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3일 MondayContact Us

잠은 약이 될 수도, 병이 될 수도 있다

2026-01-08 09:50:23

한의학으로 바라본 수면의 의미

현대인은 수면을 이야기할 때 대개 “몇 시간 잤느냐”를 먼저 묻는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잠의 양보다 ‘언제, 어떻게 자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겨 왔다. 같은 7시간의 수면이라도 밤 10시에 잠든 사람과 새벽 2시에 잠든 사람의 몸 상태는 전혀 다르다고 본다. 이는 한의학이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는 자오유주(子午流注) 라는 개념이 있다. 하루 24시간 동안 기혈이 장부를 순환하며 각 장부가 가장 활발히 작용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이론이다. 이 흐름에 맞춰 생활하면 인체는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지만, 이를 거스르면 피로와 질병이 쌓인다고 본다. 수면과 가장 밀접한 시간대가 바로 자시(子時),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이다.

자시는 음양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낮 동안 외부로 쓰이던 양기가 안으로 들어가 음으로 전환되며, 몸은 본격적인 회복 단계에 들어간다. 이때 깊은 잠에 들어 있으면 기혈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손상된 에너지는 보충된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이 시간을 단순한 취침 시간이 아니라, 하루 건강의 분수령으로 여겨 왔다.

자시에 주관하는 장부는 담과 간이다. 담은 결단력과 정신적 안정, 간은 혈을 저장하고 해독을 담당한다. 이 시간에 잠들어 있으면 간은 충분한 혈을 저장하고, 낮 동안 쌓인 피로와 노폐물을 정리한다. 반대로 이 시간에 깨어 있으면 간혈은 소모되고 회복은 지연된다. 그래서 예부터 한의학에서는
자시 전에 자는 잠은 보약이고, 자시 이후에 자는 잠은 빚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오늘 밤의 각성은 내일 쓸 기혈을 미리 당겨 쓰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실제 임상에서도 늦은 취침의 영향은 분명하다. “잠은 충분히 자는데 늘 피곤하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정 이후에 잠들거나,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과 TV에 노출되어 있다. 수면 시간은 확보되었을지 몰라도, 몸이 가장 깊이 회복해야 할 시간대를 놓친 상태다. 그 결과 낮 동안 졸림이 심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혈압이나 혈당의 변동 폭도 커진다.

한의학에서는 밤을 음의 시간, 낮을 양의 시간으로 본다. 밤에는 쉬고 저장해야 하고, 낮에는 쓰고 활동해야 한다. 그러나 밤늦도록 활동을 지속하면 양기는 계속 밖에 떠 있고, 음은 점점 고갈된다. 이로 인해 불면, 안면홍조, 구강건조, 심계항진, 식은땀 같은 증상이 나타나며, 중장년 이후에는 면역력 저하와 만성피로로 쉽게 이어진다.

좋은 수면을 위한 한의학적 원칙은 단순하다.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 것, 잠이 바로 오지 않더라도 불을 끄고 누워 몸을 쉬게 할 것, 그리고 밤에는 생각과 자극을 줄이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 자체도 이미 절반의 수면”으로 본다.

잠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행위가 아니다. 다음 날의 기혈과 정신을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치료다. 아무리 좋은 약과 음식, 운동이 있어도 수면의 리듬이 무너지면 그 효과는 반감된다. 오늘 밤, 조금 더 일찍 불을 끄는 것. 그것이 가장 쉽고도 확실한 보약일지 모른다.

※ 이 칼럼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하며, 개별적인 건강 상태에 따라 전문가의 진료와 상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글 미소드림한의원 원장 노종래 (RTC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