라고 할 뿐 이에요.” 라는 대답을 들으며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인지, 이 아이에게 영향력이 이 정도였는지에 무력함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공부나 나눔에 대하여 여유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이 심리 상태를 어찌하면 좋을지 슬픈 마음이었다. 이제 아이와의 시간은 석 달 남짓 남았는데, 변화를 바라기엔 너무도 짧은 듯 하였고, 한 솥 밥을 먹고 살아 온 식구의 정도 바라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계획 된 2박 3일의 봄 방학 가족 여행 또한 눈치를 보며 꺼내었지만,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끊어버리는 냉소적 태도에 그래도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 같은 플랜으로 한국 입시를 진행 중인 두 아이를 거론하며 그 아이들도 이틀정도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전하였지만, 아이는 “그 분들은 그 분들 상황이 있고, 자기는 따로 상황이 있으니 엮지 말아 주세요” 라는 말에 한번 더 실망이 되는 건…과연,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위치의 사회인이 되어도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이 될지가 염려되어 무거운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분명히 처음보다 바뀐 모습은 많다. 자기 관리를 위해 부지런해졌고, 성적 등을 챙기기 위한 꼼꼼함도 지니게 되었으니 관리형 유학은 성공한 것이다. 다만, 우리 가정만의 자부심이었던 배려와 여유, 사랑하는 자세에서는 실패한 것 같다. 이제 나는 남은 시간 무엇을 해 줘야 하는지의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었다. 남은 시간이라도 아이의 마음에 행복의 바른 정석을 전해야 하는지, 아니면…아이가 원하는 성적만을 취하게끔 컨설팅을 해야하는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현대 아이들에게 결핍 된 듯한 행복의 바른 잣대의 계몽이 가정에서 학교로 그리고 사회로 흐를 수 있게 하는 게 이 시대 어른의 몫은 아닌지 씁쓸하지만 절실한 외침을 하여 본다.
여전히 나와 함께 하거나 했던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나는 놓거나 외면하는 일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9년 전 그 때로 돌아가 아이들과 공원에서 운동을 하며 뒹굴던 시절을 한 번만 더 살아 보았음 하는 그리움으로 오늘도 웃음을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이모가 항상 널 위해 기도할게.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앞으로는 더 잘 될거야. 조금만 마음을 열고 여유를 갖으며 네 안이 행복해야 진정한 기쁨임을 알 수 있기를 응원할게.
사랑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