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9일 WednesdayContact Us

북한에서 8박 9일의 기록 1

2026-07-29 15:36:57

2007년 3월 22일
지난 19일 오전서울을 떠나 몽골 수도 울란바타에서 1박한 다음날 서북쪽으로 약 39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현장을 향해 하루 종일 비포장 도로를 덜커덩 달려 Erdnet현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지독히 춥다. 영하 26도란다. 사정없이 쌩쌩 부는 몽골 초원의 칼바람은 우리 콧등에 오는 체감온도가 아마 영하 40도는 될것 같다. 지난 2일간은 광산 노천 채광장 및 선광장 공장 답사 및 현장 책임자들과 회담을 마쳤고, 22일 새벽에 울란바타로 이동해서 Erdnet동광산의 제2 선광-습식제련시설 합작 투자(광물공사 + 삼성물산) 건에 관하여 오전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북한에서 비자를 준다.” 그러니 23일 오전 12시까지 만주 센양 공항에 도착하면 안내원을 만나서 북한에 들어가는 절차를 거치고, 평양으로 해서 황해도 연안읍 부근에 위치하는 현장으로 가서 지난해 4월에 준공한 흑연 선광 공장의 시운전을 해달란다. 듣기에 무슨 007작전 같다.
황해도 정촌 흑연 광산은 지난 2003년 7월 북한 황해도 연안읍 부근에 있는 광산 현장에 새로운 선광장 건설에 광물공사가 투자하여 선광-정제공정을 거친 고품위 정광을 생산하여 연간 약 1800톤의 정제된 흑연을 15년간 투자비 상환 조건으로 국내로 반출하기로 협정한바 있다. 총 투자액은 1천20만달러로 양측이 50대 50으로 광진공은 현물 투자로 채광, 운반, 선광-정제시설을(660만$ 약 62언원), 북측의 투자는 광산 원광, 부지, 토목, 전력 및 용수시설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2004년 4월 착공 후 초기 건설 당시에 제출된 선광-정제 공장 설계 및 시공도를 세부 검토하여 수정 및 보완할 사항들을 3회 지적하여 제출한바 있다. 그 후 약 2년간 선광-정제 공장을 건설하여 2006년 4월에는 대대적으로 준공식(서울에서 아시아나 비행기도 전세 내어 200여명의 참석자들을 이송함)도 거행하여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바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가동을 못하는 실정이란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유엔 북한 제재조치가 정촌현장의 가동하고는 아무 연관이 없을터인데. 원래 생산현장의 준공이라 함은 여런단계의 시운전 즉 공-운전, 부하-운전을 통하여 정상 생산 가동을 확인하는 단계를 준공이라한다. 그렇나 이번 정촌 선광-정제공장의 준공은 설비 시설들의 설치완료(?) 단계라고 본다. 이렇한 현장에 무슨 문제들이 있는지 직접 시운전을 시행하여 달라는 부탁은 준공식 이후 받은 지도 6개월이 지났다. 사실 선광장 건설하기 전 설계자료를 평가한 바도 있고, 1일 처리 250톤 정도 규모의 선광장은 내 경험에 아주 작은 처리 용량이므로 공학적으로 별로 부담이 없다고 보았다.
2006년말 집에 있는데 뉴욕 UN주재 북한 대표부 직원이라며 아주 명확한 평안도 사투리로 “김주영 선생님이심네까? 공화국 립국 신청하셨디요” 하며 통화가 가능하냐는 전화가 왔다. 신상에 관한 질문이라면서 한동안 이것저것 묻고 대답한적이 있다. 질문 내용은 확인하는 입장이라면서 몇년 Canada에 살고 있나, Missouri대학은 언제 졸업했냐, 직장이 어디냐, 무슨일을 하느냐 등. 아마 사전 조사를 하는 모양이다. 그후로는 아무 연락도 없고, 광물공사로 부터도 시운전한다-안한다 소식 없이 지내던 3개월이었다.

3월 23일 금요일
22일 밤 비행기로 울란바타를 떠나 인천에 도착하니 새벽 6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와서 기사를 문앞에 대기시킨채로 후다닥 여행짐을 바뚸꾸려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진해오니 오전 9시 5분. 숨쉴새도 없이 KAL기로 센양 출발.
오후 2시47분, 센양공항 출국장을 나오니 온 세상이 누런 안개 속이다. 소위 황사가 이런 것이구나, 정말 실감이 난다. 몇 메타 앞을 볼수 없이 뿌연 공기 속에 탁한 흙 냄새가 코를 찌른다. 두리번거리는데 “김 선생님이디요?” 하는 사투리 소리가 들린다. 여행사에서 보낸 북한 입국을 담당하는 사람이란다. 준비된 듯한 택시를 타고 “칠보산 호텔”에 들었다. 센양에 있는 택시는 전부가 벤스다. 내 인생에 검은 색 택시 더군다나 “벤스 택시”는 처음이다. 안내원 말이 내일 북한 비자와 고려항공 비행기표를 갖고 올터이니 내 여권을 달란다. 조금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여권을 주니 하는 말이 호텔 밖에는 절대로 나가지 말란다. 혼자 구내 식당에서 처음보는 “들쭉 술”을 반주로 저녁을 먹는데 식당 아가씨가 어떻게 아는지 남한에서 온 카나다 사람이라며 흥미가 있는지 호텔자랑이 보통이 아니다. “칠보산 호텔은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친히 지어주신 이름입네다. 때문에 이렇한 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큰 영광이디요” 한다. 작년 가을부터 북한에 간다 간다 하던 것이, 지금 센양의 호텔방에 혼자 있으니 기분이 착잡하다.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적은 공간에 갖쳐 자유없는 몸이 되었다. 내일 압록강 국경울 넘으면 더 자유스럽지 못할 터인데.
오래 전에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는 마음으로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 집에 놓고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 나도 작년 가을 북한 방문에 관한 말이 오갈 때 손톱과 머리카락을 한옹큼 잘라 봉투에 넣어 내 책상머리에 두고 온 기억이 난다. 센양에서는 서울로 전화가 가능하다기에 고교 동창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센양인데 내일 북한에 간다. 내가 2주 후에 돌아오지 안으면 네가 카나다 대사관에 연락해라.” 카나다 집사람에게는 아직 아무 연락도 하지않았다. 아직 몽골 현장 출장중이라고 알겠지. 독한 들쭉술도 마셨는데 도대체 잠이 오질 않는다.
다음 주에 계속

글 김 주영
1966, 인하공대 졸업, 1969, University of Missouri-Rolla, Graduate School, 공학석사, 1970-1972, 한국 KIST 제련연구실 연구원, 1973-2002, Noranda Inc.(현재 Glencore사) Senior Metallurgical Scientist,2003-2014, 대한광물자원공사(광진공), 삼성물산(해외자원사업), 고려아연, Ambatovy사 기술고문. 서울공대, 인하공대, 한양공대, 전남공대, POSCO E&C, 단기강좌(Short Course) 초빙교수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북한에 가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개칠하듯이 가끔 긁적거렸던 노트를 정리해서 순서대로 몇자 적어본다. 현지에서 그때그때 간단히 일기처럼 메모한 것들 것 모아 보았다. 원래 글 재주가 없는데다가 우리말을 써 본지도 오래돼서 무슨 글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의 사건이고 부분적이지만 북한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