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시작해 스스로 유니폼 마련까지
수 년간 템플턴 시니어 여학생 축구팀은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어 왔다. 단지 겉모습만 최상위권이 아니었다. 8학년 여학생들이 친구들을 직접 포섭해 밑바닥부터 일궈낸 이 밴쿠버 동부의 이 팀은 이제 학교를 대표하는 걸출한 스포츠팀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밴쿠버 중고교체육연맹(VSSAA) 순위를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 2025년 시즌을 무패로 마쳤으며, 템플턴 학교 역사상 거의 40년 만에 처음으로 축구 결승전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타이탄스(Titans)’ 팀이 승수를 쌓아가는 동안에도 이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부족했다. 바로 제대로 된 유니폼이었다. 주장인 프레이야 리히터(12학년)와 아나벨라 킹은 작년 챔피언십 경기 당시 학교 배구팀에서 빌린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던 기억을 떠올렸다.
팀의 5년 차 윙어인 리히터는 “셔츠 문장에 배구공이 그려져 있었다” 며 “스판덱스처럼 몸에 딱 달라붙어 축구를 하기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옷이었다”고 말했다.
주장들은 처음부터 학교 체육부에 축구 유니폼을 요청해 왔다. 교육청 내 다른 학교 팀은 대부분 갖추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드필더인 킹은 “다른 팀과 경기할 때 어떤 팀은 유니폼 상하의에 양말까지 세트로 맞춘 것을 보면 정말 부끄러웠다. 우리 유니폼을 보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대안들도 별반 나을 게 없었다. 수십 년 된 남자 팀의 밝은 노란색 유니폼을 입거나, 번호가 다 벗겨지고 중복된 자주색 유니폼들을 섞어 입어야 했다. 그 마저도 17명의 선수단을 모두 입히기엔 부족했다. 킹은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템플턴 축구 선수로 뛰었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자 팀 유니폼 사진을 보여줬을 때 비로소 장비가 얼마나 낡았는지 실감했다. 킹은 “어머니가 ‘세상에, 이건 내가 어릴 때 입던 그 노란 유니폼이잖아’ 라며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배구팀에서 빌린 유니폼 입고 경기에
제대로 된 팀 장비 하나 없었음에도 타이탄스 팀은 지난 시즌 ‘아자일 여학생 축구 대회’를 휩쓸었다.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9골을 몰아치며 경기를 압도했다.
2026년 시즌에도 유니폼 지원이 불확실해지자, 학생들은 직접 해결에 나섰다. 선수들은 작년 5월에서 6월 사이 풀뿌리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방과 후 학교 뒷마당에서 ‘프리지 프라이데이’를 열어 얼음 과자를 팔았다. 또한 지역 커피 로스터리인 ‘모자(Moja)’와 협력해 이웃과 지역 여성 팀들에게 원두를 판매했고, 판매당 소액의 수익금을 적립했다.
타이탄스 팀은 이렇게 약 2,000달러를 모았고, 마침내 팀 유니폼을 구매할 수 있었다. 킹은 “유니폼이 어떻게 보일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유니폼이길 바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밴쿠버교육청은 성명을 통해 학교 체육 예산은 각 학교 차원에서 설정되며, 유니폼 및 장비 예산 배정은 학교별로 크게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많은 학교 프로그램이 시설 대관료, 학교 굿즈 판매, 학부모 자문위원회(PAC) 기부금 및 모금 활동 등을 통해 운영된다. 교육청은 “학교는 장비나 유니폼 업그레이드를 위해 모금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은 유니폼 보증금을 받지만, 일부 팀은 학교 보급용 유니폼 대신 직접 모금하여 시즌이 끝난 뒤 소장할 수 있는 맞춤형 유니폼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22년부터 딸 릴리를 위해 코치를 맡아온 앤서니 헴펠은 “이 유니폼은 타이탄스 팀을 바닥부터 일궈온 수 년간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에는 템플턴의 영어 교사인 테일러 맥베이도 공동 코치로 합류했다. 헴펠 코치는 “고등학교 축구는 체계가 덜 잡혀 있어 학생들이 팀을 만들기 위해 직접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타이탄스 팀이 생기기 전까지 템플턴 학교에는 2009년 이후 시니어 여학생 축구팀이 없었다. 그는 전 밴쿠버 화이트캡스 수비수 밥 레나두찌와 스트라이커 도메닉 모빌리오와 같은 전설적인 동문들을 배출한 학교에 여학생 팀이 없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초창기에는 패배가 더 많았지만, 선수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력은 꾸준히 향상됐다. 리히터는 “처음에는 우승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며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며 우리 모두 친한 친구가 되었고, 경쟁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다. 이제는 우리가 이길 만큼 충분히 잘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두 주장은 시니어 여학생 팀의 팬을 만들기 위해 학교 곳곳에 홍보 포스터를 붙였다. 리히터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다음 경기 날짜를 묻거나 이겨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템플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준의 애교심이었다”고 전했다.
2025년 챔피언십 경기 당시, 100명이 넘는 관중이 타이탄스의 홈 경기를 보기 위해 사이드라인을 가득 메웠다. 킹은 “경기장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 모든 관중이 환호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에릭 함버 고등학교에 3-1로 패했지만, 타이탄스 팀은 주 대회 우승을 다투는 고교 최고 수준의 리그로 승격되었다.
100명이 넘는 홈 팬 만들어
지난 9일 이 팀은 마침내 새로 맞춘 자주색 유니폼을 입고 홈 구장에 섰다. 리히터는 “유니폼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고,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기에 입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훨씬 더 강력한 상대들과 맞붙게 된 타이탄스 팀은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키칠라노 고등학교에 3-0으로 패했지만, 선수들의 자신감은 꺾이지 않았다. 리히터는 “결국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학교를 위해 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새 유니폼은 템플턴의 유망주인 주니어 여학생 축구팀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킹의 어머니이자 과거 템플턴 선수였던 크리스탈 리폴로는 2001년 온 마을 사람들이 여학생 경기를 보러 왔던 때를 기억하며, 현재 시니어 팀의 유산이 졸업 후에도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리폴로는 “이 아이들은 유니폼에 대해서도, 선수 부족에 대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종종 소외되고 남이 입으라는 옷을 입어야 했지만, 아이들은 계속 뭉쳐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냈다”며 대견해 했다.
