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인파로 가득 차 있다.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들로. 누군가는 벅찬 설렘을 지긋이 누르고 누군가는 짙은 그리움을 그득 담아서.
단 한 사람도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공항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가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뇌세포가 있는 대로 활성화되어 있는 사람들, 시간을 팽팽하게 당겨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쓰는 사람들이 잠시 스쳐가는 곳이다. 마치 우주정거장처럼.
그 중 올림픽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고 돌아온 듯 빛나는 얼굴을 가진 이들이 눈에 띈다. 알록달록 아웃도어를 빼입고, 신상 캐리어를 끌고 몰려가는 초로의 무리. 몇 해 묻은 계를 타서 동남아여행이라도 나선 길인가. 자식이 준 용돈으로 부푼 허리 섹을 꼭 움켜쥐고 있다. 비록 두리번거리지는 않지만 아무나 붙잡고 자식 자랑을 하픈 티가 역력하다. 그러나 공항은 논두렁이 아니다. 경운기를 타고 가다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자고 붙잡거나 행선지를 묻고 아무리 빙 돌아가는 길이라도 태워다 주는, 딱히 목적지도 없고 또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그들은 그걸 아주 잘 알기에 결코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구석지 벤치에 조각상처럼 앉아있는 신사가 있다. 더불버튼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있다. 차림새로 보면 누구보다도 성공한 사업가 풍모다. 그러나 어디에도 향하지 않은, 공허한 시선과 얼어붙은 듯한 그의 몸에서는 허무의 연무(煙霧)가 피어오른다. 외딴 행성의, 금방이라도 사위어갈 듯한 백색 왜성( white dwarf) 같다.
누군가를 찾는 방송이 나오지만 소음에 묻힌다. 그가 일어난다. 초원의 기린처럼 키가 껑충하고 호리호리하다. 길게 줄서있는 군중을 피해 서너 명 서있는 VIP 라인에 선다. 작은 오피스 캐리어 하나를 가진 그가 쉽게 세큐리티를 통과한다. 그리고 그는 한적한 대기석에 앉아 다시 희미한 왜성이 된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깜박일런지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다. 그는 그 무관심을, 완벽한 고독을 감내한다.
“잠시 후 10시 5분 출발하는 스위스 에어라인 취리히 행 탑승을 시작하오니 탑승권과 여권을 준비하여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자 그가 일어섰다. 그리고 재빠르게 탑승 대기줄에 선다. 여지껏 보지 못한 민첩함이다. 탑승 직원이 그의 탑승권과 여권을 살피는 동안에 주변을 경계한다. 사뭇 떨면서. 직원이 휠체어나 응급팀이 필요한가를 묻자 고개를 젓는다. 탑승권과 여권을 빼앗듯이 트랩으로 내닫는 그의 뒷모습을 직원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금방 탑승한 승객의 이름을 컴퓨터에서 확인하고 되뇌었다. 그림자라도 떨구듯 서둘러 탑승한 그가 털석 자리에 앉는다. 몸떨림은 여전하다. 그의 꼭 감은 눈이 탑승 직전 몰려오던 검은 양복들과 익숙한 실루엣을 연속 재생했다.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킨다. 완전히 탈진한 그의 몸에서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떨림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인다. 그러다 딱 멈춘다. 승객들이 캡슐 모양의 작은 창과 널따란 공항 유리창을 통해 검은 양복들과 유니폼 입은 직원들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본다. 무슨 일이래. 탑승구 근처에서 일어나는 소요와 소음이 승객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그의 귀에 꽂힌다. 그가 안절부절 못한다.
금방이라도 검은 양복들이 비행기 출입문으로 뛰어들 듯하다. 대신 기내 승무원이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건다. “고민우 선생님이지요?“ 그가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따님이.. 선생님을… 찾고… 있어요.“ 승무원의 입에서 떨어지는 어절 마디마디가 핏방울이라도 된 양 그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진다. “ 아니오. 난 절대로 이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요. 난 반드시 취리히에 가야한단 말이오. 그리고 이것은 오롯이 내 자유의지의 선택이오.” 선언하듯 말하는 그의 입술에 피멍이 맺혀있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리 전해 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이 떠났다. 승객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두 거미손이 좌석의 팔걸이를 꼭 부여잡고 있다. 그 시선들이, 건물 안의 검은 양복쟁이들이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저항의 의사였다.
한 시간을 지체하던 비행기가 스르르 할주로를 미끄러져 간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고 기내는 평온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심장이 풍랑에 뒤뚱거리는 낡은 어선처럼 울렁거린다. 그의 변화를 눈치 챈 승무원이 다가와 카모마일 차 한 잔을 건넨다. 따스한 손길이며 그윽한 눈길이 그의 딸을 닮았다. 공항 건물에 홀로 남겨져 있을 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아빠가 그렇게 이기적인 분이셨어요? 어떻게 저하고 상의 한 마디 없이 그런 결정을… .” 딸이 그를 맞바라보며 항의를 했다. 평소의 이성적인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상의를 하지 않니? 결심을 한 건 오래되었지만 때가 아닌 것 같아서… . 이젠 때가 된 것 같다. 너도 네 엄마 떠날 때 보았잖니? 인격을 잃어가는 네 엄마를. 네게 또 그 고역을 겪게 할 순 없어.” “그걸 고역이라고 표현하시는 거예요? 가족이 가족을 돌보는 건 당연한 거죠. 아빠가 절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셨잖아요?” “그래서 싫다. 부모한테 입은 은혜를 *안갚음 받는 것도 싫고, 사랑하는 딸의 삶을 짓밟는 것도.. .” ”그게 무슨… . “ 말을 잇지 못하고 무너지는 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딸의 절망과 원망이 손끝에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는 그의 의도대로 삶을 운영했다. 외교관의 삶을 살았던 것도, 취리히에서 유난히 웃는 모습이아름답던 그녀와 결혼한 것도, 그녀를 닮은 예쁜 딸을 기르며 참 행복했다. 모든 게 그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고, 그의 삶이 그렇게, 찬란하게 마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변수가 터졌다. 아내의 암 발병, 이후 찾아온 치매. 10년의 간병이라는 현실 앞에 사랑과 연민은 허상이고 위선이었다. 다시는 그 올가미를 쓰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자마자 그에게 췌장암 말기 진단이 내려졌다. 그때 결심했다. 그가 의도한 대로 삶을 운영했듯 마지막도 자신이 콘트롤하겠다고.
스위스 존엄사 자원 단체인 디그니타스에 자신의 의향과 정보를 보냈다. 까다롭고 긴 절차 끝에 승인을 받은 다음 날, 그가 짐을 꾸렸다. 남은 재산 모두를 암센터에 기부하겠다는 서류에 사인 하나로 간단하게 뒷일이 정리되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장면 하나가 남아있다. 바로 딸에게 먼 여행의 출발을 알리는 일. 편지를 썼다. 가급적 드라이하게. 감정에 치우치는 문맥이라면 이성적인 딸이라 해도 휘둘릴 터이니. 다행히 딸이 세미나 참석을 한단다. 딸이 다녀오면 그가 보낸 편지를 우체통에서 꺼내보고 하루쯤, 아니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른다. 사흘쯤 통곡하다 차츰 슬픔의 깊이가 얕아져 한달 후쯤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떠났었다. 한데… .
비행기가 창공을 날다 성층권 위로 솟구쳐 오른다. 초록 들판과 꼬막만한 빌딩들이 하얀 구름솜 아래 파묻혔다.
그렇게, 그가 떠났다.
*안갚음: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 반포(反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