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일요일 오전 11시 버나비 시청 주변 한 건물에서 ‘버나비 시의원 후보 선출을 위한 BCA 경선대회’가 있었다. BCA는 Burnaby Citizens Association, 즉 ‘버나비 시민 협회’로 해석할 수 있는 데,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신민주당(NDP; New Democratic Party)와 맥락을 함께하는 지역정당이다.
10월에 있을 버나비 시의원 선거에는 BCA 뿐 아니라 다른 지역정당, 또는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있다. 전 밴쿠버 서울대 동창회장이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버나비 교육의원(School Trustee)을 지낸 장희순 씨가 2014년 무소속으로 버나비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고배를 마신 후로는 버나비 시의원 도전자가 없었다. 지역 시의원으로는 현재 코퀴틀람의 스티브 김이 유일하다.
2014년으로 기억되는 데 나도 한 번 시의원 도전의 꿈을 가져본 적이 있다. 중국계인 W시의 경선연설을 들었는데, 저 정도면 나도 한 번 도전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생각보다 영어가 원활하지 않아 나와 ‘도긴개긴 (별 차이 없다는 뜻)’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선장을 가득 매운 말없는 중국인 후원자들을 보니 역시 선거는 ‘표’로 승부한다는 진실을 깨우쳤다. 버나비 시의 발전을 위한 포부가 뚜렷한 백인 여성을 제치고 당당히 경선에 이기는 현장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원력 없는 나는 애당초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고 잠시 가졌던 꿈을 접었다. 당시만 해도 한인사회는 현지투표에 관심이 없었고, 선거때마다 한인 투표율은 2-3% 정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그러니까 2026년의 BCA 경선장은 확연히 달랐다. 한인들의 모습이 꽤 눈에 띄었다. 20대의 젊은이부터 90이 넘는 노년층까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화하는 한국어를 들으면서 한인사회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비 한국인 후보들이 다가와서 ‘안냐세요(안녕하세요)’라고 자기 선전을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는 한국계로 시의원 후보에 나서려는 박리아 카나리아 회장의 추진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녀는 역시 한국계 주의원인 최병하씨의 보좌관을 하면서 청장년 모임인 카나리아(Canaria)를 활발하게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여장부다. 그녀가 한 괄목할만한 활동은 밴쿠버 주요 20여개 단체장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늘푸른 장년회를 비롯한 각종 단체가 적극 호응했다. 각 단체장들은 그녀를 시의원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회원들에게 BCA 회원가입을 권유했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BC NDP와 BCA 양쪽 모두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 데, 젊지 않은 연령층에게는 상당한 무리였다. 한쪽 만 가입해서 경선투표권을 상실한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아예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 내가 당원가입해 주면 보상으로 무얼 해 줄 건가 바라는 사람. 나 살기 바쁜데 무엇 하러 젊은 사람에게 투자하나 하는 사람들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단체장들은 그 어렵고 힘든 유권자 동원에 전력을 다했다. 마치 내 일처럼.
대망의 경선당일. 만사 제치고 달려온 한인 유권자로 인해 박리아씨는 큰 힘을 얻었고, 당당하게 시의원 출마 후보로 당선되었다. 알 수 없는 감동에 콧등이 시큰했다. 12년전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그녀가 이루었구나. 한인들은 모래알 같이 흩어지는 민족이 아니라 진흙처럼 단단히 뭉쳐지는 민족이구나. 선거에 참여한 한인유권자 모두의 자랑이요, 자부심을 일깨워준 값진 승리였다.
캐나다 선거라는 것이 민족의 숫자보다는 관심의 숫자가 승리를 이끄는데 더 큰 역할을 하는 구나 하고 느꼈다. 10월 시의원 선거에는 투표권을 가진 약 8천명의 버나비 한인들이 모두 투표한다면 그녀는 압도적으로 시의원에 당선될 것이다. 더구나 K-Pop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인후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니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또 누가 알랴. 언젠가는 그녀가 버나비 시장후보에 출마하여 당선된다면 과거 장희순씨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성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약진하는 한인사회의 모습을 보며, 인생선배로서 다짐해 본다.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고,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한인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이제 차세대 정치지망생을 후원하고 양성하며, 한인들의 관심을 주류사회 정치로 돌린다면 머지않아 한국인은 일등시민으로서 타 민족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것이다. 이를 위해 남은 나날을 소중히 사용해야겠다. 이는 청년층, 중장년층, 노년층 등 세대를 아울러 모두가 동참해야 할 일이다. 밴쿠버 한인 이민사 70여년. 과거의 갈등과 분쟁은 이제 세월 속에 묻어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한인사회는 약진에 약진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대를 이어 이 땅에 살아갈 우리 후손들의 번영을 위하여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듯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우리는 열과 성을 다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