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4일 FridayContact Us

북한에서 8박 9일의 기록 5

2026-09-04 01:20:18

3월 30일 금요일 2
연안을 지나 평산까지는 비포장도로이고, 평산부터는 전날 밤 내려올 때 이용했던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다. 연안–배천평야는 구획 정리가 잘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사리원평야는 더 넓다. 아주 먼 곳까지 구획 정리가 잘된 논이 보인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농지개혁이라는 구실 아래 구획 정리를 철저히 해놓았다. 이것은 농사를 기계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위면적당 소출량을 정해 구역마다 경쟁시키기 위한 것이다. 전원 풍경은 이른 봄이라서 그런지 아주 조용하다. 아직도 날씨가 추워 논밭에서 일할 때가 아닌 듯하다. 남쪽에는 그렇게 많은 비닐하우스와 묘소, 검은색 덮개를 씌운 인삼밭 같은 것이 많이 보였는데, 북한 땅에서는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낮은 언덕과 산등성이에는 나무도 없다.
현장으로 내려올 때 한밤중에 들렀던 은정휴게소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남측 대표단이야”라는 말과 함께 커피 대접을 받았다. 대낮인데도 여행객은 아무도 없다. 도대체 이동 인구가 전무한 상태다.
고속도로라는데 노란색 중앙선이 없고, 가끔 흰 점선 두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보니 3차선 도로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량이라고는 군용차량 같은 트럭 몇 대를 보았을 뿐, 다른 승용차나 버스, 화물트럭은 아예 없다.
평양–개성 고속도로는 상행과 하행이 각각 3개 차선으로 분리돼 있지만, 보통 상·하행 교통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들목을 기준으로 한 구간의 3차선 도로를 상·하행 차량이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이동 차량이 한 시간에 몇 대 정도에 불과하니 교통경찰도 필요 없을 지경이다. 평양–원산 나들목을 지나니 그제야 고속도로에 차량들이 보인다.
그 유명한 ‘옥류관’에 도착했다. 큰 강당 같은 식당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사각형 테이블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마다 소위 ‘비로드’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낙들과 체격에 맞지 않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촌티 나는 남자들 수백 명이 냉면을 먹고 있었다.
“남측 대표단이야”라고 하자 맨 앞 테이블에 우리 일행을 한 줄로, 군중을 향해 앉힌다. 물냉면과 조그마한 그릇에 담긴 김치가 나왔다. 딱 두 가지에 미화 5달러란다. 물론 참사위원이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마련해 놓은 점심이다.
‘저 군중들은 5달러를 내고 먹을 수가 없을 텐데….’
김치가 너무 적어 더 달라고 하니 한 접시에 1달러란다. 이것은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현찰로 5달러를 주니 다섯 접시를 가져왔다. 냉면 맛은 그저 그렇다.
점심 식사 후, 평양에 먼저 왔던 두 사람은 지난번에 이곳들을 방문했으니 나만 방문할 두 곳이 예정돼 있다며 따로 차를 타라고 한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만경대 고향집’이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 수령님께서 탄생하시고 유년기를 보내신 곳”이란다. 줄을 지어 ‘참배’하러 동원된 듯한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이다. 조금 전 옥류관에서 본 사람들과 복장이 비슷하다.
나의 든든한 ‘빽’인 참사위원이 “남측 대표야”라고 하니 젊은 여자 안내원, 일종의 해설사가 따라온다. 옛날 무성영화 「홍도야 우지 마라」의 변사처럼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의 목소리로 온갖 수식어를 다 써가며 김일성을 찬양한다. 만경대까지 안내하면서 하는 말이 “태양이신 어버이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민족을 사랑하시고…” 어쩌고저쩌고 한다. 이 아가씨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주체탑’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것이란다. 또 다른 해설자가 아주 신이 나서 “이 탑을 짓는 데는 기중기를 사용하지 않고 인민의 주체정신으로 탑을 건설했습네다”라며 늘어놓는 공치사가 주체탑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
나는 속으로 ‘저 많고 큰 돌덩어리들을 기중기도 없이 사람 수백 명이 들어 올렸다니 얼마나 고생했을까’라고 생각했다.
북한에서는 ‘주체’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한다. ‘주체철’이라는 것도 있다. 철광석을 제련하는 공정에 필수적인 코크스 대신 북한산 무연탄을 사용해 철을 생산한다고 해서 ‘주체철’이란다. 코크스 공법의 회수율을 100으로 본다면 무연탄 공법의 회수율은 30 정도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뻥을 쳐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회수율과 생산원가 같은 기본 개념도 없는 사회주의 공산집단의 두뇌 구조다.
호텔로 오는 도중 대동문과 보통문을 지나왔다. 대동문에는 조명시설이 없지만 보통문에는 조명시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평양에는 거무칙칙한 20∼30층짜리 아파트가 많다. 아침저녁으로 엘리베이터가 가동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전기가 온종일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오르내리는 일이 보통이 아니란다. 30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할 처지를 생각하면 기가 질릴 판이다.
김 박사 선생의 마지막 밤 숙소는 지난번에 묵었던 보통강호텔이 아니라 ‘고려호텔’이란다. 고려호텔은 보통강호텔보다 상당히 크고 내·외부 시설에도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호텔에 들어오니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머리를 언제 감았는지 기억마저 가물가물할 정도라 냄새도 나고 지저분하다. 전기면도기는 배터리가 방전돼 혼절한 지 이미 오래다. 얼음이 둥둥 뜬 물로 세수하면서 면도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였다. 얼음물로 고양이 세수라도 한 것이 벌써 7∼8일 전이었으리라. 아마 머리 위에는 허연 비듬이 득실거릴 것이다.
8일 만에 더운물로 샤워하고 머리를 감으니 살 것 같다. 오랜만에 냉기 없는 침대에서 잠을 잤다.

글 김 주영
1966, 인하공대 졸업, 1969, University of Missouri-Rolla, Graduate School, 공학석사, 1970-1972, 한국 KIST 제련연구실 연구원, 1973-2002, Noranda Inc.(현재 Glencore사) Senior Metallurgical Scientist,2003-2017, 대한광물자원공사(광진공), 삼성물산(해외자원사업), 고려아연, Ambatovy사 기술고문. 서울공대, 인하공대, 한양공대, 전남공대, POSCO E&C, 단기강좌(Short Course) 초빙교수
현재 써리 거주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북한에 가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개칠하듯이 가끔 긁적거렸던 노트를 정리해서 순서대로 몇자 적어본다. 현지에서 그때그때 간단히 일기처럼 메모한 것들 것 모아 보았다. 원래 글 재주가 없는데다가 우리말을 써 본지도 오래돼서 무슨 글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의 사건이고 부분적이지만 북한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