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과 주말을 함께 보낸다. 교통사고로 망가진 나의 다리와 몸을 치료하기 위해 딸은 매번 나를 한의원에 데려다준다. 치료가 끝나면 우리는 함께 한국식품점이나 코스코에 가서 장을 본다. 하지만 이 달콤한 시간도 잠시다. 월요일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딸은, 일요일 밤이 되면 간병인(Care giver)과 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싸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밀물이 빠져나가듯 딸이 떠나고 나면, 집안은 이내 적막해지고 나는 다시 철저히 혼자가 된다.
지난 수요일은 마침 국경일(National Truth and Reconciliation)이어서 하루 더 공휴일을 갖게 되었다. 오랜만에 생긴 여유에 딸과 함께 써리 밸리 뷰(Surrey Valley View)에 있는 남편의 산소를 찾았다. 딸은 수건에 물을 묻혀 아빠의 비석을 정성스레 닦고 꽃을 장식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요히 감사기도 드렸다.
딸의 기도가 끝나고 나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웬일인지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님, 남편이 떠난 지 6년 반이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보고 싶음과 그리움은 이제 그만 거두어 가 주세요. 그리고 저의 아픈 다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불쌍한 우리 딸 은경이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다 보니 어느새 기도가 끝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아빠가 돌아가실 때도 울지 않더니 왜 이리 울어?”하며 슬며시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사실 나는 오랜 동안 울 수가 없었다.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편을 16년 동안 돌보면서, ‘절대 울지 말자’는 다짐은 무너지려는 나를 붙잡아주는 유일한 슬로건이었다. 그렇게 매 순간 울음을 참고 살다보니, 이제는 울고 싶을 때조차 어떻게 우는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있었다. 슬픔을 억누르며 단단해져야만 했던 그 세월 속에서, 나는 어쩌면 눈물과 함께 나의 수많은 오늘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면 혼자 산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늘 가족들이나 누군가와 더불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막상 이제 혼자의 삶을 살아보니 편하기도 하면서, 내 곁에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힘겹게 다가온다. 외로움 때문이다. 자랄 때는 형제들이 많아 가족이 단출한 남편이 좋아 보였는데,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가족이 부럽다. 그래서인지 나는 매일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섯 형제들과 친척들 그리고 죽마고우 친구들까지 그리워하며 역이민을 꿈꾸고 산다.
밴쿠버에서 37년을 살아온 내가 삶의 터전을 다시 옮긴다는 것은 묘목이 아닌 노목을 이식하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식 중 한명이라도 함께 가자고 나선다면 망설이지 않겠는데, 나 혼자서는 용기가 안 난다.
말이 역이민이지, 이곳에서도 내 주변을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3년 반 동안 투병하면서 에너지가 고갈되다보니 의욕과 힘이 없다. 매일 그날이 그날이듯,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 그리고 공상으로 소중한 오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자신을 본다. 언제 이리도 빨리 팔순이 되어 가고 있는지, 마음은 아직도 풀꽃반지를 끼고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의 소녀인데 말이다.
나는 결혼 후 한번이라도 내 자신을 의식하며 살아봤는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온 내 삶 가운데 주인공은 누구였는가. 당연히 가족들이고 나는 조연이었다. 가족을 위한 헌신은 당연한 것이었고, 더 잘 해주지 못해 항상 목말라있는 사람처럼 안달했다. 비즈니스에서도, 가정교육에서도, 남편의 간병까지도 어떤 성과가 눈에 보여야 안심이 되는, 그렇게 늘 긴장을 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지금 내게 찾아온 자유의 시간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의 시간인 양 엉거주춤하며 안정을 못하는 것도 나를 위해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나카무라 쓰네코>는 “잘 하려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삶이 오히려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삶이죠. 힘을 빼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면서, 주어진 데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삶을 잘 살아가는 태도가 아닐까합니다.”라고 한다
그렇다. 삶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제대로 인식해 ‘더함’이 아닌 ’덜어냄‘을 하나씩 배워야겠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져서 괴롭다면 뭔가를 보탤 것이 아니라, ‘이거면 됐어’하고 수긍해보자. 운동하러 나가기가 싫을 때는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하고 집안에서라도 걸어보자. 이제 내 나이에 재활한다고 아픈 다리가 얼마나 좋아지겠는가.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면 등산용 스틱 없이도 걸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 살아가야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건 내 인생’이라고 과감하게 받아들이자고, 나를 다독이고 칭찬해본다. 이제는 다가올 앞날이 아니라 지금 머무는 시간 속에서 숨 쉬며, 소중한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살아내겠다고 나에게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