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6일 TuesdayContact Us

회귀(回歸) / 심현숙

2026-06-16 14:25:56

교통사고 후 3년 만에 이층에 있는 침실로 돌아왔다. 재활원에서 퇴원하면서부터 현관 바로 옆에 있는 서재를 침실로 사용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2층에 있는 안방으로 올라가야지 하던 차 침대에 사용했던 전기매트가 고장 나는 바람에 시기가 좀 앞당겨졌다.
연어가 태어난 강에서 치어로 1년간 살다가 바다로 나가 성장한 후 산란기가 되어 3-4년 만에 모천으로 회귀하듯 나도 그리 했다. “아- , 드디어 돌아왔네.” 나는 탄성을 지르며 감격했다. 커튼을 두 손으로 확 열었다. 남쪽으로 난 통 유리창에 봄 햇살이 눈부셨다. 나의 귀환을 축하해주듯 온 방이 봄볕으로 가득했다. 마음속에서는 기쁨과 감사가 용솟음쳤다.
그동안 이날을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내 재활을 맡았던 물리치료사(physiotherapist)의 최종 목표 중 하나가 2층 침실 복귀였다. 그녀는 운동치료사(Kinesiologist)와 번갈아 가며 일주일에 2회씩 재활훈련을 시켰다. 어느 정도 기본 훈련을 마친 후 2층으로 오르는 층계 연습이 시작되었다. 재활치료사들의 시범에 따라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은 층계 난간을 붙잡고 발을 하나씩 층계에 올려놓는 훈련이다. 그런데 생각같이 되질 않았다. 층계를 오르기 위해 팔 힘에 의지하여 안간힘을 써보지만, 억지로 하다 보니 무릎이 붓고 통증이 왔다. 이러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30년 가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던 층계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많은 장애인이 나와 같은 벽 앞에 주저앉았을 망막함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절여 오며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 캐필라노강 가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건 연어가 모천으로 돌아가기 위해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살에 몸을 던져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던 광경이었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 작은 몸을 얼마나 흔들어 대던지 짠하기까지 했다.
나도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자 위에 비옷 하나 뒤집어쓰고 체육관으로, 수영장으로 재활운동을 하기 위해 주 4일을 나간다.
처음에는 어두운 안개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 미래가 보이지 않고 마음이 불안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수면 부족으로 몸 상태가 부실할 때는 더 갈등이 왔다. ‘오늘은 따뜻한 집에서 음악이나 들을까, 책이나 볼까’하는 유혹들이 나를 흔들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일어서는 것은 주저앉지 않으려는 의지 때문이다. 특히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이 나를 무섭게 채찍질했다.
연어도 북태평양과 알래스카 해역까지 갔다가 수만 킬로미터를 헤엄쳐 돌아오는 긴 여정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는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죽음도 보았을 것이다. 산란을 위해 자기가 태어난 강가에 이르렀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살을 이기지 못해 툭 떨어졌다가 온 힘을 다해 다시 도전하는 모습은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0.4%의 낮은 생존율을 뚫고 기적적으로 돌아와 산란 후 체력이 고갈되어 죽고 만다. 보잘것없는 물고기 한 마리일지라도, 연어의 삶은 위대하다. 나는 재활하는 과정에서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연어의 강인함을 떠올리곤 했다.
지금도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를 한발씩 척척 능숙하게 올라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니 예전처럼 층계에 엎드려 두 손을 짚고 네발 동물처럼 오르지는 않는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 나도 강한 집념과 의지가 있었기에 안방 창을 통하여 저 멀리 흰 눈에 싸인 베이커 마운틴의 웅장한 자태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다.
나에게 회귀는 장애를 이겨내야겠다는 의지와 그 의지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준 용기의 결정체이다.
살면서 거친 폭풍우를 당했을 때 두려움에 웅크리지 말고, 앞을 보고 한 걸음씩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면 어느새 비는 그치고 햇빛 너머로 무지개가 뜨지 않겠는가.

“성공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고,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 나가는 용기이다.”
(윈스턴 S. 처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