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5일 WednesdayContact Us

북한에서 8박 9일의 기록 2

2026-08-05 13:06:50

2007년 3월 24일 토요일
안내원이 고려항공 비행기표와 비자가 붙어있는 내 여권을 갖고 왔다. 황사는 여전하고 센양 비행장은 무섭게 붐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을 실감케 한다. 출국장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을 하는데 내 여권을 보던 직원이 중국 입국비자도 없이 들어온 사람이 어떻게 출국을 하느냐면서 따지는 것 같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정말 의사가 통하지 않는다. 북한 비자를 받아 온 안내원은 이미 문 밖으로 떠났다. 큰일났다. 센양이 국제 공항이라는데 영어하는 사람이 없나 보다. 졸지에 어제 오후 중국 입국 비자도 없이 중국에 입국한 불법 입국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간신히 북한으로 가는 연계 여행자임을 손짓 발짓해가며 영어로 얼버무려 간신히 통과하였다. 다음 북한으로부터 돌아올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밖에 나가지 않고 비행장 안에서 연계 비행편을 기다려야겠다. 탑승번호가 있는 곳에서 잠시 기다리니 탑승구 안내원이 저 멀리 활주로 근처에 있는 버스를 타란다. 승합차로 한참을 달리니 활주로 끝 근처 진입로에 있는 고려항공이 눈에 들어온다. 층계를 올라가니 붉은 제복을 입은 고려항공의 안내원이 남측 대표라고 맨 앞자리에 앉으란다. 내 신분이 제대로 털렀다는 기분이다. 제트기인데 비지니스 좌석이 없다. 있을 리가 만무하지. 공산사회에서는 만민이 평등인데 높고 낮음이 있을 수가 없지. 내 옆자리는 계속 비어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의문 사항은 잠시 후에 저절로 풀렸다.
승객이 모두 탔는데도 문을 닫지 않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수십개의 크고 작은 박스를 출입문 앞, 화장실 안, 복도, 승무원자리, 꼭대기까지 꽉 차게 놓고서야 문을 밖에서 닫는데 안에 있는 승무원은 짐 속을 헤치면서 허리를 꾸부리고 팔을 뻗어 간신히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작동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을 간단히 한 안내양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안내양과 옆자리는 생전 처음이다. 북한 비행기라서 그런지 엔진소리가 지독하게 요란한 느낌이다. 모든 안내는 몇 마디로 끝났는지, 아주 명료한 목소리로 “우리 공화국”, 조국에 대한 설명과 저 아래 보이는 강이 압록강이라면서 “선생님 조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네다” 한다. 고려항공 안내양도 내가 어떤 용무의 사람이라는 것을 아나보다. 한동안 “우리 인민의 자유조국과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 어쩌고 한다. 높은 곳에는 아직도 눈이 덮인 3월의 북한 땅이지만, 눈 없는 낮은 곳은 싯뻘건 진흙색으로 나무가 없는 민둥 산야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땔감이 없으니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하여 쭉쟁이라도 긁어 모아땔감으로 써야 한단다. 또 왠만한 언덕은 집단영농으로 밭을 일구어서 작물을 생산한다. 낮은 산언덕에는 나무, 풀한포기도 없다. 여름철 장마 때 왠만한 비에 흙탕물에 산사태가 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순안 비행장에 도착하니 여기서도 비행기는 활주로 부근에 세워놓고 버스 (우리나라의 60년도 시내 버스 정도의 여객 전용버스)로 승객을 터미널로 이송한다. 착륙한 비행기를 터미널로 유도하지 않고 이곳 평양 뿐아니라 센양 공항에서도 진입로(taxiway) 밖에 정차하는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로 한참 걸어가니 민경련(조선민족 경제협력 련합회)의 부경리(부장급)와 참사(보위부에서 보낸 정보원으로 보임)가 나를 맞는다. 모든 여객 중 나 하나만 VIP실 통과로 입국수속은 아주 간단히 끝냈다. 내 “빽”이 세긴 아주 “쎈” 모양이다. (고려항공 여객기에는 비지니스 좌석은 없지만 출입국 관리소에는 VIP실이 있다). 공항에서 평양 시내로 오는 인근에는 비닐하우스는 한채도 보지 못하였다. 남한에는 너무나도 많은데, 이곳에서는 싱싱한 채소는 어떻게 해결하나 궁금하다. 시가지는 색채가 있는 간판들이 없어서인지 어둡고 우중충한 회색이다. 넓은 길거리로 보이지만 보행자는 드물고 자동차도 별로 없다.
남측(한국)에서 온 사람은 물론 외국방문객은 여장을 풀기 전 제일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이 있단다. 안내된 곳은 “만수대 김일성 동상”이다. 날씨가 차가운 토요일 오후시간인지 방문객(참배객)은 몇명 없다. 반강제적으로 참배를 하라면서 프라스틱으로 만든 뻣뻣한 조화 한 뭉치를 안내소 직원이 얌전하게 건네준다. 동상 앞으로 가서 프라스틱 꽃을 놓고 묵념 비슷한 것을 하고 내려오는데 어느 사이에 안내원이 쏜살같이 올라가 내가 방금 놓고 온 조화를 들고 막 뛰어간다. 헌화한 꽃을 공손히 얌전하게 회수하지 않고, 그냥 누가 집어갈까 봐 하는 식으로 들고 뛴다. 나에게 건네줄 때와는 정반대로. 이렇게 생화도 아닌 조화를 아주 신속하게 재활용하는 모습을 본다.
