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97년 브로드웨이·그랜빌 거리 장식한 명물
‘밴쿠버의 네온 황금기’ 재조명
한 때 밴쿠버의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아리스토크래틱(Aristocratic)’ 레스토랑의 대형 네온사인이 다시 불을 밝히며 시민들에게 옛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1960년부터 1997년까지 브로드웨이와 그랜빌 스트리트 교차로를 장식했던 이 네온사인은 수십 년간 밴쿠버 시민들에게 친숙한 도시의 상징물이었다.
당시 밴쿠버는 약 1만9,000개의 네온사인이 거리를 밝히던 ‘네온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화려한 광고 간판은 단순한 상업시설의 표지판을 넘어 도시의 독특한 야경과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아리스토크래틱의 네온사인은 선명한 빨간색과 파란색 조명, 네 가지 서로 다른 서체를 조합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특히 실크해트와 외알안경을 착용한 레스토랑의 마스코트 ‘리스티(Risty)’가 그려진 장식은 시민들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해당 부지가 매각되면서 식당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챕터스 서점이 들어섰다. 서점 측은 매장 내부에 복제품 간판을 만들었지만 크기가 훨씬 작았다. 밴쿠버 박물관이 원본 간판을 수거해 보존했으나, 높이 3미터, 길이 3.3미터, 두께 0.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 탓에 박물관 출입구를 통과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박물관 외벽에 잠시 걸렸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창고에 보관되어 왔다.
그러던 리스티 네온사인이 마침내 다시 살아났다. 지난주 옛 다운타운 우체국 건물인 ‘더 포스트’의 네온 전시회에서 화려한 불빛을 되찾은 것이다. 박물관 측은 대형 네온 소장품 중 5점을 포스트 건물에서 열리는 새 전시회 ‘Lit! Neons of Vancouver’에 대여했다. 던스무어 스트리트 366번지 입구의 드빌 커피 맞은편에 설치된 간판들은 거리를 향한 벽면을 따라 일렬로 배치됐다. 주간에는 건물 내부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야간에 건물이 닫힌 후에도 거리에서 유리창 너머로 조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아리스토크래틱 간판 외에도 아부투스 스트리트와 웨스트 16th 애비뉴에 있던 옛 리지 극장의 대형 ‘R’ 자 간판, 옛 팜 유제품 브랜드의 빨간색과 초록색 ‘팜 아이스크림’ 간판, 메인 스트리트 아메리칸 호텔의 빨간색 네온 간판, 1950년대 체인점이었던 ‘더 쿠키 자’의 감각적인 흰색 네온 간판이 포함됐다.
또한 1930년부터 1974년까지 메인 스트리트 1600번지에 서 있던 ‘용접 및 엔지니어링’ 간판의 2001년 복제품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작 중 유일하게 움직이는 이 간판은 용접 마스크를 쓴 용접공이 빨간 용접 토치와 초록 용접봉을 들고 작업하며 파란 네온 불꽃을 깜빡이는 모습을 연출한다.
네온 전문가 존 애트킨은 “이번 전시가 시민들에게 네온 불빛의 진수를 아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간판들이 까마득한 높이가 아닌 눈높이에 설치되어 빛의 잔상과 색상의 레이어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거리에서 발휘해야 할 본연의 매력을 완벽히 발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옛 리지 극장이 있던 복합 단지에는 현재 복제품 간판이 걸려 있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원본 대형 ‘R’ 자 간판은 그동안 밴쿠버 박물관의 대형 유물 창고인 14호 동에 보관되어 왔다. 간판을 구성하는 도장된 금속 표면은 수십 년간 야외에 노출되었던 흔적을 풍기지만, 박물관 측은 인위적인 수리보다는 세월이 남긴 묵직한 질감을 그대로 보존하는 쪽을 택했다. 빨간 네온관과 투명 전구로 글자를 형상화한 이 간판은 1950년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2013년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철거됐다. 나머지 글자판들은 여전히 창고에 남아있다.
전시의 단연 주인공은 아리스토크래틱 간판이다. 한때 12개 매장을 거느린 체인점이었던 이 식당은 시대별로 다양한 네온 간판을 선보였다. 1928년 체인이 시작된 후 1938년에 문을 연 브로드웨이-그랜빌 지점은 가장 마지막까지 영업을 이어간 곳이다. 1951년 사진에는 전혀 다른 디자인의 간판이 찍혀 있으며, 이번에 전시된 간판은 1960년에 제작된 것이다.
지나가다 간판을 목격한 시민 카렌 자작은 네온쇼를 통한 간판의 부활이 매우 환상적이라며, 첫 데이트 장소 중 하나가 아리스토크래틱이었다고 회상했다.
애트킨 전문가 역시 밋밋했을 벽면을 따라 간판들이 충분한 공간감을 확보한 채 설치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공간에 명확한 존재감을 부여함은 물론, 방문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간판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환경이 조성됐다는 반응이다.
이번 네온 전시 프로젝트는 2019년부터 추진됐다. 당초에는 오크리지 파크 쇼핑몰에 들어선 타임아웃 마켓과 같은 푸드코트 내부에 더 많은 간판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푸드코트 조성 작업이 무산되면서 현재의 전시 형태로 최종 확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