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란 (수필가)
5월은 가정의 달, 거리마다 라일락이 향기를 토한다. 어머니날과 어린이날이 있으니 1년 중 가장 사랑이 넘치는 계절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결혼식 주례사에나 있는 구시대적 공염불이다. 이혼율에 관한 한 한국도 대단하다. 특히 황혼 이혼이 급속히 늘고 있다. 결혼한 지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은 4만 건 이상이다. 특히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율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타이타닉 호는 캐나다 동부 뉴펀랜드 해역에서 좌초되었다. 2,224명이 승선해서 1,500명이 숨졌다. 어떤 기록에는 1,600명 이상이 익사했다고 보고 있다. 인류 해난 사고 중에 가장 큰 사고로 손꼽히고 있다.
이시도르 스트라우스씨는 지금의 독일, 바바리아 왕국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에 이주했으며 조지아 주에 정착했다. 처음엔 미국 육사에 진학하려 했으나 남북전쟁이 일어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뉴욕에 와서 사업을 했다. 처음엔 뉴욕 번화가에서 고급 그릇을 판매했으며, 후에 형제가 함께 메이시(Macy’s) 백화점을 인수하여 크게 성공했다. 후에 연방 하원의원까지 오르는 등 상당히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1871년 로잘리 아이다와 결혼해 일곱 자녀를 낳았다. 겨울이면 부인과 함께 기후가 온화한 프랑스 남부에서 보냈다. 타이타닉이 첫 항해를 할 때 1등석으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극을 맞았다.
배에는 구명보트가 20개, 선장은 아이들과 여자들을 우선으로 태웠다. 스트라우스 씨는 1등석 승객이기 때문에 구명보트에 탈 수 있었으나,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자기 대신에 다른 아이를 태웠다. 이 모습을 본 그의 부인 아이다는 구명보트에서 내렸다. 그들의 하녀 엘렌 버드를 딸이라고 주장하면서 제8호 구명보트에 승선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입었던 가죽 코트를 벗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스트라우스 부부는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나이는 달라도 생일도 같은 날이고, 같은 날 삶을 하직했다. 후에 남편의 시체는 찾았으나 부인은 찾지 못했다. 장례식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거행되었으며 2만 명이 운집했다. 브로드웨이 번화가에 스트라우스 공원과 동상이 세워졌다. 그들의 묘비에는 구약성서 아가서 8장7절에 나오는 구절이 적혀 있다. 사랑은 “바닷물로도 끌 수 없고 급이치는 물살도 쓸어 갈 수 없는 것 (공동번역)”. 또한 메이시 백화점의 5천명 직원들이 백화점 1층에 기념 동판을 새겨 놓았다. “삶은 아름답고 죽음은 영예로웠다”고 슬퍼했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 일상적인 세상이 되었다. 백년해로라는 말은 그 뜻의 의미를 잃고 말았다. 부부의 의리와 희생은 옛 전설이 되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사랑, 바로 스트라우스 부부의 사랑 이야기이다. 차디찬 바다에서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죽음을 맞이했던 그 뜨거운 사랑,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