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 재검토 앞두고 탈퇴 가능성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또다시 무역 압박에 나섰다. 북미 자유무역 체제의 근간인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의 재검토를 앞두고 협정 갱신 의사가 없다고 밝히면서 향후 북미 무역 질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USMCA에 대해 “갱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협정에 포함된 종료 조항을 언급하며 “바로 그 조항 때문에 USMCA가 훌륭한 협정”이라고 주장했다.
USMCA는 오는 7월 1일 발효 6주년을 맞아 공식 재검토 절차에 들어간다. 협정 자체는 2036년까지 유효하지만, 회원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라도 6개월 전에 통보할 경우 탈퇴할 수 있다.
그는 이날 “USMCA에는 내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장치가 하나 있다. 바로 6년마다 갱신 여부를 검토하도록 한 점”이라며, “내가 이 협정을 갱신할지 여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캐나다나 멕시코로 부터 얻을 게 없다는 기존의 불만을 재차 늘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이 훌륭한 결정이었던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종료할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탈퇴 권한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현재 상대국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자”고 덧붙였다.
현재 CUSMA는 캐나다의 대미 수출 물량 대부분을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로부터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다. 대미 교역액만 약 1조 3,000억 달러에 달하며, 캐나다 전체 수출의 90%가량이 이 협정에 의존하고 있어 캐나다 경제에는 절대적인 생명줄과 같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협정 서명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현대적이고 균형 잡힌 무역 협정”이라고 자찬한 바 있다.
캐나다·멕시코 “협정 연장 원해”… 美 속내는 안갯속
CUSMA 규정에 따르면 각국은 협정을 16년 더 연장하거나, 매년 정례 검토를 진행할 수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는 협정 연장 희망 의사를 공식 표명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조항 개선을 위한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의 통상 책임자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아직 미국의 공식 입장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은 이미 멕시코와 갱신을 위한 공식 협상에 착수했으며, 다음 주와 7월 말 두 차례의 추가 협상 일정을 잡아둔 상태다.
캐나다 역시 이와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주 도미닉 르블랑 통상장관과 재니스 차레트 수석대표가 워싱턴을 방문해 그리어 대표단과 회동했다. 르블랑 장관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미국 측이 오랫동안 제기해 온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캐나다 측의 제안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고 전했다.
만약 미국이 7월 1일 검토 시한까지 협정 갱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3국 간 수정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기존 협정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캐나다의 핵심 목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목재에 대한 관세 폭탄을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어 USTR 대표는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로 캐나다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어느 정도의 관세 부담은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신호를 거듭 보내왔다.
미 정계·농업계는 일제히 “협정 유지해야” 반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 의회와 미국 농업계 리더들이 해당 무역협정의 효용성을 극찬하며 옹호론을 펼치던 와중에 나왔다.
같은 날 열린 미 하원 농업위원회 청문회에서 발표자들은 현 행정부를 향해 협정을 반드시 연장해야 하며, 협정을 파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일제히 경고했다.
농업위원회 위원장인 글렌 톰슨 공화당 의원은 “이 무역협정은 미국의 농민, 목축업자, 임업인, 농업기업 뿐만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과 경제 전반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고 강조했다.
미국 최대 수출 작물인 대두(콩) 농가를 대변하는 미국대두협회의 제이미 바이어 이사 역시 청문회에 출석해 전면적인 협정 연장을 촉구했다. 바이어 이사는 “USMCA는 미국 대두 산업에 필수적인 협정”이라며 “시장의 혼란이나 추가적인 불확실성을 키우지 말고 현 상태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증언했다.
전문가 “트럼프 특유의 공포 마케팅… 협정 파기 아닌 협상 전술”
캐나다 내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속에 숨은 진짜 의도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오타와 소재 로펌 맥밀란의 국제통상 전문 윌리엄 펠레린 변호사는 트럼프의 발언이 단지 ’16년 일괄 연장’을 안 하겠다는 의미라면 캐나다가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 대통령이 극단적인 탈퇴 조항을 실제로 발동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 이 협정의 잔여 수명은 아직 10년이나 남아 있다”고 짚었다.
이어 펠레린 변호사는 “공개석상에서 거친 언사로 압박하는 것은 트럼프 특유의 협상 스타일”이라며, 이번에도 협정 탈퇴라는 ‘핵폭탄급 카드’를 흔들며 기선 제압에 나선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마크 카니 총리는 이 날 주수상들과 화상 회의를 가졌으며, 이 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발언 직후에 진행되었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총리가 우려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더그 포드 온주 총리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답했다. 포드 총리는 주정부 청사를 방문한 조시 샤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이런 종류의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며 “우리는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에 계속 집중해야 한다”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