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토요일
당분간 현장에 잔류하면서 내가 지적한 시설의 보수·보완 작업을 관리할 사람들과 작별하고 오전 10시에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참사위원이 출국 수속을 아주 간단히 처리해 주었다. 이럴 때는 ‘빽’이 좋기는 좋다.
북한을 빠져나오기 전,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 있었다. 순안공항에도 명색이 국제공항인 만큼 면세점 몇 곳이 눈에 띄었다. 한 상점에 들어가 소위 북한의 명물인 ‘들쭉술’을 두 병 사려고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아리땁고 엷게 화장한 판매원 아가씨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양을 거쳐 외국으로 가는 편은 체크인 짐가방에 넣어야만 합네다. 그런데 들쭉술 병마개가 긴치 못해서 술이 새어 나온답네다.”
그러면서 손으로 뚜껑을 돌리는 흉내를 낸다. 즉, 중국에 단순 입국해 술을 직접 들고 갈 수 있는 이른바 ‘핸드 캐리’ 여행객에게만 적합한 상품인 것이다. 아깝게도 북한 방문의 증거품이 될 ‘들쭉술’ 구매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에도 참 양심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출국장 터미널에 와보니 고려항공 비행기가 없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활주로 근처 진입로 옆에 정차해 있는 비행기에 올랐다. 120여 명이 타는 비행기인데 좌석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
선양공항에서도 고려항공 비행기는 활주로 부근에 세우고 버스로 승객을 실어 나른다. 이착륙할 때 비행기가 터미널과 활주로 사이를 오가는 데 드는 연료를 아끼기 위해서란다. 선양에서 평양으로 갈 때와는 달리, 평양에서 선양으로 갈 때는 고려항공 승무원의 배려도 별로 없다. 물론 나는 맨 앞 첫 번째 좌석에 앉았다.
선양공항 환승장에서 3시간을 기다린 뒤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후기
현장에 8일 동안 체류하는 동안 전기가 들어온 시간은 모두 합해 32시간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무슨 생산 작업을 할 수 있겠는가.
광진공 사장에게 이번 투자는 그냥 북한에 선물한 셈 치라고 했다. 전력 사정이 이렇다고 하니 개성공단에서부터 현장까지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을 제안하자는 말이 나왔다. 개성공단도 완공 후 전력이 부족해 영종도 화력발전소를 확장하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송전탑을 세워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간단히 설명했다. 우선 개성에서 현장까지의 거리가 50㎞라고 해도 송전탑이 50개 이상 필요하다. 이것 역시 50억 원이 넘는 비용이다. 60억 원(미화 665만 달러)을 투자하고 또다시 50억 원이라니!
위에 기술한 것처럼 본사와의 교신 상황을 보고했더니, 군에서 사용하는 교신거리 50㎞의 장거리 워키토키가 있다면서 강화도나 교동도에서 직원들이 시간을 맞춰 교신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북한에서 워키토키로 남한과 교신하라고? 현장 경비를 맡은 방위병에게 총 맞을 짓을 하라는 말이다. 몇 년 뒤의 사건이지만, 금강산 관광객이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총격을 당하지 않았는가.
당시 투자사인 광물공사의 책임자는 4성 장군 출신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끝으로, 연간 1,830톤의 정제된 흑연정광을 15년간 받기로 했던 투자사업은 결국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총 850톤의 흑연정광만 한국으로 반입된 채 끝났다. 그마저도 특별한 용도가 없는 저품위 흑연정광이었다.
이렇게 남북 자원개발 협력사업은 막을 내렸다.
글 김 주영
1966, 인하공대 졸업, 1969, University of Missouri-Rolla, Graduate School, 공학석사, 1970-1972, 한국 KIST 제련연구실 연구원, 1973-2002, Noranda Inc.(현재 Glencore사) Senior Metallurgical Scientist,2003-2017, 대한광물자원공사(광진공), 삼성물산(해외자원사업), 고려아연, Ambatovy사 기술고문. 서울공대, 인하공대, 한양공대, 전남공대, POSCO E&C, 단기강좌(Short Course) 초빙교수
현재 써리 거주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북한에 가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개칠하듯이 가끔 긁적거렸던 노트를 정리해서 순서대로 몇자 적어본다. 현지에서 그때그때 간단히 일기처럼 메모한 것들 것 모아 보았다. 원래 글 재주가 없는데다가 우리말을 써 본지도 오래돼서 무슨 글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의 사건이고 부분적이지만 북한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