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이북 도민회가 걸어온 길 / 이원배

2025-12-18 10:51:55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 자란 시골 고향마을을 그리워 한다. 고향의 산과 들, 인정, 함께 놀던 친구들, 그들과 밖에서 함께 놀다가 저녁놀 뉘엿뉘였 질때 집에 가면 항상 웃으며 반겨 주시던 어머니의 푸근한 품—
어느새 성인이 되면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가보지만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고달픈 비정의 도심에서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 참다가 한밤중 창문 두드리는 휘영청 보름달보면 고향생각에 펑펑 울곤 하던 옛추억이 누구나 한번은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은 어디에서 살던지 추석명절이나 설날에 남편, 또는 아내, 아이들과 함께 반갑게 고향 찾아가서 조상들에게 성묘도 하고, 부모님, 조부모님, 친척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 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비행기 타고 고국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실향민들이다.
“어머니 잠깐 다녀 오겠습니다.” 하고 고향집 싸리문 나서던 때 어제 같은데 뜻하지 않았던 전란은 가족 간의 천륜을 가르고, 남쪽에 남은 사람들은 이제 75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때로는 사망하거나 백발 성성하게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고향마을을 잊지 않기 위해 서로 만나 회포를 풀고 고향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밴쿠버 이북 도민회’ 회원들이다.
밴쿠버 이북도민회는 1997년 10월 17일 설립되었으며, 현재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미수복 경기도지역 및 강원도지역 등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7개도 1,620여명의 이북 출신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모인 단체이다. 동 단체는 연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되며, 야유회, 정기총회 등 다양한 모임을 통해 회원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한국의 문화를 현지에 알리는 활동을 한다. 또한, 평화 통일을 추구하고 이북 탈북민을 돕는 등 이북동포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역대 밴쿠버 이북도민회 회장단 명단을 보면 오랫동안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해 온 인물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초대 최태주 회장을 비롯, 현 고승범 회장에 이르기까지 강산이 거의 세 번 변할 만큼인 28년간 18명의 회장이 이북도민회 발전을 위해서 헌신했다. 이 중 전성옥, 방석종, 김신규, 한윤직, 동국창, 노은길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였으며 나머지 전직회장들도 이제는 평회원으로써 열심히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70년 밴쿠버 한인 이민역사상 드물게 이북도민회는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회장 선출시에도 별다른 잡음 없이 원만한 분위기에서 신구회장이 인계인수를 잘 해 나가고 있다. 고승범 회장은 “모임 자체가 같은 동향인들이 서로 돕고, 이해하고,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회장직을 무슨 감투처럼 여기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개념이 연연히 내려오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비결을 이야기한다.
6.25 전쟁때 남으로 피란내려온 기존세대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차츰 사라져 가고 있지만, 그 자녀 및 손자세대들이 뒤를 이어 나가니 이북도민회는 갈수록 무성하게 자라나는 상록수가 되어 간다.
아무쪼록 이러한 화합과 단결의 신조를 바탕으로 밴쿠버 이북도민회가 한인사회에 모범이 되고, 타 단체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믿음직하고 단단한 조직으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