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0일 WednesdayContact Us

땅속에 숨겨진 진짜 ‘언더그라운드’ 거리 예술을 만나다

2026-05-20 08:00:08

81세 조각가 그렉 스나이더가 자신이 제작한 공공 조형물 ‘Project for a Public Works Yard’ 내부에 서 있다. 스나이더는 “도로 한 조각을 그대로 땅속에서 끌어올려 그 아래 숨겨진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개념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펄스크릭 플래츠의 명물 공공 조형물 새 단장

도시 인프라의 숨은 세계 드러내

 

밴쿠버 펄스크릭 플래츠의 한적한 거리 한편에는 도심 아래 숨겨진 도시 인프라를 그대로 드러낸 독특한 공공 예술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도로를 수직으로 잘라 올린 듯한 이 작품은 시민들이 매일 밟고 다니는 거리 아래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화제의 작품은 조각가 그렉 스나이더가 제작한 ‘공공사업기지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a Public Works Yard)’다. 지난 2004년 설치된 이후 최근 대대적인 보수와 복원 작업을 마치며 다시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품 상단에는 소화전과 신호등, 도로 시설물이 설치돼 있지만, 그 아래로는 복잡하게 얽힌 형형색색의 주철 배관과 밸브, 각종 기반 시설이 노출돼 있다. 마치 도시의 혈관과 장기를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이다.

올해 81세가 된 스나이더는 작품 제작 의도에 대해 “도시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공공사업 직원들의 노고를 하나의 작품 안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토목, 전기, 주차 관리, 가스관 등 도시를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이 결국 땅속에서 작동한다”며 “도로 한 조각을 그대로 들어 올려 시민들이 평소 보지 못하는 도시의 내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장 노동자들이 흘린 땀과 기술은 대부분 땅속에 묻힌 채 수십 년, 길게는 백 년 가까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며 “이 작품은 그 숨겨진 노동과 도시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고 덧붙였다.

시에서 책정한 예산은 9만 달러였지만 제작에만 1년 반이 걸려 스나이더가 손에 쥔 순수 수입은 겨우 1만 1천 달러였다. 그는 당시 한 엔지니어가 작품을 보더니 최소 25만 달러는 들었겠다고 놀라워했다며, 한정된 예산으로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낸 것에 다들 감탄했다고 회상했다.

 과거 갯벌 매립지였던 취약한 지반 때문에 단단한 암반층이 나올 때까지 건물 5층 높이에 달하는 50피트짜리 말뚝 4개를 박아 기초를 다져야 하는 난공사이기도 했다. 스나이더는 처음 계약할 땐 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며, 다행히 현장에 말뚝 박는 장비가 남아 있어 기사와 협상한 끝에 무사히 기초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고 귀뜀했다.

작품은 기능에 따라 철저하게 색깔별로 분류되어 있다. 소화전 밑으로 연결된 커다란 8인치 파이프를 가리키며 스나이더는 파란색이 상수도관이라고 설명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가스관은 선명한 노란색, 오수관은 오렌지색으로 표현해 흐름을 한눈에 보게 했다. 사용된 수많은 밸브와 이음새들은 지난 2015년 문을 닫은 유서 깊은 ‘터미널 시티 주철소’에서 공수했다.

그는 ‘TC’ 로고가 선명한 묵직한 주황색 밸브를 가리키며 이 밸브들은 애초에 영원히 버티도록 만들어진 명품이라고 강조했다. 이 거대한 8인치 밸브는 버나비의 한 고물상 구석에서 완전히 녹슨 채 버려져 있던 것을 가져와, 집에서 녹을 벗겨내고 기름 치며 정성껏 닦았더니 지금도 부드럽게 잘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조만간 인근에 종합병원이 들어서면 더 많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주고 아껴온 이들은 다름 아닌 이 도시의 환경·공학 노동자들이었다.

밴쿠버시 공공미술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탈 파라부는 이 작품이 가진 사회적 울림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공공사업기지 직원들은 지금도 수시로 가족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아와 작품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도시를 지탱하는 자신들의 힘들고 중요한 업무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 주는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도시의 진짜 주인공인 현장 노동자들을 향한 존경이자, 따뜻한 찬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