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경쟁, 위기에 빠진 당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올 기회로 평가
이번 선거에서 치욕적인 참패를 당한 BC 신민당(NDP)은 조속히 전열을 가다듬고 임시 당대표를 선출하는 한편, 남은 자원을 모아 승리한 BC 보수당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비록 의석을 단 2석밖에 건지지 못했던 지난 2001년 총선만큼의 최악의 붕괴는 아니지만, 보수당이 63석을 휩쓰는 동안 겨우 28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며 당의 세력은 크게 위축됐다. 이는 기존 집권 여당 시절 가졌던 47석에서 급감한 수치이며, 2005년 이후 야당 시절에도 늘 유지해 왔던 30석 이상의 선방 마지노선이 무너진 결과다.
2026년 초까지 데이비드 이비 전 주총리의 부비서실장으로 3년간 일했던 에일린 마셜은 이제 신민당이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제1야당으로서 정체성을 전면 재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셜은 정부 고위 소통 직책에서 15년을 보낸 전문가로, 신민당이 지난 9년간 존 호건 전 주총리와 데이비드 이비 전 주총리 체제 하에서 쌓아 올린 주요 정책적 유산들을 지켜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셜은 “그 유산들이야 말로 주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정책들이다. 저렴한 보육확대, 주택 가격과 월세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 부동산 대책, 그리고 가정의 유치와 의료 시스템 개선에 들인 노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NDP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4년 임기 중 약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조기 선거를 감행한 데이비드 이비 전 주총리의 오판이 지목되고 있다. 당초 이비 전 주총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 위협과 BC 보수당의 ‘트럼프식 정치 스타일’이 주에 끼칠 위험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그러나 당시 당내 혼란으로 케리-린 필레이 당대표가 돌연 사퇴하고 론 도어크슨 의원이 임시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이비의 이러한 선거 전략은 완전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비 전 주총리는 서둘러 서민 물가 안정 및 부유세 부과 등으로 이슈 전환을 시도했으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신민당의 베테랑 의원이자 전 당대표인 에이드리언 디크스는 조기 선거를 소집한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디크스 의원은 조기 선거 소집에 대한 논란 자체가 워낙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비 전 주총리가 준비한 다른 긍정적인 정책 메시지들이 완전히 묻혀버렸다고 평가했다. 이비 전 주총리는 선거 당일 밤 패배가 확실시되자 즉각 당대표직 사퇴를 발표했다.
이제 NDP는 시급히 임시 당대표를 추대하고 향후 정식 당권 경쟁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마셜은 당대표 경선이 새로운 당원을 영입하고 당 자금을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다양한 정책적 아이디어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이 되어 당원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구체적인 경선 일정과 구도가 잡히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차기 당대표 후보군으로는 인프라부 장관 등 내각 요직을 거친 보윈 마 노스 밴쿠버-론스데일 지역구 의원과, 이번에 델타 노스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았으나 직전에 보건부 장관을 지낸 라비 칼론 등이 자타공인 거론되고 있다.
정치학자 해미시 텔포드는 신민당이 야당으로 전환하는 이 격변의 시기를 이끌어줄 노련한 베테랑 의원들이 의회에 포진해 있다는 점을 짚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번에 다시 의원직 방어에 성공한 디크스 의원과, 7회 연속 선거 승리 기록을 세우며 공공안전부 장관 및 부주총리를 지낸 마이크 판워스 의원 등이 있다.
프레이저 밸리 대학교의 정치학 부교수인 텔포드는 “당권을 잡는 데 관심을 가질 만한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 많이 있다”며, “데이비드 이비 전 주총리가 당을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겨두고 떠났다는 점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텔포드 교수는 이비 전 주총리가 선거 소집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한 달 전 케리-린 필레이가 여전히 보수당 대표로 있을 때 보궐선거 소집과 동시에 조기 총선을 단행했다면 오늘날의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필레이 전 대표는 이비가 조기 선거를 발표하기 직전에 사퇴했고, 이비가 본격적으로 선거를 소집했을 때는 이미 도어크슨이 임시 대표로 자리를 잡은 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