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화요일Contact Us

관계의 정석

2017-11-02 00:00:00

오랜만에 다시 만남을 갖게 된 유학생 재원 어머님과의 시간은 모처럼 참 유쾌하였다.
돌아오는 1월이 되면 아이와 1년정도의 유학 생활을 마무리 하시고 귀국하신다며 헤어짐의 인사는 나누고 싶으셨다는 이유로 찾아봐 주시니, 이 곳에서도 이런 소중한 만남도 있구나하는 포근함과 커피 한잔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인연의 시작은, 우리 집의 아이와 학급 안에서 부딪힘이 있어 시작 되었지만, 첫 만남부터 예의를 갖추시며 그것도 미안해 하시며 아이들의 관계를 털어 놓으시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하였지만, 우리 집 아이가 형답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기분을 살피시며 나를 배려하시는 걸 알 수 있으니 어머님의 성품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 사회는 적은 수의 아이를 키우다보니 우리네의 아이가 제일 소중하다 할 터인데 조심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더 끌리는 만남이었다.
 
오늘은 어쩜 민감할 수도 있는 아이들 부모와 홈스테이 맘과의 관계를 풀어 놓으려 한다.
험담을 하는 것도 불평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절대 비난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완만한 해결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혹여, 비슷한 모습으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면, 한번쯤 쉬었다 가는 멈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어떤 가정과의 인연은 작년 가을부터였다. 지인을 통해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아이가 처한 딱한 사정에 라이드 편도 시간만 40-5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대부분의 날은 3시간을, 행사라도 참여할 때엔 밤 9시, 10까지 기다리는 시간들로 6월까지 이어왔다. 지금은 그 곳 학교 생활도 잘 마무리 하며 새로운 학교로 옮길 수 있었던 작은 성공은 나름은 인내가 많이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 사실,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이 이렇게 길게 가리라고는 처음엔 생각하지 못 하였다.
작년 첫 유학 생활을 캐네디언 홈스테이 가정에서 시작했던 아이는 그 가정의 생활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고, 학교 생활 또한 원만하지 못 하여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급하게 어머니가 들어오시며 방법을 찾던 중, 나와도 연락이 닿게 되었다. 지인을 통해 이루어진 이 만남은 여러 가정을 찾아 보아도 아이를 맡길 마땅한 곳이 없다며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모른 척 하기 쉽지 않아… 늘 그렇게 살아왔듯 내 오지랖은 또 발동이 걸렸고 ‘좀 힘들면 어때? 따뜻한 밥 먹이며 아이가 달라지면 그걸로 족하지’ 라는 생각으로 2-3개월 정도 맡기로 된 것이 부모님의 부탁으로 연장 된 8개월이 되었다.
그렇다고 먼 거리를 돌본다며 별도로 다른 댓가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럴 것 같았음 이 일을 안 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라…홈스테이 생활비 받는 건 받더라도 다른 것 때문에 뭔가를 청구하는 방식은 아직까진 내가 생활하고픈 모습은 아니기에, 또 이런 마음이 먹어지는 시간이 오면 이 일을 그만 두는게 맞는거라 생각하는 모지리라…어찌 되었든 이 인연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첫 만남에서 일 하는 파워 있는 여성처럼 보이는 어머니의 말과 행동. 어쩜 첫 느낌은 나랑 맞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고, 차가워 보여 그 자리가 약간은 불편했던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저 아이가 힘드니까 어른들의 처신에 아팠으니, 속상하시는 마음에서 그러시나보다 짐작 되었으며 여느 어머니의 심정이 이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 편으로는 이런 마음에서 이 인연을 시작하기도 했다. 상대 교육청은, 우리 아이들의 첫 유학 생활의 시작이었고, 그 곳에서 좋은 만남으로 예쁘게 추억을 간직해 온 고향 같은 곳이기에 한번씩 그 곳의 선생님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기억에 남아있는 장소들도 지나며, 그러면서도 아이만 적응을 잘 하면 교육청 입장도 편할 거라는 그런 마음을 나누고자 했던 기대도 있었던 게 솔직한 심경이다.
