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오석중 시인
나를 착각하게 하는 것은 나의 경륜이다.
자신의 경륜을 너무 신봉하지 말일이다.
경륜은 과거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이다.
새로운 전투에 항상 임하는 우리는
항상 새로운 전리품을 얻어야 한다.
승리하지 못해도 전리품은 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라는 전리품이다.
(2019 5 4)
(*)
자신이 살아온 인생 모두를 살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평균수명이 낮았을 때는 할 수 없었지만 평균수명이 높아진 지금은 할 수 있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개인의 문제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추측이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전모를 살피는 것도 거기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늙은이가 된 나는 오히려 수명이 짧았던 옛날에 더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자신을 회고할 수 있었다고 짐작한다.
경륜은 일생을 살아오면서 생긴 노하우지만 외부를 향해 쓸 수 있는 감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쓰는 그 감투는 자신의 시간당 임금을 높이는데 주로 쓰인다. 나의 이야기는 정신에 관한 문제였지만 소위 국민을 선도해야하는 집단에서는 실질적인 부의 상징으로 또 부를 쌓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재산이 일반 국민의 평균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아진 것도 이 사회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청렴한 것을 옛날식 청렴으로 환원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차이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 차이가 곧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경륜이 감투는 맞지만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감투는, 돈을 만드는 감투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의 시작은 경륜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사회비판이 되었다. 나는 가급적 사회비판은 하지 않는다. 그런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국외자나 변두리에 산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오히려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도움이 된다. 나의 경륜은 나 자신에게 쓰는 데만도 부족하다.
나는 내가 쓴 시를 돌아보며 이제야 겨우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청춘의 시도 항상 현재였던 나의 마음도 슬슬 단풍이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슬쩍 슬쩍 나의 모습의 전체가 보이고 윤곽이 드러난다. 나는 비로소 노인이 된 것이다. 앞만 보고 산 것이 아니라 시방을 모두 보려 노력했던 일생이었지만 그 보는 자체가 묶음으로 전진하고 있었던 듯하다. 나의 인생에 별 전진이나 진전이 없으니 사방에서 들어오는 경치가 새롭다. 나는 내가 본 경치가 맞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나 지금은 지금 본 경치와 전에 본 경치를 비교하며 살고 있다.
2025.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