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질환 악화로 안락사 결정
25년 함께한 ‘쿨라’ 홀로 남아
밴쿠버의 대표 관광명소인 그라우스 마운틴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상징이자 많은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받아온 회색곰 ‘그라인더(Grinder)’가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라우스 마운틴은 그라인더가 회복이 불가능한 퇴행성 척추 질환을 앓아온 끝에 삶의 질이 크게 악화되면서 수의사와 전문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지난 1일 안락사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2001년 BC주 인버미어 인근에서 고아가 된 새끼 곰으로 구조된 그라인더는 같은 해 구조된 ‘쿨라(Coola)’와 함께 그라우스 마운틴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옮겨졌다. 이후 두 마리는 25년 가까이 함께 생활하며 보호구역의 대표 동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라인더는 20년 넘게 수 백만 명의 방문객들에게 캐나다의 상징인 회색곰을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를 제공했으며, 야생동물 보호와 서식지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온화한 성격과 거대한 체구로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라우스 마운틴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그라우스 마운틴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수의사이자 책임자인 켄 맥퀴스턴 박사는 그라인더가 봄철 겨울잠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으로 몸이 다소 뻣뻣해진 것을 감지했다고 밝혔다.
“최근 몇 주 동안은 왼쪽 뒷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하더니, 지난주에는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맥퀴스턴 박사의 설명이다.
다리 절림은 결국 뒷다리 마비로 이어졌고, 그라인더는 이동하기 위해 앞다리로 몸을 이끌어야만 했다. 수의사들은 그라인더가 늙은 곰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척추간판 질환(디스크)을 앓았으며, 이로 인해 척추에 칼슘이 축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맥퀴스턴 박사는 “소염제와 마비 치료제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그 어떤 약물도 효과가 없었다”고 전했다.
회복 가능성이 없고 최소한의 삶의 질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그라인더를 안락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라인더는 1일 아침 자신이 겨울잠을 자던 굴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한 부검이 진행될 예정이다.
회색곰은 야생에서 보통 20~30년 정도 살지만, 대부분은 그보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라인더는 2001년 인버미어 지역에서 어미를 잃은 아기 곰으로 발견된 후 그라우스 마운틴으로 옮겨졌다. 3주 후, 벨라쿨라에서 구조된 또 다른 고아 곰 ‘쿨라’가 합류했다.
이후 두 곰은 5.5에이커(약 6,700평) 규모의 보호구역 내에서 서로 150야드(약 137m) 이상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매년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이들의 모습은 전 세계 팬들이 웹 캠을 통해 지켜보는 하나의 연례행사이자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맥퀴스턴 박사는 활달하고 호기심 많은 그라인더가 조용한 쿨라를 이끄는 자연스러운 리더였다고 회상했다. 겨울잠이 끝난 뒤 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쪽은 늘 그라인더였고, 그 뒤를 쿨라가 따랐다. 그 정기적인 패턴이 어찌나 확고했던지 맥퀴스턴 박사는 1,000 대 1의 배당률을 걸어도 좋을 만큼 그라인더가 먼저 나올 것을 확신하곤 했다.
두 곰은 서로 장난치며 구르고 밀치는가 하면, 서로를 핥고 애무해 주는 따뜻한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맥퀴스턴 박사는 이들의 우정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회색곰의 생태 특성을 넘어섰다고 말한다.
“흔히 회색곰은 독고다이라고 생각하지만, 야생에서는 먹이와 짝짓기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순수하게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방문객들 역시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그라인더는 쿨라와 함께 생애 마지막이 된 겨울잠에 들었다. 당시 그라인더의 체중은 440kg, 쿨라는 465kg이었다. 두 곰은 144일간의 겨울잠을 마치고 지난 4월 함께 세상을 향해 나왔다.
현재 쿨라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두 곰의 깊은 유대감을 잘 아는 보호구역 직원들은 쿨라의 심리 상태를 우려하고 있다. 쿨라 역시 그라인더가 연못 수영이나 식사에 함께하지 못하고 굴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점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높다.
그라인더가 숨진 후, 보호구역 측은 쿨라가 오랜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세계적 수준의 동물원들이 동반자를 잃은 동물에게 제공하는 동물복지 절차다. 쿨라는 굴 안에서 약 15분 동안 그라인더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숲으로 나가 휴식을 취했다.
맥퀴스턴 박사는 “쿨라가 친구를 많이 그리워할 것으로 예상되며, 상태를 면밀히 살필 예정”이라고 전했다.
보호구역 측은 어미를 잃은 새로운 아기 곰을 수용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으나, 성체가 된 쿨라가 다른 곰과 같은 서식지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가능성이 낮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