그렇게 시작은 챙겨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일이 많은 아이의 현실과 부딪히며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종종 있었다. 보통 또래 아이들보다 사회성이 부족한 모습은 있었지만, 아이들은 내 자존심이라는 생각에 하나씩 가르치고 다듬는 일상은 “아이가 변했어요. 대화를 나눌 때 눈을 바라보고 답변을 해요. 수업의 참여도와 과제도 이젠 잘 챙겨요. “ 등등의 소소한 칭찬을 카운셀러로부터 들을 때면 모든 고단함은 사그라들기도 했고 보람도 있었다. 당연히 부모님도 같은 마음일거라는 기대도 물론 있었기에 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기대는 기대일 뿐 마음이 같지는 않는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마음이 더 아팠던 건, 아이들이 변화되고 적응을 잘 해내고 있는 건 ‘우리 아이들이 원래 최고의 아이였기 때문이다.
홈스테이는 돈 주고 있는 곳이니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라는 뒷 말을 들은 것은 지금도 상처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하는 분의 입장은 더 인연을 이어가 보아도 우리에게 상처만 남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전한다고 하시며 내 손을 잡아 주심으로 위로하셨다.
물론,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바로 접지 못하는 내 입장은 그 때도 지금도 이건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물건을 매매 하는 일이라면 거래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사람의 관계는 그리 쉽게 정리될 수 없는 감정과 예의는 있어야 하기 때문인것이다. 이 인연은 그런 후에도 일방적인 아이 입장에서의 소식 전하기와 아이를 맡고 있는 우리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의논없이 전화와 메일로 아이들을 핸들링 하시는 모습으로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단순하다. 아이를 돌보는 모습은 의식주만 해결하는게 아니라 기본으로 전제 된 건 책임이고, 사랑이다. 난 아이 부모님들의 경제 능력과 학력 정도 사회적 지위 등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서로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함께 생각하고 의논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싶은 바람뿐이다.
이런 우리들의 관계에는 갑과 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직상하 관계가 아니라 그저 동등한 입장에서 존중한다면 어느 상황이든 어렵게 푸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마음을 꼬이게 만들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을텐데… 나의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이의 아이도 똑같이 소중하기에, 내 아이가 전달하는 말들에만 집중할게 아니라 상황의 얘기도 들어보며 조율하는 나눔도 필요한 관계가 나와 부모가 맺어져야 하는 관계의 정석인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 멀게 온 지금을 나는 반성한다.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바로 잡기를 하지 못 했던 내 좁은 마음이 진심으로 부끄럽다.
 
문득, 10여년 전 내가 타던 자동차를 폐차장으로 인도하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어려웠던 시절  낡은 모습의 자동차는 8년이라는 시간을 안 가본 곳이 없이 열심히 달렸다. 든든하게 먹어야 하는 밥(기름) 또한 저렴한 밥(유사 휘발유)을 먹이며 돈을 열심히 벌어주던 차는 생명이 다 하여 덜덜 거리는 딸림의 속력으로 나를 우리 집 아파트 정문안에 들여 보내준 후 멈추며 숨을 거두었다.
더 이상 회생할 수 없어 폐차장으로 보내며 나와 남편은 고개 숙여 “고맙다. 감사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다음 생에는 좋은 주인 만나 좋은 밥(기름) 먹는 운으로 태어나거라” 하며 눈시울 적시며 작별인사하던 그 날이… 듣는 이에 따라서는 유치하다 할 지 모르지만, 이런 마음이 헤어짐의 바른 예의가 아닌 가 싶다.
훌훌 털어버리는 이 글을 뒤로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오늘 저녁은 해피 할로윈을 위해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보려 한다.
 
*좋은 추억 만들고 귀국하는 재원이 건강하렴. 어머니와 재원이 잊지 않을게^^*
facebook_밴쿠버 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