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이 물꼬 튼 ‘잃어버린 캐나다인’들의 반환 요청
캐나다 조상의 혈통을 입증해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신청자가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정부의 행정망이 마비 직전에 몰렸다. 대기 신청 건수가 12만 건을 돌파한 가운데, 이 같은 대란을 이끄는 주 원인은 다름 아닌 미국인들의 대대적인 ‘캐나다 시민권 찾기’ 열풍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대혼란의 시작은 지난해 말 의회를 통과한 이른바 ‘로스트 캐네디언’ 구제 법안(Bill C-3)이었다. 기존 국적법은 캐나다 밖에서 태어난 경우 직계 1세대(부모)까지만 시민권 자동 승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이 이러한 제한을 ‘과도한 기본권 침해’ 라고 판결함에 따라, 수 세대 전 캐나다를 떠난 조상의 직계 후손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누구든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렸다.
캐나다 이민난민시민부(IRCC)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법안이 시행된 지난 12월 중순부터 올해 5월 말까지 법적 구제(Bill C-3)를 통해 시민권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은 6,100명에 달한다. 여기에 캐나다 출신 부모를 두어 증명서를 받은 1,739명을 더하면 총 2만 3,490명이 새로 캐나다 시민으로 인정받았다.
시민권 증명서를 발급받은 이들은 캐나다 여권을 신청할 수 있고, 캐나다 내 거주 및 취업 권리를 완벽히 누리게 된다. 단, 캐나다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생애 단 한 번도 캐나다에 거주한 적이 없는 경우 연방 총선 투표권은 부여되지 않는다.
신청자 절반은 미국인… ‘빙산의 일각’일 뿐
주목할 점은 이번 국적법 개정의 최대 수혜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C-3 법안으로 시민권을 얻은 사람 중 3,110명, 부모 혈통을 통해 시민권을 얻은 사람 중 8,125명이 미국 출생자였다. 즉, 전체 승인자의 약 절반이 미국인인 셈이다.
1800년대와 1900년대 초반, 퀘벡 등을 중심으로 수 십만 명의 캐나다인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던 역사적 배경이 맞물리면서 미국 내 잠재적 대상자는 방대한 규모에 달한다. 캐나다 의회 예산처는 이번 법 개정의 영향권에 드는 인원을 약 11만 5,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급된 수량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심사를 기다리는 적체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약 5만 6,000건이던 대기 건수는 5월 7만 4,000건으로 늘어났고, 현재 IRCC 공식 웹사이트 기준 대기 건수는 12만 1,800건을 돌파했다. 이로 인해 당초 12개월로 예상되던 신청 처리 소요 시간은 불과 몇 달 만에 25개월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어올랐다.
시민권 승인을 위해서는 수 세대에 걸친 혈통이 단절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수백 년 전 족보와 기록을 소장한 캐나다 전역의 기록보관소로 문의가 몰리면서 현장 사서와 기록연구사들이 심각한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다.
캐나다 아카이브 협회의 알리사 하이덕 회장은 “일부 기관은 문의가 100%에서 최대 300%까지 폭증했다”며 “직원 전체가 극심한 피로감과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요청이 건국 이전(1867년 이전) 서류이거나 시골 작은 교회의 보관소에 흩어져 있어 검색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하이덕 회장은 “디지털화가 안 된 손 글씨 문서나 마이크로필름 수십 롤을 일일이 눈으로 읽어가며 단 한 사람의 이름을 찾아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예산 감축 정책으로 중소 기록보관소들이 의존해 오던 연간 150만 달러 규모의 지원 사업마저 폐지되면서, 일거리는 폭증한 반면 재정 지원은 끊기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협회의 맙 코츠-데이비스 사무총장은 “미국을 떠나려 하거나 미래를 대비해 이주를 계획하는 사람들의 감정적·개인적 열망이 담긴 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현장 기록보관소는 정작 아무런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미흡한 행정 처리도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IRCC는 지난 6월, 이미 발급된 시민권 증명서 중 약 100건에 대해 ‘제출 서류 검증 필요’를 이유로 기습적인 발급 정지 조치를 취했다.
이 중 83건은 추후 정상화되었으나, 나머지 17건에 대해서는 60일 이내에 추가 혈통 입증 서류를 제출하라는 소명 요구서가 발송됐다. 기한 내 입증하지 못할 경우 시민권이 박탈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서류를 다시 발급받으려는 신청자들이 아카이브로 재차 몰려드는 ‘2차 대란’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민당의 제니 관 이민 담당 의원은 “정부의 행정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이민부 장관은 이러한 현장의 혼란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당초 레나 메틀리지 디압 이민부 장관은 “법 개정 이후 신청자가 수만 명 수준에 그칠 것이며 갑작스러운 폭주는 없을 것”이라 장담했으나, 현장의 예측 실패와 미흡한 대비책으로 인해 당분간 캐나다 시민권 행정의 차질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