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지출 1,420억 달러 확대… 세수 증가에도 2026~27년 적자 623억 달러 전망
GST 환급 확대·노숙인 지원 112억 달러· 전력망 확충 500억 달러
미 관세 충격 속 투자 활성화와 국가 경쟁력 강화에 초점
마크 카니 총리가 두 번째 연방 예산안을 통해 생활비 부담 완화와 경제 성장, 국가 경제 주권 강화를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자에 나섰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캐나다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정부는 기업 투자 촉진과 서민 지원을 동시에 추진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선택했다.
이번 예산안은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정과 대외 경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경쟁력 확보를 양대 목표로 제시했다. 주요 내용에는 GST 환급 확대, 저소득 근로자 지원, 기업 투자 세제 혜택, 노숙인 주거 지원, 전력망 확충, 문화산업 육성 등이 포함됐다.
특히 정부는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국내 투자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에너지와 핵심 산업의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데 상당한 재원을 배정했다.
이번 예산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다. 연방정부는 지난봄 경제 전망에서 제시했던 계획보다 향후 5년간 약 1,420억 달러를 추가 지출할 예정이다. 다만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 가스 산업의 호황과 예상보다 양호한 경제 실적에 힘입어 같은 기간 세수도 약 1,583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추가 세수가 지출 증가분을 웃돌지만 연방 재정 적자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6~27 회계연도 적자를 623억 달러로 예상했으며, 이후에도 적자 규모가 완만하게 줄어드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카니 정부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미국의 무역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급격한 지출 삭감보다는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랑수아필립 샹파뉴 연방 재무장관은 “지금은 중대한 시기이며, 국민과 정부 모두 이를 잘 알고 있다”며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야심 찬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향후 경제 성장률이 지출 증가율을 웃돌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약 1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부채의 이자 비용은 2026~27년 602억 달러에서 2030~31년 855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보건 이전지출과 균등화 교부금 등 주요 정부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예산을 웃도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재정 전문가들은 캐나다의 국가 신용등급과 경제 성장 전망을 고려하면 재정 건전성이 당장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재정연구민주주의연구소의 사히르 칸 부소장은 정부의 새로운 정책 상당수가 소득 수준과 지원 필요성을 고려해 설계됐다며, 캐나다의 전반적인 재정 지속 가능성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GST 환급 50% 추가 지급… 4인 가족 최대 2,570달러 지원
정부는 식료품과 휘발유 등 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를 지원하기 위해 기존 GST 환급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새롭게 명칭을 변경한 ‘식료품 및 필수품 지원금(Groceries and Essentials Benefit)’에는 기존 환급액의 50%를 일회성으로 추가 지급하는 조치가 포함됐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자격을 충족하는 4인 가족은 올해 최대 2,570달러의 현금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약 1,200만 명이 혜택 대상에 포함된다.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지원도 확대된다. 연방정부는 기존 근로자 지원 제도를 개편한 ‘빌드 캐나다 근로자 지원금(Build Canada Workers Benefit)’의 소득 기준을 완화해 더 많은 저소득 가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을 위한 지원금을 확대하고, 북부 및 외딴 지역의 높은 식료품 가격을 완화하기 위해 ‘뉴트리션 노스(Nutrition North)’ 프로그램에도 추가 재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들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임금 증가와 생활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 투자 세제 혜택에 360억 달러… 경제 성장 촉진
카니 정부는 미국의 고율 관세가 캐나다 주요 제조업과 산업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대규모 세제 지원책도 마련했다.
대표적인 정책은 ‘생산성 메가 공제(Productivity Mega-Deduction)’다. 이 제도는 기업이 신규 공장을 건설하거나 기계·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구매하고 철도·송유관 등 생산 기반시설에 투자할 경우 관련 비용을 즉시 세금 계산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폭넓게 적용되는 이 조치에는 향후 5년간 약 360억 달러의 재정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번 세제 혜택이 캐나다의 기업 투자 환경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생산성 메가 공제만으로도 GDP 성장률이 약 0.5%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 전체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약 2%라는 점에서 상당한 효과를 예상하는 셈이다.
정부는 또한 캐나다 기업들이 미국으로 이전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캐나다 성장 인센티브(Canada Growth Incentive)’를 도입한다.
기업가가 자산 매각으로 얻은 이익을 캐나다 기업에 재투자할 경우 최대 1,500만 달러의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는 방식이다.
이는 특히 기술 분야의 신생기업들이 성장 과정에서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고, 국내에서 사업을 확장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예산안에는 정부 주도의 대형 투자기구인 ‘캐나다 스트롱 펀드(Canada Strong Fund)’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도 포함됐다. 정부가 관리하는 이 국부펀드는 초기 약 250억 달러를 투입해 주요 산업 프로젝트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할 예정이다.
민간 자본만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대규모 사업에 정부가 직접 참여함으로써 국내 투자와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반 국민도 ‘캐나다 스트롱 노트(Canada Strong Notes)’를 통해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 상품은 저축채권과 유사한 형태로, 투자 원금이 보호되는 가운데 매년 이자를 지급하고 펀드의 투자 성과에 따라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에너지 인프라 확대도 이번 예산안의 주요 사업이다. 정부는 향후 여러 해에 걸쳐 총 500억 달러를 투입해 캐나다 전력망을 확충할 계획이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송전 및 전력 공급 능력을 대폭 확대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간 경제적 연결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이번 투자를 통해 전력망의 공급 능력을 사실상 두 배로 늘리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력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지역에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전력 인프라 건설 과정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제조업과 첨단산업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카니 총리가 강조해 온 국가적 인프라 사업 구상의 핵심 축으로 전력망 확대가 자리 잡은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캐나다 주요 도시에서 노숙 문제가 심화된 가운데, 연방정부는 향후 10년간 노숙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에 112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지원금 상당 부분은 임시 거주시설과 지원주택 건설에 사용될 예정이다. 지원주택은 거주 공간과 함께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해 노숙인들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는 시설이다.
이와 별도로 약물 의존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과 기반시설 건설에도 20억 달러를 배정했다.
문화·예술 투자 확대… 캐나다 정체성 강화
카니 정부는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도 상당한 예산을 배정했다. 정부는 예술가와 작가, 역사학자, 박물관 관계자, 언론 및 문화산업 종사자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캐나다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 캐나다 건국 160주년을 앞두고 국민들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국가적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미국과의 무역 갈등 속에서 경제적 독립성과 함께 캐나다의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해 온 카니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예산안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 높은 생활비, 기업 투자 부진 등 복합적인 경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카니 정부의 중장기 경제 전략을 담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재정 투자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가계 부담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생산성과 에너지 기반을 강화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향후 5년간 막대한 재정 지출이 이어지고 국가채무 이자 비용도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투자 확대가 실제 성장과 세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정책과 국제 경제 상황에 따라 캐나다의 성장 전망이 달라질 수 있어 정부가 제시한 재정 계획의 실현 가능성도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