보통문을 옆으로 지나 보통강을 오른편으로 하고 한참 만에 도착한 곳이 그 유명한 “보통강 호텔”이다. 건물은 우중충하지만 보통강이 있고 강 옆으로는 산책길이 있는 듯하다. 시내로 들어오던 중에 지나온 보통문에 관해서 몇 마디해야 겠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 남대문 같은 문화재인데 내 눈으로 보기에 어딘가 이상하다. 눈여겨보니 윗지붕, 아랫지붕 용마루마다 조명등을 설치한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보통문은 북한의 국보 1호란다(최근 국보 2호로 바뀌었음. 1호는 평양성). 조명등이 켜있는 것은 보지 못하였지만 그 광경이 어떨가? 소위 보물 외부에 설치한 전선주가 아니고 국보 지붕에 구멍을 뚫고 철근으로 조명시설을 한것같다. 회손도 아주 큰 회손일것 같은데.
체크인하고 대충 씻은 후 먼저 온 공사직원 2명과 함께 나에 대한 환영 만찬은 호텔 구내 “은방울” 민족식당에서다. 음식은 불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등 다양하지만 신선한 채소는 별로다. 평양의 김치는 먹을만 하다. 들쭉술에 그런대로 안주가 좋다. 더군다나 우리를 써브하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예쁘다”기보다는 한복차림에 진한 화장기가 없어 세련되 보인다. 이 보통강 식당에 손님이라고는 나를 포함한 남측 3명과 북측으로는 참사위원, 현장 지배인, 이렇게 5명외에 몇 테이블 건너 3사람이 앉은 두 그룹이 전부다. 식사가 거진 끝날 때쯤에 이 아가씨들 모두가 무대로 올라가더니 악기 하나씩 들고 나온다. 기타, 아코디언, 또 한 아가씨는 드럼 세트를 옮겨와서는 즉흥의 3인조 밴드가 된다. 사실 서울 말로 치면 “라이브 노래방”이다. 노래라고는 몇 개의 옛날 노래 외에는 뽕짝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강성대국” 어쩌고 하는 것들뿐이다.
참 이슬보다 더 독한 들쭉 술을 몇잔 한데다, 몽골로부터 계속한 여행이라 이제 그만 쉬자고 그랬더니 오늘 밤으로 현장에 가야 한단다. 밤12시가 조금 지나 보통강 호텔을 나와 평양을 떠나 소위 평양-개성 고속도로 간다. 평양 시내에서는 간혹 몇 100메타 떨어져 불빛이 보였는데, 교외로 나오니 아주 암흑이다. 고속도로라는데 차랑은 한 대도 볼수가 없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인데 너무나 덜컹거린다. 이게 포장 도로인지 자갈 길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잠을 잘수가 없다. 한 4시쯤에 사리원을 지나 휴게소에 들려 커피를 마시잔다. 휴게소인지 무엇인지 캄캄한 주위에 자동차 불빛에 상행선-하행선 도로가 합치는 넓은 광장 위 횡단보도 같은데 유리창 집이 보인다. 순안 비행장에서부터 나를 데리고 다니는 참사위원이 (당에서 보낸 안내 겸 감시원?) 문을 쾅쾅 두드리며 휴게소 직원을 깨운다. 큰소리로 “남측 대표단이야!!” 몇 마디 하니 잠시 후 여인 몇 명이 눈을 부비며 문을 연다. 부랴부랴 석유난로에 불을 부치고 커피를 준비한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아니고 길거리 여인숙에 온 느낌이다. 잠도 못 잔 처지에 그나마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피로가 조금은 풀린다. 아직도 3시간 정도는 더 가야 한단다. 덜커덩거리면서 말이다. 잠시후부터는 비포장 지방도로다. 포장(?)된 고속도로나 비포장 지방도로나 그게 그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북한의 왠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커피에 미국담배 (주로 말보로)를 즐긴단다. 나를 지키는 참사위원도 어디서 낮는지(혹시 시공사에서 준비했을까?) 말보로를 피어댄다. 연안읍 부근의 현장에 도착하니 동녁이 밝아온다. 밤을 새워 평양 보통강 호텔을 떠나 밤새 달려온 길이 고작 200Km 정도란다. 아주 이른 봄 아침 7시를 가르킨다.

글 김 주영
1966, 인하공대 졸업, 1969, University of Missouri-Rolla, Graduate School, 공학석사, 1970-1972, 한국 KIST 제련연구실 연구원, 1973-2002, Noranda Inc.(현재 Glencore사) Senior Metallurgical Scientist,2003-2014, 대한광물자원공사(광진공), 삼성물산(해외자원사업), 고려아연, Ambatovy사 기술고문. 서울공대, 인하공대, 한양공대, 전남공대, POSCO E&C, 단기강좌(Short Course) 초빙교수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북한에 가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개칠하듯이 가끔 긁적거렸던 노트를 정리해서 순서대로 몇자 적어본다. 현지에서 그때그때 간단히 일기처럼 메모한 것들 것 모아 보았다. 원래 글 재주가 없는데다가 우리말을 써 본지도 오래돼서 무슨 글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의 사건이고 부분적이지만 북한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