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바라보는 오늘의 시선은 대체로 무겁다. 남북관계는 장기간 경색 국면에 머물러 있고, 북한은 핵·미사일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북·러 협력은 새로운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북·중 관계 역시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다. 한반도를둘러싼 안보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고 불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통일을 먼 미래의 이야기로 여기거나, 더 이상 현실적인 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남북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고, 국제정세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으며, 통일이라는 단어조차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시대일수록 북한을 연구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며, 통일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통일은 단순한 희망이나 구호가 아니라 오랜 준비와 깊은 이해, 그리고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역사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북한학 석사과정에서 북한외교와 한반도 정세를 공부하고 있다.학문적 여정 속에서 큰 행운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일이다. 나는 북한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인 박원곤 교수님과 북한경제 및 남북경협 연구자이신 김규철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북한과 통일 문제를 배우고 있다. 두 교수님의 강의와 토론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북한을 이해한다는 것이 단순히 북한이라는 국가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분단체제의 역사와 국제정치의 역학, 동북아 안보질서의 변화, 그리고 미래 세대가 살아갈 한반도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다.
북한학은 흔히 특정 지역을 연구하는 학문으로만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넓은 영역을 다룬다. 북한의 정치와 경제, 외교와 군사, 사회와 문화는 물론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을 포함한 국제정치 환경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최근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외교는 더욱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은 단순히 중국에 의존하는 국가가 아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생존을 위한 외교를 넘어 자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역시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과거의 냉전적 사고만으로는 오늘의 북한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의 행동을 무조건 합리화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선택과 전략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올바른 정책은 정확한 이해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일은 여전히 가능한 미래일까.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가 과거에 상상했던 방식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통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되는 사회적 과정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는 일, 북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 탈북민들의 경험을 존중하는 일, 청소년들에게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교육하는 일 모두가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특히 해외 한인사회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밴쿠버와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해외 동포들은 한반도를 보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더 이상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안보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며, 경제와 교육의 문제이고, 미래 세대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 역시 캐나다에서 교육사업을 운영하며 수많은 청소년과 학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분단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은 더 이상 절박한 현실이 아니라 교과서 속 개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육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통일교육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입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체제를 이해하고, 평화의 가치를 배우며, 미래 세대가 한반도의 미래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 시민교육의 과정이다.
최근 북한학을 공부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통일의 가능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과 연구소, 정부기관과 민간단체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 주민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들, 북한 경제를 분석하는 연구자들, 외교와 안보를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통일 이후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의 노력은 당장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미래의 한반도를 준비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 또한 북한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통일 담론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현실은 냉정하게 바라보되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사회의 변화 가능성과 주민들의 삶,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남북관계의 미래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몇 해 전 밴쿠버에서 탈북민 출신 이성주 연구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핵과 미사일, 체제와 이념을 넘어 결국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나는 「꽃제비들의 노래」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쓰며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과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찾게 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꽃제비는 북한의 정치체제를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다. 굶주림과 생존의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아이들이며, 분단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의 동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북한이라는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북한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북한을 연구한다는 것은 체제를 연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 또한 결국 사람을 향한 일이다.
한반도의 내일은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미래는 언제나 준비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분단 역시 영원하지 않았고 변화는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의 연구와 교육, 그리고 작은 실천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통일은 오늘 당장 이루어질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을 연구하는 사람들, 북한을 이해하려는 사람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조용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한반도의 미래를 밝히는 작은 희망이라고 확신한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통일을 말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통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고, 북한외교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를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통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다. 그리고 그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연구실에서, 교실에서, 시민사회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의 한인사회에서 말이다. 언젠가 우리는 분단선 너머의 사람들을 낯선 타인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역사를 공유해 온 동포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을 준비하는 마음만은 오늘도 이어져야 한다.
나는 여전히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꽃제비들의 노래가 멈추지 않았듯, 통일을 향한 우리의 희망 또한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불쌍한 고아랍니다
내 죽어 산천에 간대도 그 누가 나를
묻어주리오 덮어주리오
술 석잔 부어주리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불쌍한 고아랍니다
내 죽어 산천에 간대도 그 누가 나를
묻어주리오 덮어주리오
술 석잔 부어주리오’
-오늘도 우리 곁에 닿지 못한 목소리
글쓴이 | 제니퍼 노
교육 컨설턴트&JNJ 에듀케이션 원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