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일상): 8월의 기억
8월은 우리 가정이 이 곳 밴쿠버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달이다.
8월에는 남편과 아들의 생일이 있다.아빠의 생일에 태어난 아들이어서 더 의미가 있는 달이다.내가 행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이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이렇게8월은 내게는 행복한 기억의 달이었다.
적어도 2012년 8월까지는 그랬었다.
그 후로,8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 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다.
2013년 8월,우리 가정의 삶이 흔들릴 수 있었던 시련이 한번 더 찾아왔었다. 밴쿠버의 삶의 시작은 우리 세 가족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8년이라는 시간동안 밤낮 없이 달려온 우리 부부에게는 휴식의 시간이자 아들의 미래를 처음으로 응원할 수 있었던 기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삶인 것이었다.
하지만, 만 3년만에 “파밍”이라는 신종 은행 사기를 겪게 되었던 우리들의 날이 있었으니 슬픔도 함께 기억되는 달이 되었다.
여섯 명의 우리 아이들은 한없이 맑고, 밝게 오늘은 또 무슨 활동으로 재미가 있을지를 기대하며 눈을 비비던 아침에…
우리 부부는 한국 계좌의 잔액이 0원인 현실을 맞고 있었다. 그 날 아침은 앞으로의 먼 삶을 걱정하기 보다는 당장 다음 달 생활을 어찌 해야하는지에 앞이 캄캄하였으니 내일이 있을지도 염려가 되는 날이었다. 전재산을 송두리째 잃은 우리는… 그리고 나는, 인터넷 뱅킹을 한 죄로 고개를 들지 못 하였고, 남편은 그 큰돈을 잃은 고통을 내색조차 못한 채 나를 달래어 주는 인내심으로 대신하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어찌 그럴 수 있었을지 존경함으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기억이다. 아이들이 불안해할까 봐 웃어주고,일상 생활조차 이어가지 못 하던 나를 위로하며 가정 일을 돕던 남편의 넓은 속내에 지금도 큰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눈물이 난다.
사실, 우리 여덟 명의 유학은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누구하나 돈 많게 여유있는 유학을 온 것이 아니라 나와의 뜻 깊었던 인연으로 ‘함께 가 보자’는 뜻에서 적은 비용으로 알뜰하게 시작된 생활이었고 심지어 이조차 여의치 않은 아이에게는 생활비의 명목으로 받는 비용도 없이 그저 예쁘게 여겨지는 마음으로 똘똘 뭉치었던 가정의 시작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모아 둔 한국의 통장의 돈은 조금씩 축이 났었고, 어떤 이는 이런 상황을 보며 나무라기도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전 재산을 모두 잃게 되는 시련으로 삶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감사할 일은, 사람의 소중함을 한번 더 느꼈던 기억도 그 때였다는 것이다. 당장 어려움을 겪을 누나네의 생활을 걱정하여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동생 부부는 보험과 적금을 깨트려 송금을 하였고, 가깝게 지내던 언니는 비상금이라며 봉투에 돈을 넣어 생활에 보태라며 찾아왔었으며 아들의 친구 어머니는 어디에서 소식을 접했는지 식량과 상품권을 들고 찾아와 주는 등…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아니었다면 이 가정이 이렇게 존재하기는 어려웠을 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받기 보다는 주는 일에 더 익숙한 나는 이 시간 이렇게 베푸는 마음을 겸허히 받는 마음도 배울 수 있었고, 차분해지는 성숙함으로 가정의 계획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쩜,그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이 끝까지 학업을 마치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남편은 돈을 버는 즐거움보다는 쓰는 즐거움이 더 뜻 깊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시절,큰 부자가 되고 싶었던 내 남편은 지금은 돈을 버는 이유를 ‘00노릇을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아버지 노릇, 아들 노릇, 동생 노릇, 삼촌 노릇’ 등으로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인 것이다. 그 마음에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이 다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몇 년 후부터는 나와 함께 하였던 큰 아이들이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갈 것이다. 그 때에 이모,이모부가 냉장고라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그러한 인연을 잘 끝맺기 위해 아직도 너희와 함께 지내는 것임을 이야기 해 주고 싶은 것이다.
정말 놓고 싶던 기억이 많은 우리들의 삶이었지만, 가장 힘겨웠던 시간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매일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지켜가는 이들을 기억시켜 주고 싶다.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귀띔해 주고 싶은 2018년의 8월이다.
(두번째 일상): 젊은 너희들
아이들의 일탈은 대개는 소박한 것들이다. 몰래 감추며 게임을 하거나, 씻기 귀찮아 씻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의 어른 눈으로는 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성인인 대학생 아이들의 일탈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얼마 전,어른들의 부재를 기회삼아 늦은 시간까지 한 잔을 하는 모험심이 몇 병이 되던 그들의 밤은 생각보다 늦었고, 한 녀석은 취하기까지 하는 만행으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날이 있었다.그 일이 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던 우리 어른들은 너무 놀라기도 하였고,깜찍하게도 완전 범행으로 끝날것 같은 비밀은 그렇게 예상하지 못 하는 방향에서 듣게 된 것이었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 일부러 속이는 일이 된 걸 알게 되며 더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차라리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털어 놓으며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우리의 바람은 그저 욕심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이 시절을 겪었기에 세상 밖의 일이 재미난 것을 알고 있다. 다만,내가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조금은 답답할지 모르겠다. 그 시절은 조용한 연예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고, 가정과 기숙사의 통금 시간을 따라야 했기에 많이 절제된 생활을 하였었다. 내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교육 방향은 어쩌면 많이 답답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들과 쇼핑을 하고, 카페를 가거나 외식을 즐기고, 영화관이나 노래방을 함께 가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신식 문화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니,나의 교육 방법이 어른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2주정도 되는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이 아이들을 놓아야 할 시간인지를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적지 않은 수의 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깊은 생각에 들어가는 지금이다.
그럼에도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시간들 중 걱정하지 않았던 시간이 없었고,흐르는 시간에 우리 어른들의 자리는 저 뒤만큼 쳐져 있지만,그래도 사랑이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장 소원하는 것은, 입가에 머무는 미소와 그리움에 아이들과의 이별이 아쉬워지는 헤어짐이 되길 간절이 바라여 본다.
Ps:’이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이모나 이모부는 너희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길 바랐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