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6일 WednesdayContact Us

채비 (差備) / 줄리아 헤븐 김

2026-08-26 14:01:27

나는 오래된 길의 가장자리에서
비어 있는 법을 배웠다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빛을 위한
거룩한 자리라는 것을

겨울은 내 몸에 녹슨 시간을 새기고
바람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하늘의 주소를 적어 놓는다

나는 한번도 떠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영혼의 길을 지나왔다

내 안에는
보내지 못한 기도가 있고
접어 둔 이름 하나에는
눈물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는
작은 믿음의 불씨가 있다

나는 봉투를 열지 않는다

어떤 마음은 읽히기보다
하늘에 맡겨질 때 더 깊어지고
어떤 침묵은
기도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밤이면 별들이 내려와
조용히 묻는다

“너는 무엇을 기다리니?”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어쩌면
오지 않는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심어 둔
영원한 빛을 찾아가는 길인지도

시간은 모든 것을 흘려보내지만
사라진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은
새로운 약속의 주소를 남긴다

나는 오늘도 그 주소를 품고
길 위에 서 있다

언젠가 한 줄기 빛이
닫힌 문을 열고
오래 기다린 영혼 하나가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알게 되리라

모든 떠남은 돌아오기 위한 것이며
모든 기다림은
하늘에 닿기를 꿈꾸는
한 통의 기도였음을

2026년 7월 23일 어느 날 문득 내가 우체통이 된 상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