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임대계약 만료로 9월 20일 마지막 영업
연간 100만 명 찾던 메트로 밴쿠버 대표 명소 역사 속으로
26년 넘게 메트로 밴쿠버의 대표적인 여름 명소로 사랑받아온 리치먼드 나이트 마켓이 6주 뒤 이번 시즌 운영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여름철 주말 밤이면 리치먼드 나이트 마켓 일대는 각종 음식 냄새와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 수많은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약 20에이커 규모의 부지에는 꼬치구이와 만두, 버블티, 각종 디저트와 아시아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쇼핑과 다양한 볼거리까지 더해지면서 메트로 밴쿠버의 대표적인 야간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리치먼드 시에 따르면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나이트 마켓을 찾을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성장했다. 현재도 약 250개 업체가 입점해 있으며,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되는 주말이면 수천 명의 방문객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나이트 마켓은 오는 9월 현재 사용 중인 부지의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면서 결국 운영을 종료하게 됐다.
브리지포트 스카이 트레인 역 인근에 위치한 야시장 부지는 원래 진공 국제개발그룹이 추진하던 340만 평방피트 규모의 대형 복합 단지 ‘진공 인터내셔널 플라자’ 개발 부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2024년 시의회 승인을 받은 이 계획에는 호텔과 위락시설 외에도 야시장이 지속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담했던 이 개발 사업은 시작조차 못 하고 부도가 나면서 법원 경매 절차로 넘어가고 말았다. 법원 제출 문서에 따르면 현재 법원 감독하에 부지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야시장 초창기부터 라이 와이 이 씨 가족은 인기 음식 점포를 운영하며 삶을 일궈왔다. 홍콩 이민자인 이 씨는 2000년 한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점포 40개로 소박하게 출발했던 야시장 첫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녀는 ‘포와 딤섬’이라는 가게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장소를 몇 차례 옮긴 끝에 야시장은 2012년 현재 위치에 둥지를 틀었다. 약 250개 음식·쇼핑 점포와 야외 무대, 짚라인까지 갖춘 대형 계절 명소로 성장하며 매일 밤 수천 명의 인파를 끌어 모았다.
이 씨에게 야시장은 단순한 일터를 넘어선 의미였다. 올해 69세의 이 씨는 “매일 밤 남녀노소 온 가족이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거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그 맛에 지금까지 장사를 해왔다”며 소회를 전했다.
이 씨와 다섯 자녀는 수년간 어깨를 맞대고 매콤한 어묵과 돼지고기 경단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해 왔다. 가게는 어느덧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주 수입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 씨 가족을 비롯한 상인들은 당장 앞날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홍콩에서 이주한 뒤 1986년 아시아식 야시장 개념을 메트로 밴쿠버에 처음 들여온 레이먼드 청 대표는 “누군가에게 이 시장은 생계의 전부”라며 “타국에서 건너와 작은 주차장 장사로 시작해 이만한 국제적 행사로 키워낸 것은 그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고 회상했다.
청 대표는 야시장이 문을 닫으면 현장 보안, 매표, 무대 설치 인력 등 자신의 회사에 고용된 1,000여 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야시장이 열리던 덕 아일랜드 및 인근 부지들은 개발사의 채무 불이행으로 여러 건의 강제 경매 절차에 휘말려 있다. 걸려 있는 대출금 규모만 8,500만 달러에 달한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개발사가 돈을 갚지 못하자 법원은 부동산 중개업체를 통해 해당 부지를 공개 매각하도록 허가했다. 매물로 나온 부지 전체 희망가는 1억 2,770만 달러이며, 지난 7월에는 일부 부지가 1,250만 달러에 먼저 팔리기도 했다.
청 대표는 “당연히 임대 계약이 연장될 줄 알았는데 경매 절차가 시작되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다”고 토로했다.
리치먼드 시는 이메일 성명을 통해 야시장 폐쇄에 아쉬움을 표하며 “현재 부지 든 새로운 장소 든 야시장의 명맥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시는 새로운 부지를 찾도록 도울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나, 청 대표는 장소만 확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솟는 물가와 운영비, 인허가 규제, 교통 대책,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부지 확보 등을 감안할 때 지금 같은 경제 상황에서 이만한 행사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야시장은 5월부터 10월 추수감사절까지 연간 70일 남짓만 열리지만, 청 대표는 부지 임대료로 매달 6만 5,000달러씩 1년 내내 지불해 왔다. 그는 “장기 임대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투자를 감수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리치먼드 상공회의소 역시 야시장 폐장이 지역 관광업에 큰 손실이라며 아쉬워했다.
셰이나 퍼롱 상공회의소 회장은 “2026년을 마지막으로 야시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프다”며 “야시장은 메트로 밴쿠버는 물론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자, 지역 소상공인들이 사업을 알리고 리치먼드의 아시아 음식 문화를 알린 훌륭한 무대였다. 야시장이 남긴 유산은 대단하며, 그동안 함께해 온 모든 이들이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고 격려했다.
최근 리치먼드 시장 후보들과 시의원들은 당선 시 야시장을 살리기 위해 행정 규제를 풀고 공유지를 활용하는 등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청 대표는 6주 뒤 완전히 문을 닫기 전 많은 이들이 야시장을 찾아 추억을 남기길 당부했다. 그는 “이 시장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 돌이켜보면 일종의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야시장의 마지막 공식 운영일은 오는 9월 20일 일요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